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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8시 30분경 당산역 부근에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너무 순식간이었거든요. 사람들 틈에 뒤섞여 저를 유달리 뒤에서 세차게 밀던 남자는 제 가슴을 툭, 만지고 지나갔습니다.

멍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방금 성추행을 당한 건가, 당했구나. 저 "당했구나"라는 네 글자로 생각이 닿기까지 족히 5초는 걸렸던 것 같습니다. 성추행 당한 가슴이 불에 덴 듯 화끈댑니다, 아직도요.

그래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저는 묵묵히, 황당한 표정으로 9호선 환승구간을 걸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더군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쩌면 "CCTV가 있으니 경찰에 말해라. 혹은 그 남자를 붙잡지 그랬냐"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당당한 내 이미지와 무력한 모습 사이에서의 괴리감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대합실에서 실시했던 성추행 예방 캠페인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대합실에서 실시했던 성추행 예방 캠페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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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성추행 당한 친구에게 저도 "붙잡아서 한 대 때리지 그랬냐, 나 같았으면 그랬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전 정말로 제가 성추행당하면 그 사람을 붙잡아 따귀를 올려붙일 줄 알았습니다. 절 알고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쟤는 당차니까 분명히 그럴 거야, 하고요.

그러나 전 그러지 못했습니다. 우선 사람이 그렇게 많은 와중에 제 모습이 찍혔을 리도 없거니와 이제 그 사람의 인상착의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거든요. 의식적 방어기제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자의 기억을 없애거나 오염시키고 합리화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의 얼굴은 흐릿하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느낌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성폭행 당한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죠. 저 역시 당하는 그 순간에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또렷하게 봤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 전 그 사람의 인상착의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남자라는 것 밖에는요.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6학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네요. 아무도 없는 찻길, 검은 차에서 한 남자가 절 불렀습니다. "얘, 〇〇고가 어디 있는 줄 아니?" "아뇨, 몰라요." 제 시선은 그 남자의 얼굴이 아니라 샅에 닿았습니다. 바지를 벗은 그 남자는 한 손은 운전대에, 다른 한 손은 샅에서 성기를 주물럭대고 있었거든요.

놀랍게도 전 집에 오자마자 그 남자의 얼굴도, 성기 모양도 잊어버렸습니다. 까만 눈동자를 봤다는 것 외에는 지금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길에 길 한복판에서 자위하는 남자도 봤지만 전 그 남자의 얼굴이나 인상착의, 성기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망각, 여기까지가 제1차 증상입니다. 2차 증상은 자기 의심, 합리화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성추행을 당하면서 제가 생각하던 저의 당당한 이미지와 저의 무력한 모습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내 혼란스러워졌죠. 내가 정말 성추행을 당한 건가, 내가 성추행 당하고도 가만히 있었다고? 아냐, 그럴 리 없어, 그 사람이 실수한 거겠지, 실수로 만진 걸 내가 오해한 걸 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적 방어기제, 이번엔 합리화 기제가 발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사람들은 정신적 방어기제로 합리화를 시작합니다. 굳세고 당찬 커리어 우먼이 가정폭력을 숨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당찬 자기 스스로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다 '은폐, 회피, 그리고 합리화'하는 거죠.

저는 제가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이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합리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옷을 들고 있었고, 그래서 옷을 제대로 들려고 하다가 실수로 내 가슴을 쳤을 거야, 하고요.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적다는 것을요. 왜 그 사람은 그렇게 유달리 세차게 밀었던 걸까요, 왜 나에게 밀착해 있던 걸까요, 왜 옷을 추스르기 위해 팔을 그토록 넓게 벌려야 했던 걸까요, 왜 하필 그 상황에서 들고 있던 옷을 추슬러야 했던 걸까요.

누더기가 된 기억

가장 억울한 건 지금 제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제 편이 아무도 없다는 걸 느낀다는 점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성추행이기에 증거가 없습니다. 가해자가 발뺌하면 그만입니다. 가해자도, 증거도 없고 오직 피해자만 있는 상황. 그것도 너무 상처받아 너덜너덜, 오염된 제 기억밖에 안 남았습니다.

누더기가 된 기억과 그 기억으로 아픈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내가 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디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만졌고 이게 왜 고의적인지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저는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아플 겁니다.

아픈데 타자 칠 기운은 있냐고요? 사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손에 힘이 빠진 느낌입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맥주 두 캔을 딴 뒤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컴퓨터 자판이 이렇게 딱딱한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온종일 속이 메슥거립니다. 회사에서 일할 땐 바쁜 업무 때문에 잠깐 잊을 수 있었죠.

그런데 퇴근하기 위해 지하철역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너무 나쁘더군요.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제가 성추행당했던 왼쪽 가슴이 다시 불에 덴 듯 화끈거렸습니다. 제 왼쪽으로 낯선 남자가 다가오는 것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싫던데요.

낯선 남자만 다가와도 싫었다
 낯선 남자만 다가와도 싫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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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세상의 반은 남자잖습니까. 도망칠 곳은 없었습니다. 남자를 볼 때마다 가슴은 화끈화끈,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습니다. 왼쪽 팔로 가슴을 가린 채 다녔습니다.

"절 위로해주세요"

위로를 받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제겐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알고 있죠.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성추행 당했다고 말하니까 친구들은 구체적인 과정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 욕을 하기에 앞서 저를 위로해줬습니다.

제 탓이 아니라고 많이 속상하냐며, 나중에는 큰 소리로 시원하게 욕을 하라더군요. 고마웠습니다. 한 친구는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당했냐고 캐물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 사람이 어디를, 어떻게 만졌다고 육하원칙으로 읊기에는 너무 속이 상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남자친구에게도 위로를 듣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남자친구가 싫어하면 어떡하지, 내가 더러워졌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식으로요. 말도 안 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전 페미니즘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내가 더러워진 듯한, 남자친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미안할 건 아무것도 없는데요. 내가 길을 가다 똥을 밟았을 때 그냥 짜증나고 슬플 뿐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미안하단 생각은 하지 않잖습니까?

굳이 미안한 대상을 꼽으라면 신발 밑창이겠지요. 못난 주인 둔 탓에 똥이 묻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그땐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남자친구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성추행을 당했다고요.

남자친구의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물론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분노에 저에 향한 위로는 당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ㅋㅋ.. .너무 화내지 마"라고 말하니 웃음이 나오느냐고 되묻더군요. 그래서 전 물었지요. 지금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냐고요. 남자친구가 아닌 제가 피해자로서 위로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가라앉았고 한참 후에서야 "차 뽑을래?"라고 물었습니다. 솔직히 짜증 났습니다. 정말로 전 그 사람을 욕하고 싶은 게 아니라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속상했지, 괜찮아, 그 사람이 나쁜 거야, 그 사람 벼락 맞을 거야" 하고요. 지금 남자친구는 절 만나기 위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절 위로하기 위해서 오고 있는 것이지요.

"성추행하지 마세요, 정말로 하지 마세요"

"서울 지하철에서 지난 한 해(2014년)에만 천 건이 넘는 성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의 YTN 보도 캡처
 "서울 지하철에서 지난 한 해(2014년)에만 천 건이 넘는 성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의 YTN 보도 캡처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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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게 제가 성추행을 당한 이야기를 적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잠재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가 잘못해서 당한 게 아니듯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여자라면 '저런 혼란을 겪을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난 ~해서 좀 더 현명하게 극복해야지'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남자라면 혹시 피해자가 될지 모를 당신의 연인이나 가족들에게 좀 더 잘 해주세요. 그리고 그들이 슬픈 날이 있거든(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소중하게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당신의 연인에게 분노한 얼굴을 보여주지 마시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성추행하지 마세요. 정말로 하지 마세요. 오늘 저는 처음 당한 일이기에 당황해서 못 잡았습니다만, 다음에 만난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오늘은 너무나 슬퍼서 기억이 누더기가 되도록 내버려뒀지만 다음에 이렇게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이곳에 글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이겁니다. 난 지지 않을 겁니다. 다음엔 순순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고를 날리는 겁니다. 난 피해자지만 부끄럽지 않습니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또한 비록 신체적인 힘은 약할지언정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나는 똑똑합니다. 제겐 좋은 친구들이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미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제가 당신의 친구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오글거리죠? 압니다. 그렇지만 이 오글거리는 말이 당신의 뇌리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슬퍼진 어느 날, 제 말을 기억하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고독하게 혼자 울고 있지 않길 바랍니다. 저처럼 혼자 맥주 두 캔 따곤 훌쩍대면서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걸,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걸, 밖에는 친구가 많다는 걸 떠올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함께라는 걸 우리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17일에 있었던 성추행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태그:#성추행, #지하철,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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