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포스터

▲ 조이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실존인물의 삶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전기영화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하나는 인물의 삶을 객관적 시선에서 재조명한 평전과 같은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이 역경을 딛고 성공해가는 위인전, 또는 자서전의 형태다. 평전이라 해서 꼭 대상이 되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자서전이나 위인전이라 해서 미화하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많은 평전과 자서전, 위인전이 이러한 경향을 띤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올 상반기 개봉한 전기영화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두 편의 영화, <스티브 잡스>와 <조이>는 평전과 자서전이 지닌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사실 두 영화는 놀라울 만큼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모두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의 삶을 조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고 <조이> 역시 미국에선 신화라 불릴 만한 입지전적 사업가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를 다뤘다.

둘은 각기 할리우드에서 빛나는 명성을 가진 감독이 맡았는데 <스티브 잡스>는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오스카를 거머쥔 대니 보일, <조이>는 <아메리칸 허슬>을 86회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시킨 데이빗 O. 러셀이 연출했다.

두 편의 전기영화,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조이 조이(제니퍼 로렌스 분)의 성공기를 그리기 위한 부품같았던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

▲ 조이 조이(제니퍼 로렌스 분)의 성공기를 그리기 위한 부품같았던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두 영화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다. 전기영화로 분류되지만, 그 분류 안에서 이 두 영화보다 큰 격차가 있는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 세 개의 시점에서 스티브 잡스라는 실존인물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구성의 영화로 연출과 구성 측면에서 작가의 야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반면 <조이>는 일반적인 전기영화가 그렇듯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가정환경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위기와 극복, 성취라는 계단을 하나씩 밟아나간다.

<스티브 잡스>가 주인공의 결함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실존 인물인 스티브 잡스를 더 가깝게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면 <조이>는 조이 망가노의 성공신화를 더욱 화려하고 극적으로 치장하는데 골몰한다. 가족들과의 지속적인 갈등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조이의 선함을 강조하는 건 물론이다.

두 영화의 이 같은 차이는 완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존인물을 영상으로 구현하려는 어려운 목표는 대니 보일과 아론 소킨,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큰 도전이 되었지만 예고된 성공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며 치장에만 신경 쓴 영화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데이빗 O. 러셀과 그의 팀원들을 안주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한 대가

조이 조이(제니퍼 로렌스 분)가 처한 위험이 그리 긴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가 지닌 한계를 명백히 보여준다.

▲ 조이 조이(제니퍼 로렌스 분)가 처한 위험이 그리 긴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가 지닌 한계를 명백히 보여준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차이는 컸다. <스티브 잡스>가 많은 면에서 새로움과 야심 찬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 됐다면 <조이>에선 영화 내내 어떠한 새로움도, 소박한 야심조차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무도 안이하고 진부한 수법이 남발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조이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첫 번째 발명품의 영감을 얻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 모두는 클리셰라 해도 좋을 만큼 진부하고 안이하게 그려졌다. 이제껏 데이빗 O. 러셀이 찍어온 영화를 봐온 사람이라면 그가 <조이>와 같은 작품을 찍어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이>는 전반적으로 만듦새가 떨어지는 영화다. 줄거리는 흔한 성공기고 이야기의 흐름이나 전개, 연출과 연기, 캐릭터에 있어서까지 새롭다 할 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군데군데 들어간 데이빗 O. 러셀 특유의 유머가 분위기를 살리긴 하지만 보는 이의 인내심을 조금 더 연장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로버트 드니로와 브래들리 쿠퍼 같은 명배우들도 가라앉는 배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다.

<조이>가 내포한 모든 문제는 작은 차이에서 비롯됐다. 눈을 위로 향하고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는 대신 누구나 갈 수 있는 평이한 길을 선택한 게 결정적인 차이를 빚어냈다. 평범함은 이내 안이함이 됐고 안이함은 진부함이 됐으며 진부함은 지루함만 남겼다. 데이빗 O. 러셀이 조이 망가노의 성공 뒤에 남기려 한 건 과연 무엇일까? 재미도 감동도, 의미도 찾기 어려운 영화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데이빗 O. 러셀 제니퍼 로렌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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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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