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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가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 인권 침해 논란 등 우려했던 일도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일부 국가에서는 최근 들어 페이스북 가입자 수가 정체 상태에 빠지거나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100불인 캄보디아에서는 지난해부터 페이스북 가입자 수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2015년 한 해 동안 캄보디아 페이스북 가입자가 전년 대비 무려 66.5%나 증가했다는 통계조사 결과(The Open Institute 조사)도 있다.

대도시 중심의 빠른 인터넷 보급률이 캄보디아에서 페이스북 가입자 수 증가에 큰 몫을 해냈다. 캄보디아 체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인터넷 사용자 수가 무려 6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캄보디아 총리 페이스북 계정, '좋아요' 조작 의혹

캄보디아 훈센 총리 페이스북 갈무리.
 캄보디아 훈센 총리 페이스북 갈무리.
ⓒ 훈센 총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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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30년 장기 집권을 이어온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 '좋아요' 수가 지난 3월 초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야당인 캄보디아 구국당(CNRP) 총재이자, 오랜 정치적 라이벌인 삼 랭시 총재보다 무려 80만 명 이상 높은 수치이다.

그런데 최근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을 두고 '좋아요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사용자 중 상당수가 외국인이란 사실 때문이다. 이에 '가짜 계정'을 동원해서 '좋아요' 수를 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영국 BBC를 비롯해 캄보디아 현지 영어신문 <프놈펜 포스트>가 총리의 페이스북 '좋아요' 수치 관련 조사자료를 보도한 바 있다. 기사에 따르면, 총리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사용자 중 캄보디아인은 58%. 나머지 42%는 외국인 사용자들이다. BBC는 220만 명을 기록 중인 제1야당 총재 삼 랭시의 '좋아요' 수는 83%가 국내에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한 달 동안 조사 결과는 더욱 놀랍다. 한 달간 무려 77만9천 명이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에 '좋아요'를 눌렀는데, 그중 캄보디아인은 17만7331명에 불과했다. 77만 명 중 80%에 가까운 나머지는 외국인 계정이다. 그중 인도인은 25만5692명이 제일 많았고, 다음으로 필리핀인이 9만825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좋아요'를 누른 계정 중 외국인 계정 가운데 특히 인도인이 많은 이유에 대해 파이 시판 정부 대변인은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지역 신문은 전했다. "인도 사람들이 '좋아요'를 클릭한 게 무슨 문제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현지 영어신문 언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이 문제를 최근 정치적으로 다시 쟁점화한 것은 해외망명 중인 제1야당 총재 삼 랭시 대표다.

"군인·경찰도 가짜계정 가담" 주장에 총리는 '침묵'

연설 중인 캄보디아 훈센 총리. 최근 캄보디아 독재자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좋아요' 수가 3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가운데 제1야당 총재가 "공무원·경찰까지 동원한 가짜 페이스북 계정 때문"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연설 중인 캄보디아 훈센 총리. 최근 캄보디아 독재자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좋아요' 수가 3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가운데 제1야당 총재가 "공무원·경찰까지 동원한 가짜 페이스북 계정 때문"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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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랭시 대표는 훈센 총리의 개인 페이스북을 두고 공무원과 군인·경찰까지 총동원한 '좋아요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정부 관료 중 한 명이 정부 지침에 따라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라는 지침 문서를 하달했다는 글을 지난 9일(현지시각)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해당 문서는 "모든 공무원·군인·경찰 등을 포함한 모든 지지자가 '가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좋아요' 수 조작에 가담했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삼 랭시 대표는 '정부가 집 없는 가난한 자들로부터 계정을 사들이기까지 했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총리실 고위 관료 측에서 즉각 반발하며 반격에 나섰다. 이 관료는 자신과 훈센 총리를 모함한 죄로 야당 총재를 프놈펜 법정에 제소했고, 보상금으로 미화 5천 달러(약 6백만 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당사자인 솜소운 총리실 장관은 지난 11일 현지 영문 일간지 <캄보디아 데일리>와 인터뷰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그는 "당원들에게 페이스북 관련 지시를 내린 것은 사실이나 외국 계정을 통해 '좋아요' 수를 부풀렸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이 문제에 관해 정작 당사자인 훈센 총리는 침묵하고 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페이스북에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은 상태다. 평소 사소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좋아요 조작' 논란 속에서도 지금까지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은 '좋아요' 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훈센 총리가 직접 올린 사진들은 매번 현지 언론에 의해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총리 본인도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2018년 총선 대비한 '이미지 관리'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난달에도 총리는 자신의 욕조에서 찍은 '셀카'부터 집 앞 노점상에서 쪼그리고 앉아 현지 음식을 먹는 모습까지 공식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됐다. '서민적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지지세를 확산시키려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2년 후인 2018 총선을 대비한 '이미지 관리용'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월 훈센 총리가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2년 후 총선을 대비, 30년 장기 독재의 권위적인 모습을 희색시키기 위해 서민적 이미지를 부각하려 노력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훈센 총리가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2년 후 총선을 대비, 30년 장기 독재의 권위적인 모습을 희색시키기 위해 서민적 이미지를 부각하려 노력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훈센 총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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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에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 당시 눈이 반쯤 감긴 피곤한 모습의 자기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지루한 연설을 듣던 중 잠시 졸던 자신의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려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훈센 총리가 이를 그대로 흉내낸 것이다.

사실 캄보디아 국민은 총리의 행동이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동안의 권위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서민과 소통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 '동네 할아버지' 같은 소탈한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훈센 총리의 전략은 국내 유권자에게 어느 정도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

훈센 총리는 본인 페이스북 계정 방문자들의 댓글에도 속히 반응하고 있다. 심지어 댓글 중 일부를 정책에 반영하는 등 활용 범위를 넓히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총리가 올린 페이스북 글 한 줄, 사진 한 장에도 정부 당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 나라에선 '훈센 총리의 말 한마디가 법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평소 SNS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정부 관료들마저 지난해부터 하나둘씩 페이스북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집무시간에도 페이스북에 매달려 총리의 글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기에 바쁜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는 소문이 있다.

또한 캄보디아에서는 지방정부 책임자들이 페이스북으로 국민들과 소통하거나 정책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다. 훈센 총리는 이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자신의 개인홍보용 앱까지 만들었다. 자신의 페이스북과 연동해 조회 수를 늘리려는 방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영리한 SNS 활용, '현실 인기'는 글쎄

훈센 총리가 페이스북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 총선이 끝난 직후부터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삼 랭시가 이끄는 통합야당(CNRP)은 진보 성향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SNS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시기적으로 인터넷 서비스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점차 퍼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또한 저가의 중국산 스마트폰이 쏟아지면서 소셜미디어의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삼 랭시 야당 총재는 4년간의 긴 해외망명생활 중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젊은 야당 지지자들과 거의 매일같이 소통하했다. 현 여당과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거나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홍보하는 도구로 페이스북을 적절히 활용했다. 이러한 유권자들과의 소통은 야당의 선전으로 이어졌다. 그해 총선에서 20여 석의 야당은 전체 의석 123석 중 55석을 얻는 파란을 일으켰다.

훈센 총리가 이끄는 정부·여당은 간신히 총선을 이겨 정권을 지키는 데 성공했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정부·여당은 뒤늦게나마 SNS의 정치적 활용 가치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 가입했지만 거의 활용되지 않던 총리의 페이스북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2월에는 '좋아요'를 누른 누리꾼이 2백만 명을 넘어서면서 삼 랭시 야당 총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30년 장기집권 철권 통치자인 훈센 총리는 나이 60대 중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시의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매우 영리한 정치인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런 사실을 입증해주는 사건이 지난해 있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자신의 최대 정적인 삼 랭시 야당 총재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훈센 총리가 제1야당 삼 랭시 총재와 함께 찍은 사진.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훈센 총리가 제1야당 삼 랭시 총재와 함께 찍은 사진.
ⓒ 훈센 총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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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총리가 숙명적 라이벌인 삼 랭시 야당 총재와 그 가족들을 초대해 함께 나란히 어깨를 한 채 포즈를 취한 사진이었다. 이는 캄보디아 국민 사이에서 엄청난 반응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도 페이스북 때문에 때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지난 1월 일어난 사건이다. 한 해외 거주 사용자가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에 올려져 있던 원본 사진을 조작해 영부인을 모욕하는 사진을 올린 것이다. 캄보디아 경찰은 페이스북 사용자를 체포하기 위해 인터폴(국제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이에 대해 훈센 총리는 건설적 비판은 뭐든 수용하지만, 자신을 모독하는 페이스북 사용자는 곧바로 붙잡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총리의 페이스북에 살해하겠다는 협박글을 써놓은 청년도 체포됐다.

캄보디아에서 어떤 스타도 당분간 총리의 '좋아요' 숫자를 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대중의 인기와 직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과 부정·부패에 대한 염증 탓에 훈센 총리와 집권·여당에 대한 반응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는 총선 전후 선거부정 논란과 함께 재벌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땅을 빼앗긴 농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총선 공약이었던 토지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총리의 말 한마디에 구속수감되기 일쑤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부정부패지수에서 조사국 168개국중 캄보디아는 150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1951년생으로 올해 65세인 훈센 총리는 30년 넘게 캄보디아를 통치해왔다. 그는 수년 전 한 연설에서 만 74세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태그:#캄보디아, #총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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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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