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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 한표 차이로 목이 날아간 왕이 있었다
 투표 한표 차이로 목이 날아간 왕이 있었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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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6일 오후 2시 27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는 1923년, 단 1표 차이로 나치당의 총수로 당선됐습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시민사회 곳곳에서 투표 독려 캠페인이 활발해진다. 형식과 내용도 매번 엇비슷하다. 유권자의 한 표로 역사와 공동체의 운명이 바뀐 사례를 소개하며 투표를 당부한다. 당신의 한 표는 소중하니 잊지 말고 투표권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왕의 목을 친 한 표

살펴보면 의미 있는 기록들이 꽤 있다. 프랑스가 1875년 왕정에서 공화국이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의회는 이 건을 찬성 353, 반대 352로 통과시켰다. 1표의 힘이었다. 1649년 영국의 왕이었던 찰스 1세는 법원이 1표 차이로 처형을 결정하는 바람에 목이 잘렸다. 왕의 목이 합법적 절차에 의해 날아간 것은 유럽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이 남긴 결과였다.

투표 독려의 의욕이 앞서다 보니 와전된 기록도 있다. 1776년 미국 하원에서는 '대량 이주한 독일계 이민자들을 위해 모든 미국 법령을 독일어로 번역해달라'는 청원이 단 1표 차이로 부결됐다. 이 사건은 '1표 차이로 미국의 국어가 영어가 됐다'는 식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히틀러가 나치당의 당권을 한 표 차이로 잡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히틀러는 1921년 특별당원 총회에서 찬성 553대 반대 1로 독재권한을 양도받았다.

박빙의 차이로 희비가 갈린 선거는 한국에도 있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8개 선거구에서 1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선거를 마치고 투표함을 개봉했는데 상위 후보 둘이 1표 차이도 없이 동일한 득표를 하면 어떻게 될까. 선거법에 따르면 연장자인 후보가 당선이 된다. 2002년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 기초의원 선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유권자수가 많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6대 총선에서 경기 광주군에 출마한 문학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1만 6672표를 얻어 1만 6675표를 받은 박혁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문 후보는 3표 차이로 낙선했다 해서 '문세표'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재검표 결과 차이가 2표로 줄어들자 '문두표'로 바뀌기도 했다.

이 선거에서 몇 백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초접전' 지역구는 총 13곳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그 중 11곳에서 승리를 거둬 133석으로 여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과반에서 4석 모자란 의석수였다. 전체로 보면 불과 수천 명 정도의 시민표가 국가 단위의 정책이나 법안의 향방에 4년간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한국의 선거에서 한 표는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짜증나는 정치, 투표 포기 부르는 정치인의 전략

SNS의 발달로 다양한 투표 독려방법이 등장했지만 50% 전후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여전히 OECD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애꿎은 20대에 화풀이를 하거나 시민 의식을 탓하지만 근거가 약하다. 그보다는 대의제 민주주의 선거판의 주요한 축인 정치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면밀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입장은 시민사회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투표에 참여하느냐 보다는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얼마나 투표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해 시민들의 투표 의욕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새누리당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공개해 논란을 빚었던 '중간층 투표 포기전략'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 전략은 중간층이 이쪽도 저쪽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면서 투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랏일은 안 하고 싸움만 일삼는 정치판에 환멸을 느낀다는 이유로 투표를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중 일부는 바로 이런 정치인들의 전략에 휘말린 것이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 나라의 부를 적절히 분배하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인의 유권자 편식은 분배의 왜곡을 낳는다. 여기 당신이 투표를 안 하길 바라는 정치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권력을 잡으면 과연 당신에게 충분한 분배를 해 줄까. 만성적인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결과를 보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전년 대비 임금이 평균 11만 원(4.3%) 오른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000원(0.5%) 증가에 그쳤다.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10년째 계속 악화되는 추세다.

최근의 통계들을 보면 이들은 의사가 있어도 실질적으로 투표를 하기 어려운 고용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2011년 한국정치학회가 실시한 유권자 의식 조사에 따르면 18대 총선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답한 비정규직 노동자 중 64.1%는 '투표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투표를 하지 못한 직접적인 이유로는 '근무시간 중 외출이 불가능했기 때문'(42.7%), '투표를 위해 자리를 비울 경우 임금이 감액되기 때문(26.8%)'이라는 응답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투표하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 현행 투표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연장하거나 투표일을 법적 강제성이 있는 공휴일로 지정하면 된다. 수백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애써 찾아와 읍소하며 그들의 요구를 열심히 적어가는 정치인들도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이다.

크건 작건 생물이 살아가는 세계는 구성원들의 견제과정 속에서 평형을 이룬다. 각자 생존을 위해 뭐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뒤쳐지고, 뒤쳐지면 자기 몫을 가져가기 어렵다. 자연의 섭리다. 문명화를 이룬 민주주의 사회도 본질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짜 점심은 없다.

4월 13일 치러질 총선을 놓고 한 달째 한국 사회가 분주하다. 정치인들은 목이 쉬어라 한 표를 달라 외치고, 언론은 광고 수익과 기사 조회수를 계산하며 매일 속보를 쏟아낸다. 시민단체들은 부적절한 정치인 낙선운동에 열심이다. 참여연대는 유권자들의 사표를 줄이는 선거제도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유권자들도 이제 슬슬 투표를 준비할 때다.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자신의 생존에 조금이라도 더 이득인지 잘 따져보고 투표소로 나가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동환님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를 맡고 있습니다. 이글은 월간 <참여사회>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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