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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정부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발언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한일 정부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발언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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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어려운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데, 박 대통령이 올바른 용단을 내렸다.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다." (2016.1.1. 반기문, 박근혜 대통령과의 새해 인사)
"미국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의 관계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2015. 12. 29. 존 케리 미 국무장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무장관의 '위안부' 문제에 관한 구두합의에 대한 평가들이다. 그런데 영국의 <가디언>지는 합의 다음날 보도를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중요한 성공이며,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한일 양국의 화해를 촉구해온 미국에게도 간접적인 성공", 즉 '일본과 미국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일본의 자각된 양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압력 속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선택이라는 측면이 더욱 크다"고 논평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국내에서 비판여론이 일자, 대변인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국제사회가 어디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제외한 국제사회의 의견은 명확히 표명된 바가 없다.

유엔사무총장의 자리를 고려하면, 최소한 피해국과 피해자들의 처지를 헤아려 줬어야 마땅하다. 그에게 그것이 바로 국제사회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이 문제는 한국이 중국과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하는 미국의 개입과 이를 매개로 버텨온 아베 정권의 승리라는 영국과 중국의 해석에 반박하기 어려워진다.

식민주의 청산의 의무를 저버린 위안부 합의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문제는 안보와 외교 문제가 아니라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역사적 의무를 외면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필자는 종종 식민지를 경험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은 식민지 지배 경험을 가진 구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식민주의 청산을 요구하고, 피지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다수 국가들에게 그러한 주장을 확산시켜 나가야 할 역할을 해야 할 세계사적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곤 한다.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급속히 팽창하고, 아시아 제국과의 협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한국의 처지에서 이것은 역사적인 측면 뿐 아니라,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선택의 문제다. 중장기적인 국익 측면에서도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시각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역대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자화자찬하기에 바쁘다. 반기문 총장과 미국의 입장에 연결시켜 생각하면, 역대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이란 결국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라는 장애물의 '제거'다. 합의 이후에도 여전한 양국 정부의 입장차이나 사회적 논란을 감안하면 그것은 분명 '해결'이 아니라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거론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약속에 불과하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십분 수용해 이 구두합의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적 선택이라고 가정하자. 또 그 합의과정에 피해자들이 배제되었다는 비판조차 국가의 긴박한 외교적 선택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수용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합의에 따라 설립될 재단의 성격이나 일본 정부의 자금 10억 엔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피해자를 비롯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마땅하다.

'위안부' 문제에 군이 관여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절대 법적책임과 관계없다는 돈, 10억 엔을 '최종적' 해결의 대가로 주겠다는 일본 정부도 한심하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모자라는 돈에 대한 추가 출자 의지도 없는 한국 정부는 더 한심하다. 그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협의해 나갈 일이라고 주장한다면, 이 일이 피해자에게 또는 국가에 어떤 이익이 있는 지는 설명해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만 한다.

재단 설립보다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가? 애초에 피해자 문제가 중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태도나 반 사무총장의 발언이 그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 속에는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 여성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등 다양한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상규명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아직 일본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모두 공개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태국과 중국에서는 지금도 피해자 명부가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그 흔한 진상규명위원회 하나 만들지 않았다. 단발적인 예산지원은 있었지만, 그 모든 일은 시민단체와 학자들에게 맡겨져 있었다.

이제 국제 사회에서의 비판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입장 표명도 포기한 정부가 새삼스레 진상조사에 나설 리가 만무하다. 물론 진상조사는 가해자 일본의 책임이 더 큰 문제다. 그렇지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얻은 일본이 나설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의무까지 짊어진 '합의'가 어떤 국익에 부합하는지, 앞으로 일본을 '대신'해 어떤 사업을 펼쳐나갈지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3월 18일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관련 서술의 퇴조가 뚜렷했지만, 정부는 재단설립을 논의하기 위해 3월 22일 개최된 국장급 협의에서 "우리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다음 검정에는 이러한 합의 정신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역사교과서 국정제를 채택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스스로 '위안부' 용어를 삭제한 정부가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하나마나한 소리를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설명하는 데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신철님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입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이며. 남북관계사, 한중일 역사인식 문제 등을 매개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평화문제를 해명하고 전망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1948~1961』, 『한일근현대 역사논쟁』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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