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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 보트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 보트
ⓒ 레인보우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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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이 다가왔다. 희망이라고는 도통 찾아보기 힘든 정치이지만 희망을 일구려는 고군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성소수자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성소수자들에게 20대 총선은 유독 절실하게 다가온다. 평등과 존엄을 바라는 성소수자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19대 국회는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서 한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끄러운 전력을 쌓아올렸다.

차별 선동 세력의 억지 주장에 김한길, 최원식 의원은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철회했다. 반성소수자 단체들이 국가인권위 성소수자 차별조항 삭제를 주장하는 토론회가 국회의원들의 후원을 받아 열리고, 성소수자 인권 의제는 국회 논의에서 배제됐다. 거리와 공론장에서 거세진 혐오와 폭력이 국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현 정권의 법무부, 교육부, 여성가족부가 차별 선동 세력을 대변하며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정책을 취할 때도 이를 견제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웠다. 성소수자 인권에 우호적이고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한 의원들은 반성소수자 운동에게 낙선 대상으로 공격받고 있다. 국회와 기성 정치가 혐오에 포위 당한 꼴이다. 더디게나마 가능하다고 믿었던 변화들이 큰 벽 앞에 가로막힌 느낌마저 든다.

혐오에 포위당한 정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교실과 일터에, 가족과 이웃에, 군대나 감옥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나 성소수자도 있다. 문제는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가 자연히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한국에 성소수자가 몇 명 정도 있나요?"다. 난감한 질문일 때가 많다.

이런 저런 책들에서는 어느 나라에나 인구의 1~5퍼센트는 성소수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몇몇 국가, 지역에서는 성소수자 인구에 대한 조사나 통계가 있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연구가 보여주는 사실 중 하나는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성소수자들의 삶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는 성소수자로 보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백 명 중 한 명인지, 오십 명 중 한 명인지, 열 명 중 한 명인지에 따라 누려야 할 권리가 달라지는 것도, 차별과 혐오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성소수자들도 학교를 다니고, 직장에 다니고, 연애를 하고, 가족을 꾸리기도 하며 저마다의 역사를 쓰며 희노애락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거나, 차별을 경험하고, 이웃과 가족에게 거부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성소수자로서 당당하게 사는 이들이 늘어갔고,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차별과 혐오의 현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변화가 시작됐다. 성소수자를 부정하는 사회의 법과 제도, 통념에 대한 도전도 늘어갔다. 성소수자도 마땅히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인 삶과 차별의 경험을 통해 알리는 일들이 벌어졌다. 차별적인 현실이 개인의 숙명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로서 인식되고 드러났다. 이렇게 집단으로서 성소수자가 중요해지고 사회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성소수자로서 살고 말하는 이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소수자 운동에서는 '커밍아웃', 드러내기가 중요하다. 사람의 얼굴로, 다채로운 삶의 모습으로서 드러내기부터 차별받는 집단, 저항하는 집단으로서 드러내기가 얽혀 편견 어린 생각과 차별적 제도를 변화 시켜야 하는 계기이자 힘이 된다. 그러나 이런 드러내기와 말하기는 이름도 얼굴도 가질 수 없었던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삶에서 비롯한 보이지 않음에 대한 말하기인 것이다.

드러내기, 모이고 말하기

오늘날 정치를 짓누르고 있는 '혐오'의 힘 앞에서 성소수자들은 다시 한 번 드러내고 말하려고 한다.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의 반복이다. 성소수자도 인간이다. 성소수자도 시민이다. 성소수자도 먹고 마시고, 잠자고, 일하고, 공부하고, 놀고, 아프고, 세금도 내고, '투표도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함께 산다. 눈을 감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라. 우리가 여기에 있다. "평등을 위한 한 표 Rainbow Vote(레인보우 보트)"는 유권자로서 성소수자/지지자들을 모아내고 20대 총선만이 아니라 대선과 지방선거 등 선거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더불어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인들을 가려내고 국회와 정치권에 드리운 혐오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힘쓸 것이다.

19대 국회가 보여준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무기력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절망의 한 단면이자 반민주적인 통치의 수단이다.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이주민, 장애인을 향한 혐오, 여성혐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혐오가 곳곳에서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부패와 부실에 거짓이 켜켜이 쌓여 수많은 생명들을 일순간에 수장 시킨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히는 사회, 거대한 불평등과 빈곤이 낳는 좌절과 비참함을 방치하는 사회에서 책임을 따져 묻고 잘못을 지적하면 '불온'하다고, '종북'이냐고 되레 비난받는다. 저들은 인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특권'을 바란다며 공격한다. 진정 우리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누구인가. 혐오의 정치는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를 차별받는 소수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성소수자 혐오에 맞선 드러내기는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만의 과제가 아니다.

성소수자들 고립 시키려는 혐오의 논리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대다. 그래서 성소수자의 커밍아웃만큼이나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커밍아웃이 중요하다.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드러내기의 시도가 성공하려면 성소수자들을 마주보고 손잡는 이들, 혐오에 침묵하지 않고 함께 외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프랑스어로 투표를 뜻하는 voix는 목소리를 말하기도 한다. "평등을 위한 한 표 Rainbow Vote"는 혐오가 아니라 평등에 투표하자는 목소리다. 인권, 존엄, 평등의 목소리가 더 커지도록, 성소수자가, 성소수자와 함께 살기 위해, 평등한 한 표, 평등을 위한 한 표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나라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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