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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후쿠시마 핵사고 5주기와 체르노빌 핵사고 30주기를 맞는 해이다. 올해 초, 일본에서는 다카하마 핵발전소가 재가동되었고, 체르노빌의 가장 큰 피해 구역인 벨라루스에서는 신규 원전을 건설 중에 있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두 지역은 인류 최대의 참사인 핵발전소 사고를 겪으면서 유명해졌지만, 동시에 그런 이유로 완벽하게 잊혔다. 버려진 외짝의 신발처럼, 철저히 고립된 채 참사로 인한 희생을 견뎌내야 했다. 게다가 참사를 망각한 정부는 다시 핵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초록네트워크는 후쿠시마 5주기를 맞아 참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외치고, 아직 살아가고 있는 핵사고 피해자들을 조명하고자 했다. 3월 10일, 우리는 영화제 <후쿠시마의 미래>를 열었다.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를 상영하고, 일본 현지 활동가와의 간담회를 통해 후쿠시마 5주기를 돌아보는 자리였다.

<후쿠시마의 미래>는 2013년에 제작된 영화로, 후쿠시마의 미래를 체르노빌을 통해 알아보는 영화다. 일본 정부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후쿠시마의 미래를 은닉하고 있으며, 이에 일본의 시민 17인은 핵발전소 사고의 미래를 알기 위해 체르노빌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청년초록네트워크의 후쿠시마 5주기 포스터이다. 10일, 영화 상영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 후쿠시마 5주기 행사 포스터 청년초록네트워크의 후쿠시마 5주기 포스터이다. 10일, 영화 상영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 백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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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후쿠시마에서의 사고가 어떻게 삶을 파괴해왔는지, 또 지역이 어떻게 더 망가질 수 있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좌뇌의 발달에 영향을 줘서 이성적이고 수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고 감정적, 행동적 장애를 보인다는 이야기는 핵사고의 위협이 단순히 신체적인 장애를 안겨주거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주듯, 이는 삶과 공동체를 모든 면에서 완전히 파괴한다.

카메라는 폐허가 된 도시, 키예프를 찾은 주민들을 담는다. 방사능 측정기는 접근금지 경계를 넘자마자 비명을 지른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사고가 터졌을 때, 많은 주민들이 강제로 이송되었다. 그간 이루어왔던 세계가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수습을 위해 핵발전소로 들어간 소방관과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숨졌다. 핵발전소를 덮개로 밀봉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이 덮개의 수명은 100년이다.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천차만별이지만 어떤 것은 10만년 씩이나 된다. 너무 보잘것없다. 우리가 보기엔 이렇게나 거대한 덮개가 1000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핵 앞에선 인간의 생명은 약했고 능력은 우스웠다. 사고 일주일 후 개장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에 있던 더러운 신발 외짝이 자꾸 어른거렸다.

코바린에 강제 이전된 사람들 1000명 중 280명이 죽어갔다. 암이 대부분이었지만 백혈병 등등 여러 가지 병이었다. 이주민들만 고통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주식인 버섯은 방사능을 잘 흡수하기로 악명 높은 녀석이다. 이곳의 먹거리에서도 꽤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 측정되었다. 기준치 이하라고는 하지만 내부피폭은 단순노출보다 1만 배 정도 큰 에너지를 받는다. 기준을 1/1000로 낮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런 맥락이다.

줄초상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도 결코 '운 좋은 사람'은 아니다. 방사능에 피폭된 이들을 원래 살던 주민들이 반겨줄 리가 없었다. 텃세였다. 공동체가 순식간에 해체된 사람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꾸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싫어했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죽는다. 얼마나 끔찍한 고립감일까.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피난지역으로 설정되지 않은 '모자린마을'도 안전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건강을 걱정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건강이 나빠진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암이 아니어도 고통은 있는 것이다. 학생이 부르던 체르노빌 사고를 기념하는 노래는 처절했다. 어쩌면 한번도 볼 일이 없었던, 머나먼 땅의 말도 안 통하는 학생과 일본의 주민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노래로 공감하고 눈물을 나눴다.

한 참가자가 '핵발전소 폐기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청년초록네트워크는 이날 집회를 연 뒤, 을지로 한전지사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로 행진했다.
▲ 후쿠시마 5주기 도심행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한 참가자가 '핵발전소 폐기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청년초록네트워크는 이날 집회를 연 뒤, 을지로 한전지사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로 행진했다.
ⓒ 장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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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나미소마시는 기준보다 높은 방사선량이 검출되며 피난민들이 거의 귀향하지 않는 곳이다. 산림이 많은 시골 지역이라 도시보다 방사능을 흡수하는 식물 등이 더 많다. 제염이 어렵고 방사선수치가 높은 이유이다. 그래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있었다. 보육원의 정문에는 방사능검출기가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량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육원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자 방사능검출기는 비명을 질렀다. 측정을 하던 분은 걱정이 태산인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보육원생들의 환호성을 등지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어떤 임산부는 부모에게 이번 아기는 포기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본인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부모님은 응원이나 지지, 격려를 보낼 수 없었다. 임산부는 인터뷰 도중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다. 어느 누가 무서워하고 힘들어하는 딸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싶지 않을까. 어느 누가 딸에게 이번 아기는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을까. 어느 누가 삶을 유린당한 이웃들을 의심하고 미워하고 싶었을까. 핵사고가 빼앗아간 것은 인간다움, 그 자체였다.

체르노빌에 갔다 온 주민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시청에서 기준을 조정하고 피난지역을 재설정해달라는 민원을 하러 가기도 하고 보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가즈미가세미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를 '체르노빌 동지'라고 불렀다. 그들을 동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머나먼 객지의 노랫말도 모를 노래가 가슴을 적시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핵에 반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있음'일 것이다.

키예프 놀이동산의 주인 없는 신발 외짝과 고리야마 보고회에서 보이던 수많은 신발의 명징한 대비는 우리가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준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리가 동지임을 알아야 한다. 한 개인은 국가의 권력 앞에선, 핵 앞에선 힘없는 신발 외짝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단계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일 것이다.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어떤 원인을 찾느냐가 달려있고 그에 따라 해결책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헬기 위에서 찍은 분할된 화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말미에 아래에서 헬기를 클로즈업하며 시점을 전복시킨다. 이는 제안이다. 우리 시점에서 참사를 보자는. 우리의 목소리로 참사를 이야기하자는. 외짝의 신발로 남아있지 말고 거리에서 외치고 대들며 우리를 위한 해결책을 찾자는.

일본 정부는 2017년까지 후쿠시마 대부분의 지역에 강제 피난을 해제할 예정이다. 방사능 오염이 줄어들었다며, 피난민에게 사고지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후쿠시마와 그 주민들을 참사의 쓰레기장으로 내몰고, 핵발전을 지속하려고 한다. 우리 시점에서 참사를 보고, 이윤이 아닌 인간을 위한 해결책을 찾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년초록네트워크는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 상영 이후, 일본 현지 활동가와의 간담회를 가져 우리의 목소리로 참사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청년초록네트워크에서는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를 상영한 이후, 후쿠시마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일본 현지 활동가와의 간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통역사 김복녀, 일본 AWC 활동가 오타니 료타, 니이가타현 거주 유학생 하재원이다.
▲ 간담회 <후쿠시마, 그리고 5년> 청년초록네트워크에서는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를 상영한 이후, 후쿠시마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일본 현지 활동가와의 간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통역사 김복녀, 일본 AWC 활동가 오타니 료타, 니이가타현 거주 유학생 하재원이다.
ⓒ 양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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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로는 오타니 료타(Otani Ryota)씨와 하재원씨가 함께했다. 오타니 료타씨는 일본 AWC 간사이 youth의 활동가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부터 반핵 운동을 해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졌을 때, 그는 아이와 함께 있었다. 육아 휴직으로 활동을 잠시 쉬고 있던 때였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활동에 복귀했던 작년, 그는 센다이 핵발전소가 재가동되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후쿠시마 참사로 정부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

하재원씨는 니이가타 현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평범한 유학생이다. 재원씨가 거주하고 있는 니이가타 현은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인 카시와자키 핵발전소가 위치한 곳이다. 일본 내에서 원전 재가동 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니이가타 현 주민들도 불안감에 떨고 있다. 특히 니이가타 현은 후쿠시마 피난민들이 많이 이주해온 곳이라서, 불안은 더하다. 재원씨는 이 곳에서 니이가타 현의 주민들을 만나고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인터뷰했다.

후쿠시마의 현재는 어떠할까. 우리는 패널에게 후쿠시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책과 시민사회의 인식에 대해 물어봤다. 오타니씨는 일본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재가동 정책과 강제 귀환 정책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2020년 일본에서 치러질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참사를 망각하라고 요구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막을 만한 강한 여론이 형성되지 못했다. 재원씨가 사는 니이가타 현에서는 핵 발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핵발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핵발전소 인근에서 요식업이나 숙박업을 하던 주민들이 그랬다. 그들에게 핵발전소는 생계의 문제였다. 문득 기사로 보았던 후쿠시마 주민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원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모두 짓밟혔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또다시 원전과 관련한 일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들은 핵의 공모자가 아니라, 핵에 의한 희생자였다.

핵발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들어봤다. 재원씨는 핵 전은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정의내렸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피해를 입고 고통 받을 것은 우리들임에도, 우리는 핵 발전에 대한 정책 결정권을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친구가 죽고, 아는 사람이 죽는 일상. 우리가 이런 일상을 선택하지 않았다. 매일 코피가 나고 아이를 놀러 나가게 하지 못하는 세상, 이불을 밖에다 널지 못하는 세상. 우리가 그런 세상을 선택하지 않았다. 재원씨는 핵 발전은 결국 희생의 시스템이라며, 누구도 희생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행진의 슬로건인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는 핵 발전으로 인해 삶의 주권을 빼앗긴 사람들을 대변한다.
▲ 후쿠시마 핵사고 5주기 도심행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도심행진의 슬로건인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는 핵 발전으로 인해 삶의 주권을 빼앗긴 사람들을 대변한다.
ⓒ 장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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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씨는 본인의 거주 지역인 간사이 인근의 후쿠이현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후쿠이 현에는 17개의 핵발전소가 있지만, 후쿠이 현의 주민들은 그곳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쓰지 않는 전기를 생산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나 송전탑 역시 이렇듯 일방적인 지역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타니씨는 다카하마 핵발전소에 관한 기쁜 소식도 전해주었다. 작년 8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의해 올해 초, 다카하마 핵발전소가 재가동됐다. 다카하마 핵발전소는 40년이 넘은 노후 핵발전소로, 재가동한지 사흘 만에 고장이 있기도 했다. 오타니씨는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 굉장한 소식을 들고 왔다. 다카하마 핵발전소 재가동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간담회(10일) 하루 전에 발표된 놀라운 소식이었다. 다카하마 핵발전소 인근의 주민들이 가처분 신청을 걸었으며, 법원이 다카하마 핵발전소 재가동을 즉시 중단시킬 것을 결정했다. 일본의 민간변호사단에 의하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미하다고 한다. 다카하마 핵발전소의 재가동 중단 소식은 우리에게 큰 의미와 감동이었다.

영화에서 일본의 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절망한다. 핵발전의 미래는 너무도 참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들은 다시 일어선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해 각자의 공간에서 싸우고 서로의 '동지'가 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5주기, 여전히 핵 발전의 재앙은 멈추지 않았다. 핵발전소를 계속 짓는 한, 재앙의 씨앗은 끊임없이 불어날 것이다. 사고 5주기를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재앙의 씨앗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만나는 일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핵이 거둬갈 수 없는 우리의 인간다움으로 탈핵을 위해 연대하자.


태그:#후쿠시마, #청년초록네트워크, #후쿠시마 5주기, #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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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운영위원,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대표 입시경쟁을 거부하며,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으로 살아갑니다. 여자 되기를 거부하며 페미니스트로 살아갑니다. 정상성 너머의 청년정치공동체를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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