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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8일 오전 9시 36분] 

주한 캄보디아 대사가 본국으로 소환되어 국가부패방지위원회(ACU)로부터 조사를 받은 뒤 횡령과 직권남용, 비자발급 사기 등의 혐의로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각) 구속 기소됐다.

옴 옌티엥 ACU 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라며 "숫 디나 대사는 비자를 팔아 11만 6995 달러(1억 3501만 원)에 이르는 돈을 횡령했다"고 말했다. 또한 숫 디나 대사는 한국에서 사망한 자국 노동자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을 자신의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앞서 5일 <프놈펜 포스트>를 비롯한 현지 주요 언론들은 숫 디나 대사가 부정부패 혐의로 소환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관련 혐의에 대한 증거가 이미 충분히 확보된 만큼 대사가 체포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 외교관을 비리혐의로 소환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현지 언론도 이번 사건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돌출 행동으로 여러 차례 구설 올라

캄보디아 자국국민들의 여권에 기간 연장을 위한 서명을 하고 있는 숫 디나 주한 캄보디아 대사의 모습
 캄보디아 자국국민들의 여권에 기간 연장을 위한 서명을 하고 있는 숫 디나 주한 캄보디아 대사의 모습
ⓒ 숫 디나 대사 개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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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주한 캄보디아 대사로 부임한 숫 디나 대사는 그동안 돌출 행동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던 인물이다. (관련 기사: 주한 캄보디아 대사, 잇따른 부적절한 처신 논란)

숫 디나 대사는 지난해 11월 한국에 있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방한 예정인 야당 총재가 주최하는 집회나 모임에 참석할 경우 본국으로 강제 송환할 수 있다는 협박성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때문에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올해 1월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익명의 한국 남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후 "반정부시위 등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불법체류자들을 한국의 '특수정보기관(Special Intelligence, 국정원 추정)'과 공조해 체포하거나 강제로 추방시키겠다"고 남겨 또 한 번 물의를 일으켰다. 당시 법무부는 캄보디아 대사관과의 연계 가능성을 즉각 부인했다.

며칠 후 숫 디나 대사는 또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2년 전 훈센 캄보디아 총리를 반대하는 시위 당시 총리의 사진을 불태운 혐의가 있는 20대 캄보디아 근로자 3명을 대사관으로 불러 용서를 빌게 하고, 이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이에 야당은 물론이고 현지 언론까지 나서 그의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하지만 숫 디나 대사는 오히려 이를 조롱하듯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련 기사를 공유했다.

그동안 주한 캄보디아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과 부정부패 의혹은 한국에 체류 중인 캄보디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자국민에게 각종 증빙서류 발급 비용을 과다하게 부과하거나, 분실한 여권을 재발급하는 데도 급행비 명목으로 뒷돈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이에 자국민들의 불만과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숫 디나 대사의 자국 소환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교민들 역시 결국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결혼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의 횡포에 가까운 조치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현판.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현판.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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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은 국제결혼서류에 필요한 영사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데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백만 원이 넘는 금품을 요구해 국제결혼을 준비하는 상당수 한국인이 피해를 많이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국제 결혼 관련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한남동 대사관을 찾은 한 신청자는 캄보디아 대사관 측의 과도한 수수료 요구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불만을 제기할 경우 불이익을 받았다고 기자에게 증언했다. 서류 검토에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차일피일 미루거나 서류에 별다른 하자가 없음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관련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무한정 버틴다는 것이다.

지난해 결혼 서류를 접수한 또 다른 교민 남성 역시 서류에 영사 확인 도장 하나를 받기 위해 백만 원 가까운 뒷돈을 마지못해 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외교부는 이러한 민원을 여러 차례 접수하고, 캄보디아 외교부에도 정식 공문을 보내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프놈펜 포스트>는 지난 6일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숫 디나 대사가 한국에서 한끼 식사비용으로 70만~80만 원씩 쓰기도 하고 한국 돈으로 7천만 원이 넘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고 전했다. 또한 이 매체는 대사가 이런 거액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현재 당국이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반정부 성향의 학생 운동 출신... '배신자' 오명 얻기도

올해 1월 한국에서 열린 경제관련 세미나에 참석중인 숫 디나 주한 캄보디아 대사
 올해 1월 한국에서 열린 경제관련 세미나에 참석중인 숫 디나 주한 캄보디아 대사
ⓒ 숫디나 대사 개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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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 디나 대사는 과거 1990년대 반정부 성향 학생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지난 2003년 크메르민족전선당(KNFP)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 후 2006년 왕당파인 라나리드당으로 이적,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이후 2009년에는 집권당인 인민당(CPP)으로 전향해 야당 지지자로부터 배신자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여당에 입당한 뒤에는 외교부 차관보로 승진했고, 2014년 주한 캄보디아 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친척을 캄보디아 대사관 직원으로 고용했다는 의혹으로 허남홍 외교부장관으로부터 경고성 편지를 받는 등 부임 초부터 구설에 오른  바 있다.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숫 디나 대사에 대한 현지 당국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대사의 부정부패 의혹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현지 특수수사국이 수사원 6명을 한국에 긴급파견,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아옴 옌티엥 국가부패방지위원장은 숫 디나 대사에 대한 증거를 90% 이상 확보했다고 현지언론에 답했다.
▲ 캄보디아 국가부패방지위원회(ACU) 입구 모습. 아옴 옌티엥 국가부패방지위원장은 숫 디나 대사에 대한 증거를 90% 이상 확보했다고 현지언론에 답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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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서울과 전국 5개 지역을 돌며 증거를 수집하고 증인을 확보했다. 수사 당국은 한국에서 이미 숫 디나 대사에 대한 직접 심문까지 마친 상태로 알려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각종 비리 혐의와 규율 위반에 관련한 충분한 증거와 확실한 증인까지 확보한 만큼 숫 디나 대사에 대한 체포영장발부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게 현지 수사당국 관계자들의 분석이었다.

아옴 옌띠엥 국가부정부패방지위원장도 "그에 대한 거의 90% 가까운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숫 디나 대사는 지난달 본국 소환을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당국의 파견수사가 누군가에 의해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와 중상모략이라는 것이다.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에까지 직접 글을 써 이번 부패사건 조사에 훈센 총리가 직접 관여해 자신을 보호해 주고, 그가 바라는 '정의(Justice)'를 구현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 한 달도 안 돼 숫 디나 대사의 본국 소환과 체포수사가 현실화됐다. 경기도에서 일하고 있는 한 캄보디아 노동자(25)는 지난 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대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 그가 응당한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태그:#캄보디아, #부패방지위원회(ACU), #숫 디나 대사,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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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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