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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시작은 언론에서 보도된 경찰 관련 뉴스였습니다. 지난 14일, 대전지법은 40대 중반인 한 남자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짭새'라며 욕설한 혐의였습니다. 그 기사를 본 후 저는 지난 2011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경찰을 '짭새'라고 부르면 어떤 죄일까?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당시 이 기사에서 저는 영화 '조폭 마누라'의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되는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 <조폭 마누라>에서 꼬마 아이와 주인공인 조폭 마누라 '신은경'이 나눈 대화였습니다.

숙제를 하던 꼬마 아이가 주인공에게 숙제의 답을 묻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새가 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일순 당황한 조폭 마누라 역의 신은경, 잠시 후 진지한 목소리로 답합니다. 

"짭새."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대부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사람들은 흔히 경찰을 '짭새'라 칭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를 경찰 앞에서 함부로 쓰면, 형사 처벌을 받습니다. 대략 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짭새'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경찰을 비하하는 의미 '짭새', 그 유래는?

경찰을 비하하는 말로 알려진 단어 '짭새'는 국어사전에도 올라가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짭새'는 '학생들의 은어로, 경찰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유래에 의하면 '잡다'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인 '쇠'의 합성어로, 이후 사용 과정에서 강한 발음인 '짭새'로 변형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짭새'의 유래를 찾아보면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원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몇 개만 들면 첫 번째는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0년대 설입니다. 이 당시 경찰은 정부 지시에 따라 여성의 미니 스커트 길이와 남성의 머리 길이를 단속했습니다.

어느날 거리에서 경찰이 오는 것을 본 청년 중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경찰 출동을 알리고자 "잡아보세"라고 외치며 도망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너무 다급한 나머지 말을 줄여 "잡세다"라고 처음 외친 것이 이후 '짭새'로 굳어졌다는 설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또 하나는 전두환 정권 당시 '연세대학교 캠퍼스' 설입니다. 1980년대 초기, 대학에서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자 전두환 정권은 각 대학 캠퍼스에 사복 경찰을 상주시켰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복 경찰이 상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디 마땅히 있을 곳이 없던 사복 경찰이 주로 벤치를 차지하자 이로 인해 학생들의 미움을 샀다고 합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연세대의 상징이 독수리인데, 그 틈에 '잡새'처럼 사복 경찰이 끼어 앉아 있다고 조롱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후 사복 경찰을 가리킨 조롱식 표현인 '잡새'가 이후 된소리로 바뀌면서 오늘날의 '짭새'로 굳어졌다는 설입니다.

여하간 이처럼 다양한 '짭새' 유래는 너무도 설과 설이 난무하여 뭐가 진실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짭새'라는 단어 때문에 벌금 전과자가 매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찰 앞에서 화가 난다고 무심결에 사용하다가 형사 처벌 받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2015년 3월에는 강원도 춘천에서 출동한 경찰관을 보며 현직 소방관이 '짭새'라고 했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30대 초반의 이 현직 소방관은 신고를 받고 나이트클럽에 출동한 경찰관을 보고 "오늘 밤 짭새들이 엄청 떴네"라는 말을 했다는 죄로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경찰차를 보고 "짭새 간다"고 했다가 처벌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좀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2010년 5월, 당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술 먹고 집에 가다가 경찰차가 지나가길래 '짭새 간다'고 했는데 그걸 (경찰관이) 듣고 차를 세우고 와서 지금 뭐라고 했냐고 물어봤다. 그때 미안하다고 꼬리를 내렸어야 했는데, 괜히 오기가 생겨서 '짭새를 짭새라고 부르지 뭐라 부르냐?'고 성을 낸 게 실수였습니다."

경찰의 '짭새' 발언 관련 모욕죄 처벌에 대한 트위터 반응.
 경찰의 '짭새' 발언 관련 모욕죄 처벌에 대한 트위터 반응.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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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경찰은 이 사람을 현장에서 연행한 후 모욕죄로 입건, 결국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은 이처럼 '짭새'라는 단어 사용으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국민들은 경찰에 대해 '짭새'라는 단어를 쓰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최근 대전지법에서 내려진 판결을 보니 불현듯 그 생각이 다시 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2011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기사를 다시 제 페북에 링크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경찰을 '짭새'라 불렀다 하여 법원이 한 시민에게 모욕죄로 200만 원을 선고했다는 오늘 기사를 봤습니다. 경찰을 왜 짭새라 부를까요? 그 이유를 경찰이 알아야 합니다. 경찰이 경찰답게 일하는 날을 염원합니다."

현직 고위 경찰간부의 반발, 이어진 경찰 순례

그러자 페북에서의 반응은 역시 뜨거웠습니다. 차마 이곳에 원문을 그대로 옮기기 불편할 정도로 경찰을 향한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경찰을 짭새라 부르는 것도 불만"이라며 더 강한 단어와 톤으로 경찰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 유 아무개씨가 비아냥 조의 글로 제 글을 패러디하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 전문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ㅋㅋ. 기자를 왜 기레기라고 부를까요? 그 이유를 기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기자가 기자답게 일하는 날을 염원합니다. 욕할 넘만 욕하지 그 직종을 욕하지 말자. 왜 그 직종만 같이 책임져야 하나? 아예 대한민국 반성 모드로 들어가지. ㅋㅋㅋ 이따위 글 쓰고 기자라고 하지 말자. 제대로 비판해야 고쳐진다."

생각이야 다를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너무 이상했습니다. 링크한 제 기사는 경찰을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경찰을 짭새라며 국민이 비하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함께 생각하자며 쓴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기사에 대해 지나치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그가 일반적 인식과 동떨어져 있다 여겨 그 글을 쓴 사람의 페북을 찾아가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글을 쓴 이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재직하고 있는 현직 고위 경찰 간부였습니다. 국민이 페북에 쓴 글에 대해 현직 공무원인 고위직 경찰관이 이런 식으로 비아냥 거리는 글을 쓴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선뜩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글을 읽어보면 본문에서 제가 직업적 기자가 아니라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며, '인권운동가로서 경찰의 개혁을 요구하는' 기고 글임을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 보지도 않은 채, 그는 저를 직업적 기자로 속단했고, 그래서 저를 기자 비하 단어인 '기레기'라 표현하며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현직 공무원인 고위 경찰이 기자에게 대놓고 '기레기'라 공격하는 것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업 기자도 아니고, 또 그의 글을 보니 경찰을 짭새라 칭한다고 오해하며 공격하는 상황에서 "난 기자가 아니예요"라고 밝힌다 해서 사과할 것 같지도 않아 황당하지만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후 촌극 정도로 여기고 그냥 잊어버리자 생각하고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은 다음날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번엔 또 다른 일단의 경찰관들이 차례로 제 페북을 찾아와 그 경찰관을 응원하며 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를 비아냥댄 고위 경찰관의 글에 대해 경찰관 십 수명이 찾아와 '좋아요'를 누르는 한편, 왜 경찰을 비난하느냐는 항변성 글을 남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짐작건대 아마도 누군가가 경찰관 전용 어떤 사이트에 문제의 '기레기'  공격 글을 퍼가서 올려 놓고 이를 본 경찰관들이 자신의 경찰 고위 간부를 지원한답시고 몰려온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하간 저는 현직 경찰관들이 이처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페북을 찾아와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짭새'라는 단어, 확실히 없앨 방법

오해가 있을까 싶어 다시 한번 제 생각을 밝힙니다. 저는 경찰을 '짭새'라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2011년 기고한 기사 역시 '경찰은 짭새'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도 수고하시는 '진짜 민중의 지팡이'이신 경찰관님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는 글로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다만, 왜 국민이 경찰을 '짭새'라 부르는지 그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주장이었습니다. 국민이 경찰에게 신뢰를 잃고 그 불만으로 '짭새'라 칭했다 해서 이를 모욕죄로 처벌하는 것은 옳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기고였습니다. 경찰의 도덕적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니 공권력을 집행하려는 경찰에게 "너나 나나 똑같은 '개찐 도찐'인데 왜 나를 처벌하냐?"는 식의 '저급한 저항감'이 이른바 '짭새' 논란을 불러오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저는 모욕죄 처벌 남발로 국민이 내지르는 '짭새' 단어를 막는 것은 옳지 않고 경찰의 도덕적 각성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돼야 경찰이 그처럼 숙원으로 여기는 '수사권 독립'도 국민이 지지할 것이고 경찰을 '우리 사회의 양심과 정의의 지킴이'로 국민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요? 연일 터지는 경찰의 각종 비리 앞에, 성범죄 수사관이 10대 여성 피해자를 어찌했다는 뉴스 앞에, 의경을 총으로 쏘아 죽인 경찰관이 피해 부모에게 "죽은 아들이 유학간 걸로 생각하라"는 막말을 했다는 뉴스에 국민은 "정말 너나 잘해"라는 냉소를 갖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재심 개시된 '2000년 완도 존속살인 무기수 김신혜씨 사건'의 김신혜씨가 지난 2015년 11월 18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지난해 재심 개시된 '2000년 완도 존속살인 무기수 김신혜씨 사건'의 김신혜씨가 지난 2015년 11월 18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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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서 일어난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의한 검찰, 법원의 합작 인권 유린 '충주 공권력 남용 피해 박철 부부 무죄 사건'의 문제의 장면. 경찰관이 박철씨에게 팔이 비틀려 꺽였다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 이때 비디오에 문제의 장면이 가려져 진실을 밝히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충주에서 일어난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의한 검찰, 법원의 합작 인권 유린 '충주 공권력 남용 피해 박철 부부 무죄 사건'의 문제의 장면. 경찰관이 박철씨에게 팔이 비틀려 꺽였다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 이때 비디오에 문제의 장면이 가려져 진실을 밝히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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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인권운동을 하는 저는 경찰의 선행보다 '경찰에 의한 공권력 남용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 재심 개시된 '2000년 완도 존속살인 무기수 김신혜씨 사건'입니다. 경찰이 만들어낸 조작 증거로 아버지 살해범이 된 김신혜씨는 다행히 경찰의 조작 증거가 인정되어 현재 재심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충주에서 있었던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의한 검찰, 법원의 합작 인권 유린 '충주 공권력 남용 피해 박철 부부 무죄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며, 영화 '7번방의 선물' 모티브가 되었던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의 무기수 정원섭 목사 역시 경찰관의 조작으로 한 인생이 파멸된 사건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분은 36년 만에 경찰에 의한 고문 사실이 드러나 무죄를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경찰의 공권력 남용 내지는 횡포로 억울하다는 호소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권 피해자들에게 들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국민은 경찰이 억울한 이들의 호소를 들어주는 정의로운 우리나라의 '슈퍼맨'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앞에서는 군림하고 강자 앞에서는 작아지는 이른바 '짭새'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찰과 국민 사이에 놓은 오래된 불신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이미 경찰 스스로 국민에게 약속한 '경찰 서비스 헌장'을 제대로 지켜주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모두 6개 항으로 만들어진 이 '경찰 서비스 헌장'을 경찰이 지금부터 제대로 지켜 준다면 어느 국민도 더 이상 경찰을 향해 '짭새'라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누군가 또 경찰을 '짭새'라 비하한다면 그때는 경찰보다 국민이 먼저 나서 그런 사람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정말 '경찰도 바로 서고, 국민도 행복해 지는' 대한민국이 되는 것 아닐까요. 모든 경찰서 입구에 붙어있지만, 그러나 누구도 잘 보지 않는 그 6개 항의 경찰 서비스 헌장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범죄와 사고를 철저히 예방하고 법을 어긴 행위는 단호하고 엄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1. 국민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디든지 바로 달려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1. 모든 민원은 친절하고 신속, 공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1.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제일 먼저 생각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겠습니다.
1. 인권을 존중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1. 잘못된 업무는 즉시 확인하여 바로잡겠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스스로 약속한 이 서비스 헌장, 정말 이대로 지켜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짭새'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날을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그러한 날이 빨리 오는 '대한민국 경찰'을 응원합니다. 더불어 오늘 밤도 수고하실 모든 진짜 '경찰관' 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태그:#짭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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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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