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포스터. ⓒ 시네마달


모든 게 그저 드라마의 장면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시점에 지난달 28일과 29일 서울시청에선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제자리걸음을 했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 호소중이다.

어쩌면 31일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세월호 다큐 <업사이드 다운> 시사회는 당장 큰 벽 앞에 서있는 유가족들에겐 사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 김다영의 아빠 김현동씨와 고 이재욱의 엄마 홍영미씨는 마음으로 울며 호소했다. "이 비극의 아픔이 우리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사고 소식에 한국으로 날아온 한 재미교포가 찍은 영화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은 공식 개봉이 확정된 세번째 세월호 관련 영화다. <다이빙벨>과 <나쁜 나라>가 이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 문제를 강하게 꾸짖었다면, <업사이드 다운>은 조심스럽게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렇다고 그 상처를 가린 게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자녀를 잃은 네 아버지의 이야기를 묵묵히 따라가며, 전문가 16인의 시선을 담았다. 그만큼 사고가 일어난 이후 진실에 다가가려는 안팎의 노력을 충실하게 채워갔다.

재미 교포이자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던 김동빈 감독은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온라인으로 보다가 불과 몇 분 사이 오보로 정정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수장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본 셈이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 한국으로 와 <업사이드 다운>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제작 계기는 분명했다. 사고 수습과 진상 규명 과정을 지켜보며 "상식과 보통이라는 개념에 혼돈을 느낀" 김동빈 감독은 "사람이 아닌 돈이 중심이 돼버린 우리 사회의 상처를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상처는 가릴수록 곪잖나"며 "일단 그 상처를 인정하게 하는 게 우리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네 아버지들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언론 배급 시사가 31일 오후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다. 김동빈 감독(좌측에서 두번째)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언론 배급 시사가 31일 오후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다. 김동빈 감독(좌측에서 두번째)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고 김다영의 아빠 김현동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네마달


애초 유가족들은 영화의 결과물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사방으로 뛰면서 국가의 무능함과 외면을 호소해온 탓에 상대적으로 <업사이드 다운>이 너무 온건해 보였던 것. 홍영미씨는 "세월호 관련 영화를 만들 때마다 유가족 시사회를 먼저 한다, 볼 때마다 (참상에 비해 영화가) 너무 약하다는 게 주된 반응이었다"면서 "너무 약한데, 그것조차 견디지 못하고 두 번을 못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 영역에서 잘 승화시켜야 한다고 본다"고 생각을 밝혔다.

김동빈 감독은 물론이고 유가족들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 중 하나는 바로 "이제 지겹다"는 반응이었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은 "상처를 피하려는 하나의 회피일수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유가족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며, 피해자를 적으로 거리로 내모는 사회가 아닌 안전을 위해 함께 이 분들을 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유독 네 아버지의 사연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 감독은 "촬영하려고 한국에 머물다 아버지들의 뒷모습을 봤다"며 "쉽게 슬픔이나 아이에 대해 이야기 못하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진 부모들의 말에선 원망 보다는 자신들의 과제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느낌이 더 강했다.

"오늘이 사고 715일째입니다. 다영이 엄마는 아직도 이 현실 인정 못해서 누워있고요. 아이가 없어서 슬픈 것보다 당연히 지켜질 줄 알았던 약속이 안 지켜지는 게 더 참담합니다. 제가 50대 후반입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노후를 고민하던 시기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우리의 잘못이기보다 사회 구조 문제라 더 무섭습니다. 제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의 2세가 더 안전하게 일상의 행복을 꿈 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픔 우리가 마지막이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2년간 진실을 위해 싸워왔는데 제약이 있습니다. 방송 3사와 메이저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일부 사람들은 세월호의 세자만 나와도 거부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뛰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세월호 사고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키시는 분도 같이 봐서 꼭 대화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영 아빠 김현동씨)

"올해로 마흔 아홉인데 지금까지 제가 살고있는 세상이 천국인 줄 알았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건강한 몸과 정신을 운영하다가 아이에게 그런 세상을 남겨주는 게 목표였고, 그리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사 이후 지옥을 맛봤습니다. 몰랐을 뿐이지, 천국과 지옥이 백지 한 장 차이였죠. 알지 않아도 되는, 알고 싶지도 않았던 세상을 안 거죠. 평생 생각했던 가치를 버리고 살 건가 많이 고민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절 떠난 아이가 제게 숙제를 남긴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재욱 엄마 홍영미씨)

세월호 행사 있을 때마다 꿈에 아이가 나타나다

영화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두 부모는 최근 진행된 특별조사위원회의 2차 청문회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김현동씨는 "사고 직후 대통령이 진도 체육관에 와서 구조 못하면 책임을 지우겠다고 했고, 청와대에서도 진실 규명을 위해 특검도 약속했다"며 "(지지부진했던) 이번 청문회까지가 곧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거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현동씨는 "국회에서 본회의에 상정하고 통과만 시켜주면 되는데 선거법 등으로 바쁘다며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며 "이번 청문회도 당연히 국회에서 열려야 했고, 방송3사가 생중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행사 말미, 홍영미씨가 끝내 울음을 삼켰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한 영혼을 보내야 하는 걸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홍씨는 "이렇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이가 꿈에 나타난다, 내게 힘을 주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라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올해가 2주기고 앞으로 3, 4, 5주기 계속 되겠죠. 이 비극을 잘 승화시킬 때까지 이어질 겁니다. 저희도 슬픔에만 빠져선 안되겠고 변해야겠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만 변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잘 지켜봐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어느 날 우리가 웃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세월호 참사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욱 엄마 홍영미씨)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참사 2주기인 오는 4월 16일보다 이틀 빠른 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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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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