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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당선한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딸이 운영한 트위터 계정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당선한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딸이 운영한 트위터 계정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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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정은 오로지 머리가 크고 못생겨서 유명해지지 못한 박광온씨가 트위터에서나마 유명해지길 바라며 트잉여인 딸이 드립을 쳐 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일 뿐입니다."

"보좌관님 걱정하지 마세요 님이 모시는 그분이 생각보다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검색도 잘 안 합니다ㅠㅠ 아버지가 화제성이 있으면 지금쯤 제 트윗이 알티가 엄청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아버지...(눈물)"

지난 2014년 7.30 재보궐 선거.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당시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딸은 대한민국 선거 사상 가장 발칙하고 발랄한 선거운동을 선보였다. 'SNS로 효도라는 것을 해보자'라는 트위터 아이디 때문에 매체들로부터 '랜선효녀'는 별칭을 얻은 박 후보의 딸은 아버지의 큰 머리를 '디스'하고, 보좌관을 놀렸다. 동시에 촌철살인의 글을 올려 네티즌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른바 'SNS 시대'에 출현한 '가족 선거운동'의 최신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박 후보 측이 여러 매체와 인터뷰에서 인정했듯, 이것은 딸 스스로가 익명성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랜선효녀'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 건 앞서 치러진 6.4 지방선거에 등장한 아들·딸의 활약과는 배치됐기 때문이다.

연예인에서 옮겨간 아들·딸들에 대한 관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2014년 6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총집결 유세에서 부인 김의숙 씨, 아들 둘과 함께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사랑의 하트' 날리는 조희연 서울교육감 후보 가족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2014년 6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총집결 유세에서 부인 김의숙 씨, 아들 둘과 함께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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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선거에는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조희연 서울교육감 후보, 오거돈 부산시장 등 여러 후보자의 딸과 아들이 거리 유세에서 나서 언론과 유권자의 주목을 받았다. 누구는 눈에 띄는 외모를 부각하며, 누구는 아버지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로, 또 누구는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며 선거운동에 나섰다.

이러한 후보자 딸과 아들의 선거운동은 SNS 홍보와 결합되고, 여러 매체가 이를 취재하면서 하나의 이색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만연했던 '연예인 선거유세'가 진영 논리에 입각한 '폴리테이너'에게 쏟아지는 관심으로 찾아보기 힘들어지면서, 언론의 초점이 자연스레 이동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2년 전보다 규모가 큰 전국 선거인 4.13 총선에서 가족 마케팅이 한층 확대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홍보 전문가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후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심상정 정의당 후보마저 아들을 내세우기에 이르렀으니 두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아들과 딸을 위시한 이른바 '가족 마케팅'은 후보자와 선거캠프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선거운동의 일환이 되어 버렸다. 

지난 4월 2일 심상정 의원실이 SNS에 올린 심상정 의원의 아들 사진. "자극적 가족 마케팅 반대한다"고 적었지만 "사진에서 진동하는 훈내는 어찌할 수 없다", "인류는 확실히 진화하는 것 같다"는 등 그의 외모를 부각시키는 말을 덧붙여 빈축을 샀다.
▲ 자극적 가족 마케팅 반대한다더니... 지난 4월 2일 심상정 의원실이 SNS에 올린 심상정 의원의 아들 사진. "자극적 가족 마케팅 반대한다"고 적었지만 "사진에서 진동하는 훈내는 어찌할 수 없다", "인류는 확실히 진화하는 것 같다"는 등 그의 외모를 부각시키는 말을 덧붙여 빈축을 샀다.
ⓒ 심상정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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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거판이, 또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속성이 언제나 그렇듯 '과열'이 문제 아니겠는가. 그 과열 양상은 사실 후보자나 캠프가 아닌 '총선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언론에 나타나고 있다. 일부 보도를 보면, '본말전도'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2년 전 지방, 재보궐 선거를 거치면서 이러한 경향이 한층 강화됐다. 게다가 이러한 관심이 유독 '딸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누가 '딸들'을 전쟁으로 내모는가

한 포털사이트에 딸, 전쟁이라는 단어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들.
▲ 총선은 후보자 아닌 딸들의 전쟁? 한 포털사이트에 딸, 전쟁이라는 단어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들.
ⓒ 네이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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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전쟁...총선 효녀노릇 톡톡 <서울경제>
'예쁜' 유자식이 상팔자?…아들·딸 선거 지원, SNS서 화제 <한국경제>
"총선 후보 '딸'의 미모 경쟁…"걸그룹보다 예쁘다"에 실제 연예인도 <조선일보>
총선은 지금 '딸들의 전쟁' 中 <중앙일보>
총선은 지금 딸들의 전쟁? <YTN>

얼핏 제목만 보면, 외국인들은 후보자의 딸이 총이라도 든 줄 알 것 같다. 열거한 매체뿐 만이 아니다. 방송, 일간지, 인터넷 매체 할 것 없이 후보자 딸들의 사진을 열심히 퍼 나르고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한 마디로 딸들 앞에서 한국의 모든 언론이 '대동단결'하는 중이다. <연합뉴스>는 아예 공들여(?) 모듬 포토뉴스를 만들기까지 했다.

20대 국회의원을 향한 각 후보의 열띤 선거운동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후보의 딸들도 아빠를 도와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위로부터 대구동구을 무소속 유승민 후보와 딸 유담씨, 충남 공주부여청양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 와 두 딸 가영씨 원영씨, 전북 정읍고창 더불어민주당 하정열후보와 딸 경민씨, 대구 동구갑 새누리당 정종섭 후보와 딸 승은씨, 대구 수성갑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딸 현수씨.
 20대 국회의원을 향한 각 후보의 열띤 선거운동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후보의 딸들도 아빠를 도와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위로부터 대구동구을 무소속 유승민 후보와 딸 유담씨, 충남 공주부여청양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 와 두 딸 가영씨 원영씨, 전북 정읍고창 더불어민주당 하정열후보와 딸 경민씨, 대구 동구갑 새누리당 정종섭 후보와 딸 승은씨, 대구 수성갑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딸 현수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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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측에서 후보자 가족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나 블로그에 올리면 언론은 열심히 가져다 인용하고, 손쉽게 모아 '기획'으로 처리한다. 인터넷 시대의 단면이라고 해도 과유불급이다. 그럴 거면 '전쟁'이란 표현이나 쓰지 말 것을. 어째 이 나라는 축구를 해도, 올림픽을 해도, 선거를 해도 다 전쟁판이다.

더욱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유승민 후보의 딸이 '국민 장인'이란 SNS '드립'으로 세간의 관심을 얻으면서 이러한 경향은 점입가경이 됐다. 오죽했으면 은수미 더민주 의원 측이 지난 2일 SNS에 "어떤 후보들은 춤 잘 추거나 예쁘고 잘생긴 딸·아들이 있어 주목을 끈다는데 은수미 후보는 그런 아들 딸이 없으니 비서들이 나섰다"고 자조 섞인 홍보글을 올렸을까.

또다시 도진 경마식 보도 

4·13 총선 서울 송파병에 출마한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의 아들인 '삼둥이' 아빠 탤런트 송일국 씨가 1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리에서 주민들과 인사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4·13 총선 서울 송파병에 출마한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의 아들인 '삼둥이' 아빠 탤런트 송일국 씨가 1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리에서 주민들과 인사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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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분야에서 유명한 예는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아들인 연기자 송일국씨다. 네티즌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에게 친숙해진 송일국씨의 자녀 삼둥이가 선거전에 등장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을 정도다. 지난 2월, 예비후보였던 김을동 의원이 선거사무소에 내건 대형 현수막에 송일국씨를 비롯해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과 아버지인 김두한씨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가족이 선거에 동참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피 한방울 안 섞인 남도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과 개인적인 욕망을 담아 선거판에 뛰어드는 일이 다반수다. 선거라는 것은 비용을 비롯해 일반 유권자가 상상도 못할 만큼의 품과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한 선거에 선거법의 허용 범위 안에서 가족이, 자녀들이 뛰어드는 것이 비단 한국의 풍경만도 아니다.

처음엔 그러한 선의가 SNS와 결합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2년 전엔 말이다. 하지만 '경마식 보도'로 한국 언론이 후보자의 딸들과 외모를 지상중계하면서 이제는 일부 유권자들로부터 반감까지 사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운운하기엔 이 사회가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부고 기사만 빼고는 그 어떤 언론보도도 환영하는게 정치인이라지만, '이색 선거전'을 넘어선 과열 양상은 그야말로 볼썽사납다. 정책 선거의 실종과는 또 다른 문제다. 아마도 '랜선효녀'가 철저하게 신상과 얼굴을 감췄던 것도 이러한 과열 양상을 예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태그:#4.13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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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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