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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로 향하는 탈 것들
 타지마할로 향하는 탈 것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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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테푸르 시크리에서 아그라까지는 또 다시 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11번 고속도로의 문제라기보다는, 아그라 인근의 도로 사정과 아그라 시내의 교통 혼잡 때문이다. 우리가 먹고 잠을 잘 호텔이 구시가 동남쪽 토라(Tora) 지역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 버스는 시내를 관통해야 했다. 우리는 오후 2시가 넘어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3시나 되어서야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호텔을 나올 수 있었다.

호텔에서 타지마할까지는 차로 10분도 안 걸린다. 푸라니 만디 로터리에서 버스를 내린 우리는 전동차를 타고 타지마할 남문으로 향한다. 주변에는 릭샤, 마차, 낙타차 등이 줄을 서 있다. 길 주변은 공사를 하기 때문인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남문 매표소 앞에 도착한 우리는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잠시 대기한다. 그러자 현지인이 신발을 감쌀 덧신을 하나씩 준다. 표와 덧신을 든 우리는 이제 줄을 선다.

타지마할 정문
 타지마할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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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따로 줄을 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검문과 검색 때문으로 보인다. 검색을 마친 우리는 진정한 타지마할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곳은 과거 타지 간지(Taj Ganji)라 불리던 바자르와 카라반 사라이 지역이다.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찾은 장사꾼과 참배객이 거래도 하고 잠도 자고 구경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관광객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그 옛날 시장과 다르지 않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타지마할 남쪽의 정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간다. 정문은 붉은 사암 벽돌 바탕에 흰 대리석을 붙인 건물로, 문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다. 아치형의 문을 세 개 만들고, 가운데 문에 또 다시 세 개의 아치를 만든 다음, 가운데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또 문을 2층으로 만들고, 그 위 사방에 정자 형태의 차트리(Chattri)를 설치했다.

타지마할 반영 보지 않고는 아름다움 말하지 마라

타지마할을 보는 사람들
 타지마할을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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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으로 들어선 다음 반대편 문으로 다가가자 저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그런데 안개 때문에 타지마할이 더 신비롭다. 나는 잠시 정문의 아치 실루엣 속에서 타지마할의 모습을 살펴본다. 검은색 실루엣 속에 드러나는 회백색 타지마할의 모습이 정말 근사하다. 정문을 나온 우리는 왼쪽 공간으로 가 잠시 타지마할을 살펴본다. 많은 사람들이 타지마할의 돔 꼭지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타지마할의 돔은 높이가 44m로, 양파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초승달을 상징하는 황동장식이 있다. 그리고 건물의 사방으로 네 개의 첨탑(Minaret)이 타지마할을 호위하고 있다. 첨탑은 높이가 40m에 이르며, 꼭대기에 왕관 형태의 차트리가 설치되어 있다. 타지마할은 건물 자체 뿐 아니라 정원과 분수 등에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자연과 건축이 이루어내는 대칭과 조화, 이것이 무굴 양식 건축 더 나가 페르시아 양식 이슬람 건축의 특징이다.

타지마할 반영
 타지마할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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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이제 수로 양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간다. 수로 한 가운데는 분수가 솟아오르고, 수로 양쪽으로는 향나무가 줄을 지어 심어져 있다. 정원의 정 중앙, 수로의 한 가운데 네모난 연못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곳에 멈춰 서서 타지마할의 반영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대리석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타지마할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반영은 더 아름답다. 그 반영이 아름다운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유백색의 순수함이 물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둘째 반영을 통해 보여지는 타지마할의 상하 대칭이 좌우 대칭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셋째 그 대칭 속에서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에서도 나오지만, 그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에게서도 나온다. 사람이 찾지 않는 문화유산, 그것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타지마할의 해오라기
 타지마할의 해오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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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문화유산을 새도 즐기고 있다. 타지마할 돔 상공에는 까마귀가 날고 있고, 수로 주변에는 해오라기가 놀고 있다. 이들은 야무나강을 따라 가다, 차르박(Charbagh)의 물줄기를 찾아와, 물과 자연 그리고 문화유산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해오라기가 방해받지 않도록, 물가를 그들에게 양보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향나무 바깥 길을 따라 타지마할을 향해 간다. 가까이 갈수록 벽을 화려하게 수놓은 대리석 조각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묘당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타지마할 주변 지도
 타지마할 주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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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두라
 피에트라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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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두라는 유백색 대리석 판에 화려한 색의 대리석 문양을 박아 넣은 일종의 상감기법이다. 이들 상감은 식물의 줄기, 잎, 꽃이어서 그 색이 푸른색과 붉은색 계열이다. 그런데 이들 색의 채도가 높아 멀리서 보아도 선명하고 두드러진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대리석에 양각으로 표현한 꽃과 식물이다. 이들은 벽에 상당히 크게 양각되어 있고, 그것이 벽을 따라 나란히 서 있기 때문에, 건물의 아랫부분이 마치 꽃밭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 벽의 한 가운데 피쉬타크(Pishtaq)라 불리는 아치형의 커다란 문이 있다. 아치형 문은 나무로 격자창을 만들어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 위쪽으로 ㄷ자형의 틀을 만들어 아랍어로 된 캘리그라피를 새겨 넣었다. 이들 글은 쿠란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치 형태로 된 이들 문은 사방에 4개 있지만, 관광객은 남문 가운데 격자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다음,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북문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뭄타즈와 샤자한의 대리석관
 뭄타즈와 샤자한의 대리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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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당 안으로 들어가니 상당히 어두운 편이다. 묘당 안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격자 스크린이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 관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그 스크린이 아주 높지는 않아 나란히 놓여 있는 대리석 관을 볼 수가 있다. 묘당의 한 가운데 피에트라 두라로 장식한 정사각형 기단이 있고, 그 위에 직사각형 관을 얹은 형태다. 그런데 이 관도 역시 피에트라 두라로 3단을 장식하고, 그 위에 시신을 넣을 수 있는 관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다.

가운데 뭄타즈 마할(Mumtaz Mahal, 1593~1631)의 관이 있고, 그 서쪽에 샤자한의 관이 놓여 있다. 그것은 뭄타즈가 먼저 죽고 샤자한이 나중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관은 허당(虛堂)이라고 한다. 진짜 관은 이곳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두 관을 바라보면서 두 사람의 사랑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실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이 이렇게 화려한 무덤에 묻혀 있지만, 그들의 사랑과 죽음이 상당히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뭄타즈 마할의 관
 뭄타즈 마할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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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타즈 마할은 '왕궁에서 선택된 자'라는 뜻으로, 결혼 1년 후인 1613년 당시 황태자이자 배우자였던 쿠람(Khurram: 1628년 샤자한 황제가 됨)으로부터 받은 칭호다. 그녀는 1613년부터 거의 매년 자식을 하나씩 낳았고, 1615년에는 큰 아들 다라 쉬코를 낳았다. 그리고 1618년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를 낳았다. 뭄타즈가 낳은 자식은 1631년까지 14명에 달했고, 그 자식을 낳다가 죽고 말았다. 그녀의 시신은 마디아 프라데시주 부란푸르(Burhanpur)에 묻혔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샤자한(1628년 황제가 됨)은 그해 12월 그녀의 시신을 아그라 야무나 강변으로 옮기고, 그녀를 위한 영원한 안식처를 지을 것을 명령했다. 이것이 이슬람식 천국의 이미지를 가진 타지마할이다. 타지마할은 약 2만 명의 장인들이 22년간 작업을 해 1653년 완성할 수 있었다. 타지마할은 정원과 강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형태의 무덤 건축으로, 예술과 기술을 훌륭하게 결합시킨 무슬림 건축의 백미로 여겨진다. 

동쪽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동쪽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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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사랑과 비극적인 죽음을 동정하고 안타까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흔적을 찾아서 이곳 타지마할로 몰려든다. 또한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순례객도 많다. 더욱이 1983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2007년 세계의 경이적인 문화유산 7개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더욱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현재 1년 동안 타지마할을 찾는 관광객은 8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타지마할은 정원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했다.

남서쪽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남서쪽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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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당을 보고 북쪽 피쉬타크를 통해 밖으로 나가면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다. 이곳은 타지마할의 기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그 앞에 난간이 처져 있다. 난간 너머로는 야무나강이 동서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실 타지마할은 현재처럼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정원을 지나 들어갈 수도 있지만, 북쪽 야무나강을 건너 바로 들어올 수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왕족들은 강 건너 메탑 박(Mehtab Bagh: 달빛 정원)에서 놀면서 타지마할의 야경을 즐기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내와 나는 기단부를 따라 타지마할을 한 바퀴 돌면서 북쪽과 동서 양쪽 면을 자세히 살펴본다. 이곳에도 역시 부조와 피에트라 두라, 피쉬타크, 캘리그라피 등이 예술성을 더해준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이다. 그리고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남 방향에서 보니 아치형 문이 12개가 보인다. 문의 양쪽 기둥 위로는 첨탑을 하나씩 올려 우아함을 더했다.

차르박 동쪽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차르박 동쪽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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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은 동쪽에 왕족들을 위한 행궁이 있고, 서쪽에 이슬람 사원이 있다. 나는 이제 동쪽 행궁으로 향한다. 이곳은 타지마할을 방문한 왕족들이 머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전형적인 무굴양식 건축이다. 이곳에도 역시 피에트라 두라, 양각의 조각 등이 눈에 띈다. 그리고 기둥과 피쉬타크에도 장식이 있다. 타지마할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만, 행궁 역시 대단한 건물이다.

이제 나는 타지마할을 돌아보면서 차르박 동쪽 길을 따라 간다. 이번에는 차르박에 심어진 나무에 주목한다. 차르박은 현재 잔디와 분수 정원 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처음에는 과수나무가 무성한 낙원 형태의 정원이었다고 한다. 관리인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과실을 바자르에 팔았고, 카라반 사라이에서 묵는 여행객들은 이곳 차르박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타지마할은 죽은 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태그:#타지마할, #뭄타즈 마할, #차르박, #피에트라 두라, #무굴양식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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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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