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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 스님이 4.13 총선을 앞두고 지난 두 달 동안 공천 파동으로 상처 입은 대구 시민들의 하소연에 응답했다. 1일 저녁, 대구 수성대 대강당에서는 '희망세상만들기'란 주제로 대구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다.

대부분 인생 고민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한 시민은 최근 대구에서 격화되었던 공천 파동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이 시민은 "이번에 공천 과정을 보면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고, 투표도 하지 말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 후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무슨 신하 뽑듯이 공천 심사를 하는데, 이런 정치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물었다.

법륜 스님이 희망세상만들기 대구 강연에서 공천 파동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한 시민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 법륜 스님이 희망세상만들기 대구 강연에서 공천 파동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한 시민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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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법륜 스님은 "싸우면서 서로 닮아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지 않냐?"며 우선 긍정적인 토대 위에 바라봐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는 진보적인 사람도 살고, 보수적인 사람도 살고, 경상도 사람도 살고, 전라도 사람도 한다. 또 기독교인도 살고, 불교인도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도 살고, 친일파 후손도 살고, 민족주의자도 살고, 친미주의자도 산다. 이런 다양성 속에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법륜 스님은 그 기준이 '헌법'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5000년 동안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던 오랜 역사가 있다보니까 우리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라고 뽑아놓은 일꾼인 대통령을 우리는 자꾸 왕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모순입니다."

이런 헌법 정신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두 달 동안 여야를 불문하고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 특히 대구에서 더 시끄러웠는데 이에 대해 스님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구 시민들을 향해서도 일면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당에 있잖아요. 대구시민 여러분은 최근 20년 동안 당에서 정한 후보를 바꿔본 적 있습니까? 대구에서 새누리당이 아닌 사람이 당선된 적 있습니까?"

대구 시민들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에서 지명된 사람들은 당선이 떼놓은 당상이니까 국민들을 보면서 '선출해 주십시오' 하지 않고, 당을 보면서 '지명해 주십시오'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스님의 일갈이 이어졌다.

"그 사람을 지명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당에서 그런 무리한 지명을 할까요? 그러니 공천 파동은 당에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없겠지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일이 빚어진 겁니다." 

강연장은 순간 숙연해졌다. 그러자 스님은 지난 4년 동안 전라도에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바로 새누리당으로 바꾸지는 못하겠으니 무소속을 많이 뽑아주게 되어 전북은 자치단체장의 3분의1이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을 사례로 들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아예 새로운 정당 하나가 생겨서 기존 정당과 경쟁하고 있는 형국도 예로 들었다. 이 현상을 대부분 분열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은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이걸 부정적으로 말하면 분열이라고 하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드디어 결정권이 국민한테 돌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의 대구 상황도 나쁘다고 보는 사람이 있겠지만, 오히려 참 잘 됐다 싶습니다. 결정권이 우리 손, 국민의 손에 들어왔으니까 드디어 우리가 결정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최근에 불거진 공천 파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답변하고 있는 법륜 스님. 스님은 선택권이 생겼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면이 있지 않느냐 반문했다.
▲ 법륜 스님 최근에 불거진 공천 파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답변하고 있는 법륜 스님. 스님은 선택권이 생겼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면이 있지 않느냐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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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거운동하는 정치인들이 예전보다 국민들에게 훨씬 더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던 질문자는 이 대목에서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질문자의 고민이 해결된 셈이다. 스님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더 힘주어 말했다.

"공천 파동이 기분 나쁘다고 투표를 안 하면 거기에 말려드는 겁니다. 기분 나빠서 투표 안 하면 결국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의도대로 되어 버립니다. '둘 다 꼴 보기 싫다. 뽑아줄 사람이 없다' 싶으면 주로 기권을 하는데 '둘 다 문제지만 어느 게 더 문제냐' 하는 걸 찾아야 해요. 차악과 최악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 때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이 조건에서는 최선입니다.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공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투표로 보여줘야 합니다. 이번에 대구는 국민 투표권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된 것 같아요. 국민들이 좀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어느 게 더 문제인지를 찾아야 한다는 말에 대구 시민들은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스님은 "이것을 주식에서는 손절매(損切賣)라고 한다" 하면서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작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나라도 덜 손해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질문자가 "차악을 한 번 잘 찾아보겠습니다"라고 하자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도 박수갈채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다.

"투표하러 가기 싫다"는 질문에 법륜 스님이 "누가 더 문제냐 찾아야 한다" 고 답변하자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대구 시민들.
▲ 박수치는 청중들 "투표하러 가기 싫다"는 질문에 법륜 스님이 "누가 더 문제냐 찾아야 한다" 고 답변하자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대구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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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마치면서 법륜 스님은 지금의 현실을 진단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몇 달 동안 남북 갈등이 깊어지면서 전쟁 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 대통령이라면 통합을 해야 하는데, 또 대통령의 후보 시절 선거공약이 '국민 대통합'이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오히려 국민 분열을 더욱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통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대통령이나 여당이 야당한테 법안 같은 걸 좀 양보해야 통합이 가능하잖아요. 또 여당이 공천할 때도 친박이 비박의 요구를 조금 받아주면 통합이 되겠지요. 정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통합을 해야죠. 말은 위기라고 하면서 양보도 안 하고 고집만 부리는 등 국민통합을 위한 각계각층과의 소통에는 좀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법륜 스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통령의 소통 부족과 공천 파동 조차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역시 법륜 스님 다운 특유의 반전이었다.

"공천 파동 덕분에 결과적으로 대구 시민들에게는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잖아요. 전에는 아무리 야당을 찍어봐야 당선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당선될 수도 있겠지요. 또 비박도 찍어볼 수 있겠지요. 또 사람이 괜찮으면 친박도 찍을 수 있고요. 이게 전화위복입니다. 그래서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대구 시민들은 환한 웃음으로 스님의 일갈에 공감했다. 법륜 스님의 지적처럼 이번 공천 파동에 대해 국민이 투표로 심판해 준다면 이제 국민주권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은 지난 3월 15일 의정부를 시작으로 오는 6월 17일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선착순 무료입장이다. 자세한 강연 일정은 정토회 홈페이지(www.jungto.org)에 나와 있다.


태그:#4.13 총선, #법륜 스님, #공천, #투표,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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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자.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2기 수료. 마음공부, 환경실천, 빈곤퇴치,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많아요. 푸른별 지구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기자를 꿈꿉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생생한 소식 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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