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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김명민 분)과 이방원(유아인 분).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김명민 분)과 이방원(유아인 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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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도전이 자주 죽는다. 지난주(15일)에 또 죽었다. 2014년 6월 종영된 배우 조재현 주연의 KBS <정도전>에 이어 1년 9개월 만이다. 이번에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다.

이번 죽음은 아주 멋졌다. 이방원 부대에 포위된 정도전은 도망가지 않고, 일부러 정문을 열고 나가 스스로 체포됐다. 그런 뒤 이방원에게 산책을 제의하더니, 이방원의 칼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 속 장면이다. 하지만, 시청자의 바람을 반영한 장면이다. 실제의 정도전이 그렇게 멋지게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 담긴 장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의 최후는 음력으로 태조 7년 8월 26일자(양력 1398년 10월 6일자) <태조실록>에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그려진 그의 최후는 영웅의 그것이라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좀 초라한 편이다.

죽기 직전, 정도전은 한성부 송현방에 있는 주택의 정자에서 측근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광화문광장 동북쪽이다.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바로 옆이다. 이방원이 그 집을 포위하자, 정도전은 담을 넘어 옆집으로 피신했다. 옆집마저 포위되자, 조그만 칼을 들고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고 한다. "칼을 버리라"고 고함을 치자, 칼을 버리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고 한다.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자료가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그는 붙들린 직후에 <자조>라는 자조적인 시를 남겼다. 시에서 그는 "삼십 년 동안 애쓰고 힘들인 업적/ 송현 정자에서 한번 취하는 사이에 결국 헛되이 되었구나"라고 비통해했다.

<태조실록>과 <자조>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므로, 실록 내용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록을 무작정 배척할 수도 없다.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들이 상당한 독립성을 갖고 있었고 또 임금도 실록을 함부로 열람할 수 없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실록 기사가 죄다 거짓으로 꾸며질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이 비굴하게 죽은 것처럼 묘사된 부분은 과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실록에 담긴 핵심적 사실관계만큼은 반대 증거가 없는 한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록에 담긴, 핵심적 사실관계 중에 좀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정도전의 체형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정도전의 체형이 달랐다면 역사가 바뀔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부터 그 부분을 상세히 살펴보자.

"배가 볼록한 자가 제 집에..." 비만이었던 정도전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옆의 옛 한국일보 자리.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옆의 옛 한국일보 자리.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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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쿠데타를 벌인 1398년 10월 6일 밤 9시 이후였다. 이방원은 안산 군수 이숙번의 군대를 이용해 경복궁을 포위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인 육조거리에서부터 지금의 서울시청 쪽으로 쿠데타군이 늘어섰다. 그 시각, 정도전은 송현방의 그 집에 있었다. 측근인 남은의 첩이 사는 곳이었다. 정도전의 자택은 인근에 있었다. 종로구청 및 종로소방서가 있는 곳이 그의 집이었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나 대한민국 전두환의 12·12 쿠데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국가원수와 실권자가 분리된 경우에 쿠데타의 성공 여하는 실권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달려 있다. 실권자를 체포하거나 죽인 다음에 국가원수의 재가를 받아야 쿠데타가 성공한다.

조선 건국 이후 6년간, 형식적 국가원수는 이성계였지만 실질적 리더는 정도전이었다. 그래서 이방원 부대의 입장에서는 주상 이성계나 왕세자 이방석보다는 실권자 정도전을 잡거나 죽이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이방원은 육조거리에 군대를 배치한 상태에서 송현방 집을 포위했다. 이 집을 포위한 병력은 이방원을 빼고 열 명 정도였다. 공격 개시에 앞서 이방원은 이웃집 세 곳에 불을 질렀다. 도주로를 사전에 차단할 목적이었다.

이웃집에 불을 놓은 뒤에 쿠데타 병력이 그 집 안으로 진입했다. 이방원은 도주로를 차단할 의도로 불을 질렀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 정도전에게 '도망가라'는 신호를 준 듯하다. 병력이 진입했을 당시, 정도전은 이미 담을 넘은 뒤였다. 

그러자 이방원은 옆집으로 뛰어갔다. 옆집 주인은 "배가 볼록한 자가 제집에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도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의 배가 볼록했던 것이다.

지금의 옷보다 품이 넓은 관복을 입었는데도 볼록한 배가 드러났을 정도니, 정도전은 과체중을 넘어 비만 상태였던 게 확실하다. 당시 남성의 평균 키는 160cm가 좀 안 됐던 것으로 보인다. 160 미만의 키에 비만 체형인 사람을 연상하면, 정도전의 실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정도전의 체형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원은 위의 <태조실록>에 따르면 "배가 볼록한 자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대번에 정도전을 떠올렸다. 이방원은 그 집에 수하 네 명을 투입했다. 잠시 뒤 정도전이 침실에서 끌려 나왔다. 그런 다음, 이방원의 부하가 정도전을 쓰러뜨렸다. '배가 볼록한 자가 들어왔다'는 제보가 이방원에게 들어간 다음, 정도전이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충북 단양군 도담삼봉에 있는 정도전 동상.
 충북 단양군 도담삼봉에 있는 정도전 동상.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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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독'으로 인해 살이 찐 정도전

정도전을 포함해 사극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체형이 날씬한 편이다. 하지만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의 상당수는 무사 출신이 아닌 한 그러기가 힘들었다.

역사를 이끈 인물들의 상당수는 사회적으로는 귀족이나 선비이고 경제적으로는 지주계급이었다. 그래서 노비의 시중을 받으면서 육체적으로 편하게 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들 중에는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몸을 움직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들 중에는 배가 볼록한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왕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왕건이나 이성계처럼 직접 전장을 누빈 경우가 아니라면, 상당수의 왕들은 정도전과 같은 고민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용변마저도 화장실이 아닌 자기 방에서, 그것도 궁녀의 도움으로 처리할 정도로,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죽기 1년 전인 1397년에 출생한 이방원의 3남, '세종'도 비만의 대명사 같은 왕이었다. 

세종은 정도전보다 훨씬 더했다. <세종실록> 곳곳에 적힌 세종의 '건강 검진기록'을 보면, 그의 건강상태는 'F 학점' 수준이었다. 그는 일생을 두고 당뇨병·안질·임질·어깨통증·다리통증·관절질환·중풍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나이 들어서만 이랬던 게 아니다. 젊을 때는 몸이 과도하게 비만했다. 세종 즉위년 10월 9일자(1418년 11월 6일자) <세종실록>에서는 세종이 뚱뚱하고 무겁다고 했다. 이때 나이가 스물둘이었다. 이걸 보면, 10대 때부터 이미 과체중이나 비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운동을 싫어하고 공부를 지나치게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정도전처럼 세종대왕도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정도전은 건국 이후로는 더욱더 몸을 움직일 기회가 없었다. 업무는 분명히 바빠졌지만, 육체적으로 움직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주로 책상 앞에서만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의 지나친 일 욕심에서 기인한다. 그는 일 중독 환자였다.

이성계를 대신해 국정을 총괄하는 와중에도 정도전은 여러 가지 설계에까지 직접 개입했다. 한양 도성과 경복궁의 설계에 간여한 것은 물론이고, 한양 각 동네의 지명과 경복궁 건물들의 명칭을 짓는 데까지 일일이 간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선경국전> 같은 법전도 직접 짓고 <고려사> 같은 역사서 편찬에도 개입했다. 거기다가 새로운 나라의 철학적 기틀을 세우기 위한 집필에도 손을 댔다. 남한테 위임할 수도 있는 일을 죄다 도맡았던 것이다. 낮에는 국정을 총괄하고 퇴근 후에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이따금씩 술자리에도 참석했으니, 체형이 좋아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도전이 일을 '적절하게'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다

정도전의 일 중독은 체형만 망가뜨린 게 아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방원의 쿠데타를 방치하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일을 적절하게 하면서 이방원 같은 정적을 좀 더 세밀히 관찰했다면, 이방원한테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정도전이 건강에도 신경을 쓰면서 적절하게 일을 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직무와 건강을 적절하게 안배했다면 허리 사이즈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정적한테 신경을 쓸 시간도 좀 더 많아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애써 세운 나라를 그렇게 쉽게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흔히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정도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의 허리 사이즈가 1인치만 가늘었다면 조선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상상해볼 수 있다. 가정이나 회사를 이끄는 사람의 허리 사이즈가 소속 집단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듯, 정도전의 허리 사이즈도 역사에 어느 정도의 영향은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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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