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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일본 가와사키 혐한 시위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일본인들이 폭행하는 장면이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리포트를 한 기자는 '현장에 있는 경찰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편 시민을 거듭 위협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국회에 제출되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인종차별 금지법 제정을 위해 재일동포 3세 최강이자씨가 일본 국회에 출석해 증언하기도 했다. 이 법안이 만들어지면 혐한 시위를 근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었다.

"조선인은 꺼져라! 바퀴벌레 조선인은 꺼져라!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마을까지 시위했던 날, 제 마음은 살해당한 겁니다."

일본 내 혐한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일본 SNS에는 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실체가 모호한 '7.9 재일 한국인 추방일'에 대한 얘기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격렬히 호응했다.

"7월 9일부터 주변의 재일 한국인을 경찰에 신고해 보상금을 받아라."
"7월 9일부터 재일 한국인이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면 불법 체류로 간주해 강제 송환된다."
"7월 9일까지만 (재일 한국인의 존재를) 참아라."

밑도 끝도 없는 명백한 거짓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심각했다. 실제로 7월 9일부터 각종 신고처에는 이웃에 재일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니 추방해달란 이메일이 폭주했다. 불법 체류 외국인을 신고하는 일본 누리집은 엄청난 트래픽을 견디지 못해 다운될 정도였다.

인종 혐오에 맞서 싸우는 행동주의자의 시원한 한 방! <카운터스>
▲ 책표지 인종 혐오에 맞서 싸우는 행동주의자의 시원한 한 방! <카운터스>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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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지경이 된 걸까. 이 기괴한 상황의 시작에는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아래 재특회)'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일하 감독은 책 <카운터스>를 통해 재특회와 이에 맞서는 '카운터스'를 소개했다.

이 책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한 청원 사이트에 "위안부가 급여를 받는 매춘부이며 미군에도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내용을 미국 교과서에 기술하라"는 캠페인이 등록됐고, 놀랍게도 3만6000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했다고 한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단 반증이다. 그런데도 이에 맞서 행동하는 일본인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카운터스'다.

저자는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혐오 발언)'를 처음 목격한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술회했다. 촬영 차 찾았던 평화 시위 한 구석에 수백 명이 슬금슬금 모이더니 다짜고짜 마이크를 꺼내 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든 피켓에는 한글로 '조선인은 기생충, 독을 먹여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곧이어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선인은 돌아가라, 두드려 패서 내쫓자, 죽이자!", 차마 한국어로 옮기기 힘든 온갖 욕설도 쏟아졌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일본의 '넷우익'은 재특회를 지원 사격한다. 어디서 많이 본 표현인데 '언론은 좌익, 진실은 인터넷에만 있다'는 사명 아래 똘똘 뭉쳤다. 정작 내뱉는 주장은 황당하다. '외국인들 때문에 일본이 어렵다',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인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둥 근거도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바로 이 '넷우익'이 열광하는 인물이 재특회 초대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다. 심심찮게 한국 방송에도 등장한 사람이다. 그가 내뱉는 '조선인을 때려 죽이자'는 요지의 헤이트 스피치는 재특회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동영상 채널을 통해 실시간 방송된다.

책은 이 채널이 유료이며 접속자가 많아 재특회 활동에 든든한 돈줄이 된다는 소문이 있다고 소개했다. 마코토가 쓴 '혐한류' 저서들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재일 한국인들의 고통을 자양분 삼아 넷우익과 재특회는 쑥쑥 성장했다.

카운터스 제안에 쏟아진 응원 "묵인한 게 부끄럽다"

재특회의 원색적인 욕설을 '반사'하는 카운터스.
 재특회의 원색적인 욕설을 '반사'하는 카운터스.
ⓒ R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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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에 반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카운터스'다.

2013년 초, 불과 몇십 명으로 시작한 카운터스의 수가 처음으로 넷우익의 시위대보다 더 많아진 것은 6월 16일. 넷우익 시위대 200여 명을 그 두 배인 400여 명의 카운터스가 둘러쌌다. 불과 일주일 뒤인 6월 30일, 카운터스는 시위대의 열 배인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거의 매주 신오쿠보를 점령한 재특회와 넷우익의 행진을 막아 세운 것은 카운터스가 만든 인간 띠였다. - 51쪽

책은 카운터스가 장난스러운 트윗 하나로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한 음악잡지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던 노마 야스미치는 경찰에 넷우익에게 집회 장소를 허락하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합법적인 시위를 막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는 그저 넷우익 시위대에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트위터에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도 지지 말고 강하게 항의하자"는 뜻을 덧붙였고, 십여 명이 곧장 참여의사를 보내왔다. 응원도 들려왔다.

"그동안 헤이트 스피치를 들으면서도 묵인한 게 부끄럽다."
"재일 한국인을 향한 욕설이 울려 퍼지게 놔둔다는 건 일본의 수치다." - 54쪽

혐한 시위에 저항하는 카운터스의 모습. "재특회는 일본의 수치"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혐한 시위에 저항하는 카운터스의 모습. "재특회는 일본의 수치"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 R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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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인 사람이 50명, 이들이 첫 카운터스다. 인원은 계속 늘어 시작 반년 남짓인 6월 30일, 마침내 재특회 시위대의 10여 배인 2천 명으로 늘었다. 쩌렁쩌렁 울리던 재특회의 확성기 구호는 카운터스의 "돌아가!"란 맞구호에 묻혀버렸다.

결국, 이날 재특회 시위대는 목적지였던 한인 상가 밀집지역에 진입하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재특회가 뒷모습을 보이는 순간, 2천 명의 카운터스는 함께 얼싸안고 감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일본 경찰의 극진한 재특회 사랑이었다. 집회 날에는 재특회 시위대보다 많은 수의 경찰이 출동해 인간 띠로 시위대를 카운터스로부터 분리했다. 재특회 시위대가 각종 헤이트 스피치를 쏟아낼 동안 경찰 바리케이드는 충실하게 작동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내버려둬도 되느냔 항의에, 경찰 측은 '허가를 받은 합법적인 시위'란 말만 반복했다. 심지어 시위가 끝난 다음에는 지하철역까지 재특회를 에스코트한다.

"경찰이 보호해주니까 재특회 회원들이 저렇게 대담한 거예요. 눈이 마주치면 카운터스에게 욕설을 퍼붓죠. 그리고 우발적으로라도 우리랑 부딪히면 자기네 회원들이 찍은 동영상을 확보해서 경찰에 폭력으로 신고하는 거죠. 무섭다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요." - 158쪽

카운터스 최전선 지키던 '오토코구미'의 해산

도로에 무작정 앉아서 재특회 시위를 방해하는 전략 '시트인'
 도로에 무작정 앉아서 재특회 시위를 방해하는 전략 '시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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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스의 무력 제압 부대 오토코구미의 단원들.
 카운터스의 무력 제압 부대 오토코구미의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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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카운터스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책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때 등장한 사람들이 '오토코구미'다. 앞서 소개한 2천 명의 카운터스가 모였던 날, 한 참가자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토코구미인가요? 정말 고마워요. 나도 인터넷으로 비난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당신들이 현장에 나올 용기를 줬어요." - 154쪽

오토코구미는 물리력이 필요할 때 최전선에 나서며 카운터스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작가, 음악가, 만화가, 건축설계사, 사진작가, 우리가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달랐던 건 이들은 실제로 '행동'했다는 점이다.

오토코구미의 가입 조건은 정치성향이 아니었다. 가입 희망자는 '차별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여성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외국인 노동자가 일본 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등을 질문받는다고 한다. 즉, 이들이 뭉친 동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2015년 3월 28일, 오토코구미는 해산했다. 오토코구미를 이끌었던 다카하시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넷우익으로부터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넷우익들은 온갖 루머를 양산했다. 언제나 그렇듯, 근거는 없다. "다카하시가 용역 깡패를 고용한 것"이라는 따위다.

비록 오토코구미는 해산했지만 카운터스는 여전히 '반 헤이트 스피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은 이들을 '새로운 민주주의 세력의 등장'으로 평했다. '일본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풍경이 다시 나타났다'란 평가가 뒤따랐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재특회는 여전히 혐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근 위안부 문제를 합의한 데 대해 "위안부는 합법이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망언을 일삼고 있다. 물론 우익 정치인들의 악의적인 선동도 계속되고 있으며, 경찰은 여전히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

오토코구미 해산 후, 회원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한 회원이 저자에게 건넨 충고가 가슴을 친다. 이미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처음 재특회가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닐 때 나섰어야 했어. 코리아타운에 오기 5년 전부터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한국도 미리미리 막아야 할 걸?" - 231쪽

덧붙이는 글 | <카운터스> (이일하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2016.02 / 1만5천 원)



카운터스 - 인종 혐오에 맞서 싸우는 행동주의자의 시원한 한 방!

이일하 지음, 21세기북스(2016)


태그:#카운터스, #재특회, #혐한,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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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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