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널 기다리며>에서 살인범 민수 역을 맡은 배우 오태경.

영화 <널 기다리며>에서 오태경은 살인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제보자 민수 역을 맡았다. 마냥 의협심에 충실한 인물은 아니다. 범인과 묘하게 얽힌 관계는 이 영화의 긴장감을 담보하는 하나의 축이다. ⓒ 이정민


언제부턴가 오태경(34)의 쓰임새가 수상하다. 말 그대로다. 전작 드라마 <신의 선물>(2014)에서 그는 문구점 주인으로 분하면서 아동 살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꼽히기도 했고, 영화 <조난자들>(2014)에선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지만 전과자라는 낙인으로 영화 내내 긴장감을 돋우던 인물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널 기다리며>에서도 비슷하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희주(심은경 분)를 위해 사건의 단서를 제보하는 민수(오태경 분)는 알고 보니 연쇄 살인마 기범(김성오 분)의 친구였다. 이 말에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도 "희한하게 내가 수상해 보이나보다"며 '일단' 웃어보였다.

수상한 남자

 영화 <널 기다리며>의 한 장면. 극중 민수(오태경 분)의 모습이다.

영화 <널 기다리며>의 한 장면. 역할을 위해 그는 체중을 15kg 증량했다. 묵직함을 주기 위해 2014년 겨우내 오태경은 오롯이 민수로 살았다. ⓒ NEW

개봉 이후 다소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오태경은 <널 기다리며>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유약한 여성이 사건의 판을 뒤집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라며 그는 비교적 명확하게 작품을 정리했다. 민수라는 캐릭터 역시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 중반부까지 신비감을 유지해야 했고, 오태경은 거기에 충실했다. 진짜 범인이 기범인지 혹은 민수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 또한 그의 임무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고, 무표정으로 내내 있어야 해서 연기가 로봇 같아 보일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보이진 않아 다행이었어요. 제 입장에선 기범과 민수 간 갈등에 주목하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람들 앞에 나타나길 꺼려하는 민수가 싸이코패스라면, 기범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인을 즐기는 인물이거든요. 둘 다 현실 세계에선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인물이지요! (웃음)

많은 분들이 두 친구의 관계 설정이 약하다고 하시던데, 원래 앞부분에 이야기가 더 있었어요. 한 여자를 놓고 둘이 갈등한 건데, 민수는 기범이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기범에게 밀린 이후)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찰에 제보를 하는 거죠. 민수 입장에서 최고의 복수는 기범을 교도소에 쳐넣는 거니까. 그리고 이 영화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단순히 복수극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연약한 소녀가 힘을 키워가잖아요. 시간이 지나 이 친구가 뭔가를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죠."

일각에서 제기된 여성 캐릭터가 소모적으로 쓰였다는 비판에도 그는 흔들림 없었다. 오태경은 "민수 역시 소모적으로 쓰였다면 쓰인 거지 않나"며 "20대 여성 배우 중 이야기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몇 안되는 심은경씨가 참 잘 해냈다"고 애정어린 말을 아끼지 않았다.

뚝심

 영화 <널 기다리며>에서 살인범 민수 역을 맡은 배우 오태경.

연기에 대한 확고한 꿈을 갖고 있다. 또래 배우들이 생계를 이유로 하나둘 그만 둘 때 오태경은 꿈과의 의리를 지켰다. "집에선 아버지가 작품이 없으면 배우는 백수라고 놀리시는데 그 말이 재밌으면서도 묘하다"라며 그가 웃어보였다. ⓒ 이정민

오태경은 7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아역 배우 출신이다. 드라마 <육남매>(1998)의 창희 역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1993)을 시작으로 영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올드보이>(2003)의 최민수 아역을 소화하며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함께 출연한 유연석이 급부상 한 것에 비할 때 속도가 느리다고 볼 수 있으나 오태경은 "대중적 관심을 신경 써 본적은 없다"며 "비교 의식 또한 갖지 않으려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런 뚝심이 오태경의 장점이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배우다. "2년 전부터 촬영을 시작한 <널 기다리며>를 진짜 기다렸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는 "조급해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기에 자연스럽게 실력을 더 키우려 한다"고 답했다.

"<신의 선물> 이후 내가 뭘 했지? 하는 생각은 당연히 들긴 하죠. 그러고 보니 작년에 한 회 분 출연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도 수상해 보이는 역할을 했네요? (웃음) 지금까진 절제된 연기를 했다면, 다음엔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동네 만화방 형 같은. (웃음) 물론 악역의 매력은 있습니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악역을 해냈을 때 그 쾌감도 있어요.

솔직히 연기적인 사춘기가 있었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있을 겁니다. 영화 <황진이>(2007) 때 감독님이 제게 연기를 즉흥적으로 하는 게 너무 티 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전 그게 연기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공부를 좀 더 해야 한다는 지적에 확 빠진 거죠. 그전까진 대사를 준비해서 현장서 느껴지는 대로 연기했거든요.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마치 뭔가 나쁜 짓을 하다 걸린 느낌이랄까. 그 말에 저도 긴장하게 됐고, 현장에서 NG를 더 내고 있는 절 발견했죠.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겠지만 그땐 촬영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다 현장서 배운 거거든요. 어렸을 때 감독님과 선배들에게 혼나면서 하나씩 알아왔으니까요. 특히나 아역 배우 출신이라면 저마다 이런 고민들을 할 거예요. 그래서 또래 아역 배우 출신들을 보면 더 애틋한가 봐요."

목표 : 연기깡패

충무로 여기저기서 다들 찾는 스타 배우는 아니라지만 오태경과 함께 작업한 이들은 그의 열정과 실력을 기억한다. 영화 <낮술>의 노영석 감독도 그 중 하나. <조난자들> 때 오태경과 연을 맺은 노 감독은 <널 기다리며> 속 그의 모습을 높이 평가하며 꾸준히 응원하는 조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진가를 잘 아는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입어 오태경은 스스로를 다듬는 중이다. 그의 지상 목표는 바로 '연기깡패'가 되는 것. 훅 하고 관객과 시청자를 끌어와 설득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연기를 보이든지 딱 절대 관객 100명을 만족시켜보고 싶다"는 그의 포부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우월한 신체조건을 타고 난 사람이 아니기에 전 연기를 잘 하는 수밖에 없어요. 선택할 수 있는 보기가 딱 하나! '잘 해야 한다'죠. 어려운 일이지만 깔끔하잖아요. 장르 불문하고 100명을 만족시키는 연기를 선보일 날이 올까요? 그날을 꿈꾸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영화 <널 기다리며>에서 살인범 민수 역을 맡은 배우 오태경.

<널 기다리며> 이후 그는 숨 고르기 중이다. 목표를 바라보며 웅크린 만큼 더 멀리 뛸 수 있는 법. "다음 작품으로 다시 인터뷰하고 싶다"며 오태경이 후일을 기약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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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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