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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이 지난 지 열흘이 됐다. 경칩은 24절기 농사력으로 볼 때 음력 2월이 시작되는 날이다. 머지않아 제비가 날아오고, 농촌에서는 곧 밭갈이와 파종을 해야 할 때다.

농부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음력 2월 상순에는 수수와 옥수수·조·기장 등등 곡식을 파종할 때다. 곡식의 파종을 마치면 근대 상추 시금치 배추 등등 채소 종류를 파종한다. 중순에는 봄보리·귀리·콩을 파종할 때고, 하순에는 가지·토란·수세미·근대·시금치·쪽파·부추 등등의 채소를 파종한다.

나무 옮겨심기는 춘분 10일 전후가 좋다. 우리 집에서는 포도나무와 후박나무를 일주일 전에 옮겨 심었다. 참고로, 배나무순의 꺾꽂이는 오직 춘분일에만 할 수 있단다.

10년 전 남편이 귀향할 마음을 먹고 지은 집, 집은 황토와 나무를 써서 잘 지었다. 기반까지 시멘트 한 톨 안 쓰고 지은 집은 한겨울만 제외하면 언제나 들판이나 산 속에 있는 것처럼 집안 공기가 신선하다. 하기야 겨울에도 조금만 난방을 덜하면 밖에 있는 것처럼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우니 사철 밖에 사는 것 같다.

터는 넓어서 휑한 곳에 집만 덩그러니 지어 놓으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온갖 길짐승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본채 바로 앞을 지나쳐 다녔다. 심지어 멧돼지도 내려와서 뒤텃밭을 마구 헤집어놓곤 했다. 말하자면 멧돼지가 뒷마당까지 온 셈이다.

이번엔 조바심내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려야지

집을 지을 당시에 담이랍시고 돌과 흙을 섞어서 높이 50cm, 폭 50cm로 쌓고 폭 사이에 담을 대신할 차나무를 심었었다. 첫해는 그럭저럭 차나무가 사는 것 같더니 해가 갈수록 다 죽어버렸다. 기후나 기온이 맞지 않아서 겨울을 못나고 얼어 죽은 것이다. 대문도 없고 담은 50cm밖에 안 되니 사람이든 짐승이든 담이랄 것도 없는 담을 넘나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속옷만 입고 거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담을 조금만 더 높이고 대문을 달자고 남편을 졸랐지만 '시골에 살면서 무슨 담을 쌓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궁리 끝에 죽은 차나무를 정리한 자리에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광나무를 심었다. 광나무는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사철나무여서 울타리로 손색이 없다. 3년이 지나자 광나무는 2m 가까이 훌쩍 자랐다. 물론 잎사귀도 무성했다.

헌데, 욕심이 부른 낭패가 따랐다. 얼른 키워서 울타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전정(가지치기)을 하지 않아 광나무가 볼품없이 자랐다. 나무의 아랫도리에 잎이 없어서 빼빼 마른 종아리에 풍성한 레이스 치마를 입힌 것처럼 자라고 말았다.

며칠 전에 혹시나 살아나기를 기원하면서 뽑지 않고 뒀던 차나무를 마저 뽑았다. 그 자리에 다시 광나무 1년생을 심었다. 이제는 때맞춰 전정을 하고 잘 보살펴서 튼실하게 키워 볼 요량이다. 조바심내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려 볼 참이다.

"거기엔 연산홍이 아니라 철쭉을 심어야 해요!"

천리향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꽃.
▲ 천리향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꽃.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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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도 어느덧 중순이 된 3월 14일, 앞마당에 꽃나무를 보충해 심고 싶어서 농원에 갔다. 매주 월·수요일마다 하던 일 한 가지를 잠시 쉬기로 했더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했지만 상현 전에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원에는 집이나 동네에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봄이 있었다. 농원 입구에 들어서자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살펴보니 천리향이 수줍게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향기보다 꽃모양은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사람으로 친다면, 외모보다는 내적인 멋을 품은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천리향 옆에는 노란 수선화를 비롯한 몇 종류의 꽃들이 있었다. 꽃들이 피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는지 꽃보다는 나무 종류가 훨씬 더 많았다. 눈이 모자랄 정도로 끝 간 데 없이 많은 종류의 나무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어린 나목이었다.

둘러 보기를 마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연산홍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나를 슥 한 번 살펴보더니 어디에 심을 거냐고 물었다. 주인 눈에는 아무래도 뭣도 모르는 아줌마로 보였나 보다.

광나무 울타리 저 나무가 언제 자라서 울타리가 될지. 에효!
▲ 광나무 울타리 저 나무가 언제 자라서 울타리가 될지. 에효!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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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목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 묘목들.
▲ 묘목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 묘목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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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뜰과 위뜰을 경계하는 돌 사이사이에 심을 거예요."

주인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한 미소를 짓더니.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무조건 연산홍을 달라면 어떻게 해요. 거기에는 연산홍을 심을 게 아니라 철쭉을 심어야 해요."
"아, 그래요? 제 눈에는 연산홍이 철쭉 같고, 철쭉이 진달래 같고, 진달래가 협죽도 같아요. 다 거기서 거기니까 정말 헷갈리더라고요."
"하하하! 그나마 꽃 이름은 다 꿰고 계시네."
"그냥 아는 이름 다 대 봤어요. 히히!"

그렇게 아는 척하며 주인을 졸졸 따라다녔더니 성가신지, 그만 따라다니고 한 곳에 가만히 있으면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철쭉 30그루와 사과대추나무 한 그루를 샀다. 사과대추는, 대추가 사과만큼 크다고 하여 사과대추라고 부른단다. 아무리 대추가 사과만이야 할까만은! 철쭉은 올해부터 꽃을 피울 거고, 사과대추는 3년 뒤에나 열릴 것이라고 했다.

가격은 철쭉이 한 그루에 1500원, 사과대추나무가 한 그루에 8000원이다. 이틀 전 모임에서 사과대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때 들어보니 한그루에 1만5000원씩 한다고 했다. 똑 같은 1년생인데 가격 차이가 거의 곱절이다. 엿장수 가위질하고 장사꾼의 물건값 받는 것은 마음인 듯하다.

도회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봄맛·봄향기

노루귀 연분홍 노루귀가 앙증스럽고 귀엽다.
▲ 노루귀 연분홍 노루귀가 앙증스럽고 귀엽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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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뒷동산 검불 속에서 찾은 봄.
▲ 복수초 뒷동산 검불 속에서 찾은 봄.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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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나무를 심기로 하고 뒤뜰로 갔다. 먼저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서 사과대추나무를 심었다. 뿌리를 절반쯤 묻고 물을 넉넉하게 주고 나머지를 흙으로 덮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손가락만한 것이 언제 자라서 열매를 맺나 싶어 마냥 바라보고 섰는데 밭과 이어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던 남편이 손 부름을 했다.

가서 보니 그곳에는 노란 복수초와 분홍의 노루귀가 지천이었다. 잡목과 소나무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봄이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그 어여쁨에 한참을 취해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밭은 어느새 잡초들 차지가 돼 있었다. 비닐을 씌우고 심은 마늘 밭에는 비닐 속에 풀들이 우거졌다. 풀이 못 자라도록 비닐을 씌운 것인데 비닐이 오히려 온실 역할을 한 것인지 풀이 노지보다 무성했다. 비닐을 벗겨내고 풀을 뽑았다. 풀 속에는 간혹 냉이가 섞여 있었다. 다행인 것은 마늘이 제법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아뿔싸! 풀을 뽑느라고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 철쭉은 나중에 심어야겠다. 하지만 해 넘어가기 전에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지난해 주문한 거름이 며칠 전에 왔다. 한 포대에 20kg짜리 50포대다. 이 거름은 1년 정도 묵혔다가 써야 고약한 냄새가 덜 난단다. 남은 거름이 없어서 곧 쓸 것 다섯 포대는 각자의 장소에 옮기고 나머지는 비닐로 꼭꼭 싸서 갈무리했다.

그것도 일이라고 꽤 피곤하다. 하지만 앉으면 저녁이 늦어질 것 같아 서둘러 저녁밥 준비를 했다. 이 시기의 시골 집 식탁 풍경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오늘 저녁 반찬은 봄으로 장식해야겠다.

텃밭에서 캔 봄동은 생으로 된장을 찍어서 먹기로 하고, 영하의 겨울을 거뜬하게 이겨낸 시금치를 무치고, 묻어뒀던 무는 꺼내서 들깻가루를 넣고 무나물을 만들었다. 풀 뽑으면서 캔 냉이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도회지에서는 웬만해서는 구할 수 없는 싱싱하고 향긋한 봄이 우리 집 식탁에 푸짐하다.

며칠만 더 지나면 광나무를 심은 울타리 주변에 쑥이 쑥쑥 올라올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고개를 쑥 내민 쑥도 있다. 쑥을 뜯으면 쑥국도 끓이고, 쑥전도 부치고, 쑥떡도 하고, 쑥버무리도 해야겠다.

귀촌하고 두 번째로 맞는 봄이다. 큰 수술을 하고 살아 보겠다고 내려온 시골! 처음에는 참 을씨년스럽고 외롭고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헐렁한 통 넓은 바지와 고무신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별이 쏟아지는 밤, 마당 맨바닥에 주저앉아 시원하고 상큼한 봄을 마시다가 뜬금없이 요즘 유행하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자연과 더불어 순응하면서 살면 100세 산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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