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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이 쓰고 그린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길벗어린이)
 권윤덕이 쓰고 그린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길벗어린이)
ⓒ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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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이다. 정리의 계절, 봄. 무거운 겨울 옷을 장롱 안으로 들이고 봄 옷을 꺼내야 할 때.

"이번 주말은 옷장 정리 좀 해야겠다, 좀 도와줄래?"
"넵, 알겠습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넵!" 장난섞인 큰아이의 시원스런 대답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큰아이는 옷장 정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때때로 "옷장 좀 정리해야겠다"고 하는 걸 보면. 정리하기 무섭게 수북하게 옷을 쌓아두는 나와는 좀 다르다.

이날은 여섯 살 동생도 가세했다. 이렇게 여자 셋이 모여 일단 5단 서랍장에 있는 옷을 죄다 꺼냈다. 수북한 옷 가운데, 지금 입을 것과 입지 않을 것을 가르고, 입지 않을 옷 중에 이제 더 이상 입지 않을 옷(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면 연말정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과 주위 동생들에게 물려줄 만한 옷들을 추린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지 둘째 아이의 말이 속사포처럼 빨라진다.

"와!!! 엄마, 이거 다 내 거야? 예쁘다아."
"엄마, 난 이건 안 입을래. 이제 이건 작으니까 아기들 입어야 해."
"엄마, 이건 내가 어렸을 적에 입었던 거야? 아앙, 귀여워."

큰아이도 한마디 거든다.

"엄마 이것도 나한텐 이제 작아. 동생 입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나 바지는 너무 많은데, 티셔츠는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러네, 웬 바지가 이렇게 많니. 정리를 제때 하지 않아서 없는 줄 알고 막 사서 그런 것 같다. 에휴."
"엄마 이건 사놓고 진짜 몇 번 안 입은 것 같은데 벌써 작아졌어."

계절마다 옷장 정리를 할 때면 늘 같은 생각을 하곤한다. '애들이 언제 이렇게 큰 거야.' 내 나이 먹는 건 생각도 않고. 이제는 작아진 옷을 억지로 입어보는 둘째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세 여자가 깔깔 거리며 웃는다. 좁은 방 안이 웃음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이 가디건은 형님이 직접 떠주신 거였는데, 이 옷은 큰애 생일 파티 때 큰아이 친구랑 똑같이 입혔던 드레스고... 이 드레스는 오빠 결혼식 때 입었던 건데, 진짜 한번 밖에 못 입었네....'

옷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어찌나 많은지,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에 나오는 솔이네처럼.

매일 옷을 입고 벗으면서 한 해가 간다
<엄마 나는 이 옷이 좋아요> 그림 권윤덕
 <엄마 나는 이 옷이 좋아요> 그림 권윤덕
ⓒ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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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이 쓰고 그린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길벗어린이)는 옷에 관한 열두 달 이야기다. 1월 하면 떠오르는 오리털 파카, 2월하면 떠오르는 설날 한복 그리고 3월이면 엄마가 헌옷을 잘라 만든 빨간 바지가 떠오르는 솔이. 4월이면 엄마가 토끼대신 사주신 토끼 그림 티셔츠가 생각나고 5월에는 분홍 드레스에 날개를 단 원피스가, 6월에는 친구랑 똑같은 치마가 떠오른다는 솔이.

또 7월 장마철엔 우산이 필요업는 비닐 점퍼가, 8월에는 물놀이 할 때 입는 꽃무늬 수영복이, 9월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생활한복이 제일 먼저 생각나고, 야외 활동이 많은 10월에는 주머니가 많아 좋은 칠부바지가, 날씨가 추워지는 11월에는 식구끼리만 볼 수 있는 내복이 마지막으로 12월에는 이모가 사주신 우단 원피스가 좋다는 솔이.

옷, 신발, 모자, 가방, 액세서리가 총 망라된 이 책 덕분에 둘째 아이의 취향을 확실히 알게 됐다. 문제는 내 취향과는 좀 다르다는 거. 그래선가. 아침마다 "엄마, 이건 내가 싫어하는 옷인 거 몰라?" 하며 옷 가지고 실랑이를 하는 이유가? 둘째 아이는 솔이가 일년 열두 달 입은 갖가지 옷들 가운데 "엄마, 내가 좋아하는 옷은 이거, 이거, 이거야. 엄마가 좋아하는 옷은 뭐야?" 하는 놀이를 즐겨했다.

내가 "엄마는 이거이거이거가 좋아" 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는 그거 말고 이거 이거 이거가 좋아" 하며 웃는 딸. 이맘때 여자 아이들은 공주 스타일로 치장을 하는데, 지금 둘째 아이가 딱 그럴 시기.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런 스타일을 해보겠니' 싶어 그냥 두다가도 한겨울에 시폰 소재 드레스를 입고 간다고 할 때는 어찌나 곤란하던지.

책을 읽으면서도 이 옷들이 다 저자의 것들인가? 궁금했는데 친척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의 옷을 수집하고 옷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아 그림책 작업을 했단다. 그러며 저자가 하는 말.

"아이들은 몸으로도 옷을 입고 생각으로도 옷을 입는다. 소유하는 것 말고도 옷을 대하는 다른 통로가 아이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 이 책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행복감에 젖에 들기를 바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들이 '엄마, 내 옷 이거 있잖아......' 하며 옷장에서 옷을 하나하나 끄집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거기에 묻어 있는 소중한 사연들을 되새김하면서." - 책 내용 중 일부

사실 이런 그림책이 잘 읽히겠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지금 애들 입는 옷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듯해서), 작가의 전략은 기막히게 들어맞았다. 적어도 우리 둘째 아이에겐.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할 때마다 눈이 반짝이며 얼마나 행복해 하던지.

'날마다 옷을 입고 벗으면서 또 한 해가 간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그렇게 하루가, 한 달이, 1년이 가고 다시 맞는 봄. 꽃샘추위가 반짝 하더니, 날이 따듯해졌다. 옷 정리를 했더니, 이제는 진짜 세탁소로 가야 할 겨울옷들이 집 한켠에 수북하다. 흑, 세탁비 많이 나오겠다.

[이 그림책은요] 권윤덕이 쓰고 그림 이 책은 지난 1998년 처음 출간되었어요. 이후 2010년 다시 새롭게 펴냈죠. 한지의 일종인 순지에 한국화 물감을 사용해 옷의 모양, 주름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표현했다고 해요. 특히 작가는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였던 종이인형 놀이를 그려 초판에 한해 독자들에게 증정하기도 했는데요. 너무 예뻐서 아이들 좀 더 컸을 때 줘야지 하며 어디 보관했던 것 같은데, 못 찾겠아 아쉬워 하는 1인 입니다. 출간한 책으로는 <만희네 집>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일과 도구>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 열두 달 옷 이야기

권윤덕 글.그림, 길벗어린이(2010)


태그:#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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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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