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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6년 새해가 밝았는가 싶더니 어느덧 4월로 접어 들었습니다. 3월부터 봄이 이르다 싶었는데 4월이 되기 무섭게 날씨가 무덥게만 느껴집니다. 따스해진 날씨 덕분에 말 그대로 봄이 성큼 다가왔고, 산과 들은 봄의 빛깔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기보다 봄 기운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 카메라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만개를 준비하는 벗꽃.
 만개를 준비하는 벗꽃.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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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불당동 장재천변의 매화나무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충남 천안시 불당동 장재천변의 매화나무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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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빛깔의 서양 민들레
 노랑 빛깔의 서양 민들레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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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벗꽃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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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곳은 천안시 불당동입니다. 원래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2년 전 아산이 고향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 이곳으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엔 고향을 등진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서울과는 달리 여유롭게 일상을 보낼 수 있었고, 그래서 이곳으로 내려오기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집앞엔 장재천이란 이름의 개천이 흐르는데, 전 아침마다 천변에 난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확실히 장재천변을 걷고 있노라면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낍니다. 천변엔 개나리, 매화, 벗꽃, 서양 민들레가 각각 노랑-분홍 빛깔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꿀벌들은 꽃가루를 뒤집어쓰다시피 함에도 꿀을 빨아 들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제가 가진 카메라가 비록 고가의 제품은 아니지만, 이 카메라로 발 밑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천안시 불당동에 흐르는 장재천. 천변에 심은 벗꽃은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렸고, 꿀벌들은 부지런히 꿀을 빨아 들인다.
 천안시 불당동에 흐르는 장재천. 천변에 심은 벗꽃은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렸고, 꿀벌들은 부지런히 꿀을 빨아 들인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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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이 꽃망울을 터뜨리자 꿀벌이 주위에 모여들며 부지런히 꿀을 빨아들이고 있다.
 벗꽃이 꽃망울을 터뜨리자 꿀벌이 주위에 모여들며 부지런히 꿀을 빨아들이고 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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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사진가와 생활 사진가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한 번쯤 카메라에 생명의 움직임을 담고 싶어하는 이유도 생명의 경이를 직접 느끼고 싶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는 사진가들의 행태가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새 사진을 찍기 위해 새끼 새를 볼모로 붙잡아 어미 새를 유혹한다든지, 자신이 담은 희귀식물을 다른 이들이 담지 못하도록 촬영 후 아예 현장을 훼손해 버리는 행태는 꾸준히 문제로 제기돼 왔습니다.

심지어 장국현이라는 원로 사진작가는 사진촬영에 방해된다며 220살 먹은 금강송을 베어낸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분은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회를 열기위해 법정 공방을 벌인다고 하니, 도무지 그 속을 알길이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배우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유명 사진잡지인 <라이프>지에서 필름을 관리해온 주인공 월터 미티는 사진가 숀 오코넬을 찾고자 모험을 떠납니다. 월터는 천신만고 끝에 히말라야 언덕에서 그와 마주칩니다. 숀은 눈표범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잠복하고 있었는데, 월터가 그곳을 지나간 것입니다.

숀은 미티에게 일단 자리를 비켜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던 눈표범이 지나갔음에도 숀은 셔터를 누르지 않습니다. 월터는 이 광경을 보고 의아해 합니다. 숀은 '언제 찍을 것이냐'라고 묻는 월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 찍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좋은 순간을 보면 때로는 그 순간에 머물러 싶어지거든."

봄을 맞아 서양 민들레 역시 노랑 꽃망울을 터뜨렸다. 벌꿀은 온 몸에 꽃가루를 뒤집어 썼음에도 아랑곳 없이 꿀을 빨아 들이고 있다.
 봄을 맞아 서양 민들레 역시 노랑 꽃망울을 터뜨렸다. 벌꿀은 온 몸에 꽃가루를 뒤집어 썼음에도 아랑곳 없이 꿀을 빨아 들이고 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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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꿀벌.
 꽃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꿀벌.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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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카메라를 접했다면 굉장한 '무엇'을 찍어보겠다는 호기가 발동합니다. 이런 열정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자신의 주변에서, 아니면 자신의 발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유심히 살펴 보기를 권합니다.

이를 통해 생명의 경이를 먼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찍고자 하는 주제들이 새롭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든 문제점들도 따지고 보면 사진가들이 좋은 '그림'에만 집착했지 생명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생기는 일들입니다.

제가 지금 찍어 올리는 사진은 그닥 '임팩트'가 없는, 주변에서 흔히 눈에 띠는 풍경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전 너무 행복합니다. 제 발 밑에서 펼쳐지는 작디 작은 생명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이 작은 생명들에게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습니다.

"참 좋았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태그:#천안 , #장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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