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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이다. 9시에 공항에 가는 첫 버스가 있는 줄 알고 일찌감치 갔더니 이미 버스는 와 있었다. 요금은 1인당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인 12달러로 채 20분도 안 걸리는 곳에 가는 정기운항 버스 치고는 너무 비싸다.

공항 수속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출발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다. 오랜만에 와이파이 통신을 했다. 공항인지라 속도가 빨랐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고 한 시간 만에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12년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나오는데 한국사람 같아 아내가 말을 건네니 안양대 교수라고 한다. 말을 나누다 보니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신학과 교수와도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참 좁은 세상이지!

스마트폰에 저장한 면허증 덕을 보다

렌터카 수속 밟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국제운전면허증만 가져오고 내 운전면허증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차를 빌리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던 차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그것을 보여주었더니 메일로 보내라 하는데 잘 사용해 보지 않아 메일이 가질 않는다. 옆에 있던 젊은이가 보자 하더니 화면을 복사기로 복사해 잘 나오니까 되었다고 한다.

운전면허증 원본이 있어야 하는 걸 왜 깜빡 잊었을까? 기본 상식인데. 국제면허증이 있어도 반드시 필요한 걸. 나이 들어 관심이 무뎌진 건가? 다음은 보험 추가다. 처음엔 2500달러까지 배상하는 기본만 갖고도 충분하다 생각되었는데 결국은 하루 20불씩 추가하여 완전 면책을 받았다. 물론 어떠한 사고로부터든지 마음 편하려고 한 것이지만 결국 차를 되 돌려줄 때까지 아무런 사고도 없어 보험금 80달러만 기부한 꼴이 되었다.

모든 수속이 다 끝나고는 20분 후에 자동차 열쇠를 받으러 오라고 한다. 그때 갔더니 좀 더 기다리라더니 30분이 지나서야 달랑 열쇠를 준다. 12시에 빌리기로 예약한 차를 한 시에 주고는 계약서에는 그대로 12시로 적혀있다. 주차장에 가니 아무도 없다. 내 스스로 많은 차 중 번호판을 보고 내게 할당된 차를 찾았다. 게다가 자동차 열쇠가 잘 빠지지 않는다. 시동을 끄고 내릴 때는 거의 열쇠를 빼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했다. 차의 마일리지를 보니 18만 킬로미터가 넘었다. 하루 10달러인 내비게이션도 아주 구닥다리이다. 아쉬운 대로 잘 사용하긴 했지만 싸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할 일은 아니다.

아직도 복구 안 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피해

내비게이션 덕에 숙소는 아주 쉽게 찾았다. 도시 중앙광장(City Central Square)에 가보니 지진의 잔해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옛날 좋았던 모습은 다 사라졌다. 캔터베리 대성당도 무너지고 상가도 다 무너졌다. 주변에는 12년 전에는 보지도 못 했던 고층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 있다. 지진의 영향으로 이곳에 살던 한국 사람들도 많이 떠났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어렵게 구입한 성당도 완전히 무너져 인근 성당에 다시 더불어 살고 있다고 한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의 상징 켄터베리 대성당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의 상징 켄터베리 대성당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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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그대로인 지진 피해 건물. 옆에 한글이 적힌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상가인 것 같다.
 아직도 그대로인 지진 피해 건물. 옆에 한글이 적힌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상가인 것 같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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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주변의 정겹고 활발했던 정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스타벅스, 2층에 있던 한국인이 경영하던 중국집, PC방 그리고 주변 콜롬보(Colombo Street) 길가에 늘어서있던 그 많던 가게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건물들은 없고 스산함만 남아있다. 이곳에 있던 관광안내센터도 이전해 물어물어 찾아가 내일 갈 테카포 호수(Lake Tekapo)와 쿡 산의 인근 마을인 트와이젤(twizel)에 2박을 예약했다.

12년 만에 만난 앞집 할머니

12년 전 살았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아내가 주소를 기억하고 있어 쉽게 찾았다. 이곳에 와보니 비로소 옛 기억이 난다. 혹시나 하고 아내가 우리와 벽이 붙어있던 앞집 문을 두들겼다. 친하게 지냈던 키위 할머니가 아직도 여기 살고 계신가 해서이다. 문을 열고 한 분이 나오는데 12년 전과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의 이사벨 할머니다. 둘 사이에 뜨거운 상봉이 이루어졌다. 올해가 90세란다. 그러니 우리가 있을 때가 78세였나 보다.

아직도 운전하며 다니고 있고 정원도 가꾸고 뜨개질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 뜨개질해 만들어 놓은 옷거리와 정성껏 담은 소스 한 병을 아내에게 준다. 지진 때 집이 피해를 받았으나 다시 리모델링하여 깨끗해졌다. 내부 살림도 옛 모습 그대로다. 2남 2녀인데 한 아들이 24세 때 교통사고로 죽어 그 사진을 아직도 보고 계신다. 우리가 살던 집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졌다. 그 맛있던 복숭아가 생각난다. 우리 집을 승계받아 온 사람도 이곳에 연구년으로 온 교수와 그 가족인데 할머니와는 별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천국에서나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나왔다.

 12년 만에 만나 해후하는 이사벨 할머니와 아내
 12년 만에 만나 해후하는 이사벨 할머니와 아내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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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전에 필자의 집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12년 전에 필자의 집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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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그 맛있는 피자가 생각나 리틀톤(Lyttleton)의 사쯔모(Satchmo) 피자집을 찾아갔으나 상호명은 Root로 바뀌었고 3월부터 다시 개장한다 해서 아쉽게 돌아와야 했다. 사츠모는 철의 입술이란 뜻으로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루이 암스트롱의 별명이다. 유독 그 가게에는 그의 사진이 많이 걸려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다음 날 일찍 전망이 좋아 집값이 비싼 썸너(Sumner)로 갔다. 피해가 심했다는 말과 달리 지진 피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복구한 건가? 썸너에서 길게 바라보이는 해안에 다시 갔다. 이곳에 지어진 도서관은 다행히 지진 피해가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공부가 될까? 그 앞에는 낚시광들을 위한 방죽(pier)이 길게 바다로 나 있는데 지금은 게 철인가 보다. 어망에다 닭고기를 넣고 잡는데 어망을 올리니 작은 게들이 올망졸망 들어있다.

 해안가에 세워진 아름다운 뉴 브라이튼 도서관
 해안가에 세워진 아름다운 뉴 브라이튼 도서관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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