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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홍대 거리의 모습.
▲ 홍대 거리 2015년 11월 홍대 거리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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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교동, 상수동, 연남동 일대에는 재미있는 가게가 많다. 카페, 식당, 서점 등 모든 가게가 독특한 멋을 뽐낸다. 사람들은 그런 공간들을 발견하고 만나기 위해 홍대를 찾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곳에서 인연을 맺는다. 참 행복한 일이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이리카페'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카페 한쪽 벽에는 건축, 패션, 미술 관련 원서나 도판이 빼곡히 꽂혀 있고 다양한 소설과 시집도 있다. 노트북으로 작업하거나, 스케치북을 들고 와 오랜 시간 앉아 그림을 그려도 눈치 주는 사람 없다.

이리카페는 글쓰기, 회화, 음악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머무르고,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여러 시인과 소설가들은 독자와 만남의 자리를 가졌고, 각종 사진이나 미술 전시도 열렸다. 인디뮤지션의 공연뿐만 아니라 판소리와 같은 국악 공연, 연극까지 다양한 문화 행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카페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건물주가 덜컥 건물을 팔아버린 것이다.

예술가들의 터전 이리카페,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이리카페의 밤
 이리카페의 밤
ⓒ 이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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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게가 생기고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거리가 활기를 띠면 '상업적 가치'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월세가 오른다. 단순히 물가를 따라서 월세가 오르는 것이 아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열심히 장사해서 그 효과로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서 발생한 상업적 가치 때문에 월세가 오르는 것이다.

월세만 오르겠는가? 건물 가격도 오른다. 건물주는 앉아서 두 가지 이익을 다 갖는다. 그것이 건물주의 투자의 대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건물주는 그 대가를 기다리며 지난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순수하게 건물주의 노력으로 일군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가게의 입장에서 월세가 오른다 하더라도 장사가 매우 잘 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공간의 크기와 유동인구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이익의 폭은 거의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다.

대부분 가게에서는 월세가 오르더라도 쉽게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가게는 손님과 함께 연결되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순히 월세로 인해 이익률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가게를 옮길 수는 없다.

사람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술에 취하기 위해 단골집을 찾지 않는다. 그곳에서 맺은 인연이 있고, 지나온 추억이 있고, 가게가 주는 만족감이 있어 그곳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가게의 점주는 대부분 월세가 오른다 하더라도 그것을 감내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리카페도 마찬가지다. 2009년 235만 원으로 시작한 월세가 2014년에 380만 원이 되었다. 그동안 음료 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손님들의 임금 수준과 카페의 일반적인 음료 가격을 생각하면 여기서 가격을 더 올릴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금씩 이익이 줄더라도 버티고 있다.

하지만 건물주는 어떤가. 꼬박꼬박 월세를 올려 받았고, 상수동에 이리카페가 생기고 골목 상권이 형성된 뒤 큰 시세차익을 얻고 건물을 팔아 버렸다. 이 이익은 전부 '건물주'의 것일까? 이익은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모두가 '공유'하던 공간을 처리해도 되는 것일까?

모두가 공유하던 공간, 과연 건물주만의 것일까

2월 29일 손님과의 대화
 2월 29일 손님과의 대화
ⓒ 이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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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리카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공간은 누구의 공간인가?"

이리카페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이 팔렸다는 통보를 받은 시점부터 이리카페와 함께 해온 사람들과 함께 향후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과 29일엔 이리카페의 전·현직 직원들, 단골손님들에게 카페의 상황과 사정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다.

현재 이리카페가 직면한 상황이 단순히 이리카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은 과거에도 겪어왔고,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리카페는 공간의 공공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간 이리카페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이런 자리는 마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리카페의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지극히 사적인 개인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조금씩 침식되고 있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지나치게 쫓기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여백을 없애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40평이 조금 넘는 카페를 적당한 월세로 유지하는 것보다, 단위 면적당 최대의 이익을 내는 것을 생존의 지혜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생존 전략을 취하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관일까.

회사를 생각해보자. 극단적인 효율성만을 좇아 해고를 남발하고, 계약직을 사용하고, 직원들의 퇴근 후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어떻게 창조적인 업무가 가능할까. 그곳의 구성원은 오직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다.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다 맞닿아 있는 문제다.

이리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비빌 언덕'임을 인식하는 것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공간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훈보 기자는 독립출판잡지 <월간이리> 편집장입니다.



태그:#이리카페, #월간이리, #젠트리피케이션, #홍대,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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