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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를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줄어들게 쌓으면서 성벽은 견고하고 높아졌다.
▲ 성벽. 모서리를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줄어들게 쌓으면서 성벽은 견고하고 높아졌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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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오사카성 앞에는 이미 성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몇 번 와 본 오사카성이지만 오랜만에 나온 여행은 다시 기분을 들뜨게 한다.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여행하기에는 적당한 온도의 날씨이다.

탄탄하게 쌓인 성벽을 보며 오사카성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놀라움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압도적으로 크고 높은 오사카성의 성벽을 보고 있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서리를 직각으로 쌓지 않고 올라갈수록 줄어들게 성벽을 쌓음으로써 성벽은 견고해졌고, 그래서 어느 나라의 성벽보다도 높게 지어졌다.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 무수한 전투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진 이 성벽은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다.

강과 같은 해자는 오사카성을 요새 중의 요새로 만들어주었다.
▲ 해자. 강과 같은 해자는 오사카성을 요새 중의 요새로 만들어주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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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지키기 위해 성 외곽으로 둘러 판 인공호(人工壕), 해자(垓子)는 당시 성을 쌓았던 사람들이 적에게서 느꼈던 공포의 크기만큼이나 깊고 넓게 파였다. 그 안에 담긴 수량만 해도 엄청나게 많아서 마치 거대한 강줄기를 보는 것만 같다. 현대 무기가 발명되기 전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이 오사카성은 함락하기 어려운 요새 중의 요새였다. 높고 견고한 오사카성을 보고 있으면 이 성을 세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권력욕이 느껴진다.

오오테몬(大手門)을 통해 오사카성 안으로 들어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에 살 당시, 이 오오테몬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관광지가 되어버린 현대 오사카성의 철문은 활짝 열려 있다. 성문을 지나면서 머리를 들어 철문을 보니 철문의 두께가 엄청나게 두꺼워서 웬만한 대포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철문 위에는 수직으로 세워진 나무 창살 여러 개가 있는데 전쟁 당시 이 창살 틈으로 화살을 쏘며 적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오사카성의 중심 전각인 덴슈가쿠(天守閣)로 들어가기 위해 사쿠라몬(桜門)으로 갔다. 사쿠라몬은 1626년에 지어진 후 여러 번의 재건을 거치면서 말쑥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근처에 벚꽃이 많이 피어 사쿠라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굳이 우리말로 바꾸면 '벚꽃문'이다. 사쿠라와 벚꽃은 어감이 너무나 다른데 벚꽃문이라 부르니 이름이 훨씬 예뻐 보인다. 

도쿠가와 막부에 바친 다이묘들의 바위 크기로 충성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 소석. 도쿠가와 막부에 바친 다이묘들의 바위 크기로 충성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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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몬에 들어서자 눈앞을 떠억 가로막는 거대한 바윗돌이 있다. 소석(蛸石)이라고 부르는 이 바윗돌은 성문을 통과한 적을 막기 위한 내부 성벽의 일부분이다. 이 바위는 130톤이나 되는 거석으로 오사카성 안에서 가장 큰 돌이다. 엄청나게 거대한 이 바윗돌은 오사카성을 재건할 때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名)가 도쿠가와(德川) 막부에게 바친 돌이다. 당시에는 다이묘들이 가져다 바친 바위의 크기가 클수록 막부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바윗돌이 거대한 내력이 조금 어이없기는 하지만 바윗돌의 크기는 기가 막힐 정도로 크다. 17세기 당시에 이렇게 큰 거석을 어떻게 옮겨왔을까? 게다가 이 큰 바위를 일본 내해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이누시마(犬島)로부터 성 안까지 옮겼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이 거석을 오사카성 안까지 옮기는 것이 오사카성을 지을 당시 가장 난공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9년 전인 1583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대하고 호화롭게 쌓은 성이다. 일본 열도의 천하쟁탈전이 벌어졌던 현장, 웅장한 오사카 성의 덴슈가쿠를 향해 성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섰다. 일본에서 가장 큰 3대 성 중의 하나인 오사카성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여행지라기기보다는 거대한 옛 유적지 안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조금씩 걸어 나갈 때마다 덴슈가쿠가 점점 눈에 꽉 차게 다가왔다. 덴슈가쿠 내부는 8층으로 지어졌지만 밖에서 보니 마치 층고가 높은 5층 건축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와지붕과 용마루가 동서남북 4방향으로 모두 뻗어나가는 모습이 강렬하게 인상적이다.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일본 병사가 한가하게 쉬고 있다.
▲ 막부시대 일본 병사.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일본 병사가 한가하게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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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슈가쿠 아래에는 막부시대 일본 병사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웬일인지 근무지를 이탈하여 계단에 앉아 한가하게 쉬고 있다. 한국 여행자들도 많이 보이는데 이 일본병사를 사진 모델로 하여 사진을 찍자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기념사진 모델의 복장이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병사 복장과 같은 복장이어서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덴슈카쿠의 높은 층을 올라갈 때에는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는 없으니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오게 되어 있다. 현재의 오사카성을 2차 세계대전 후에 복원하면서 원래의 목조건물을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였다. 긴 시간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유적을 복원한다는 일본에서 왜 과거의 덴슈가쿠를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콘크리트를 사용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여행을 같이 간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래도 큰 문제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오사카성의 지배자가 살던 중심전각으로 현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 덴슈가쿠. 오사카성의 지배자가 살던 중심전각으로 현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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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가문이 몰락한 여름 전투가 미니어처로 재현되어 있다.
▲ 오사카성 여름 전투도. 도요토미 가문이 몰락한 여름 전투가 미니어처로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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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사카성을 콘크리트로 복원했을까? 처음 모습처럼 목재를 이용해 복원해야 더 아름답기도 하고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더 클 건데 말이야."
"그래도 이 오사카성은 일본에서 주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던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편하고 좋기만 하네."

나는 5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고 가장 높은 층인 8층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올라간 후, 내려올 때는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기로 했다. 오사카성 5층에는 1615년의 오사카 여름전투도가 미니어처로 재현되어 있다. 오사카 여름전투도 병풍에 그려져 있는 명장면을 미니어처로 사실감 있게 해석하였다. 병사들의 복장을 당시 그대로 재현하고 병사들의 동작이 모두 다를 정도로 힘을 쏟아 만든 명품 미니어처다.

이 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진영이 패하면서 실질적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는 막이 내렸다. 당시 전투에서 오사카성 덴슈가쿠는 불에 타서 무너지고 1626년, 1931년,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후에 다시 복원된다.

덴슈가쿠 8층 전망대에서는 오사카의 시원스런 전경이 펼쳐진다.
▲ 오사카 전경. 덴슈가쿠 8층 전망대에서는 오사카의 시원스런 전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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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50m 높이에 자리한 오사카성 전망대, 8층으로 올라섰다. 역시 높은 곳에 올라오니 전망이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 덴슈가쿠의 사방을 돌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파노라마 같은 오사카의 전경이 펼쳐진다. 매화나무가 가득한 니시노마루(西の丸, にしのまる) 정원이 바로 아래에 보이고, 오사카성을 둘러싼 해자 너머로 오사카 도심의 빌딩 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에 막히는 것이 없이 전망이 확 트여 있어서 하늘의 구름이 가까이 보이는 것 같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매일 덴슈가쿠의 가장 높은 층에서 일본의 천하 권력자로서의 권위를 마음껏 과시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자신만의 야망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 보았으니 세상이 다 자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땅위의 사람들 크기가 마치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렇게 작아 보이는 사람들을 매일 내려다보면서 사람 목숨을 하찮게 보았던 것일까?

덴슈가쿠 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지붕의 용마루 끝에 황금빛으로 만든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게 번쩍거린다. 용마루 위에 올려져 있는 이 장식물은 샤치가와라(鯱瓦, しゃちかわら)다. 샤치가와라는 목조건물의 화재예방을 위한 주술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샤치가와라의 현재 모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의 모습은 아니고 1931년에 당시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한 것이다. 황금빛으로 번쩍거리지만 모두 황금은 아니고 청동제 주물에 금박을 입힌 것이다.

화재예방을 위한 주술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상 속의 동물이다.
▲ 샤치가와라. 화재예방을 위한 주술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상 속의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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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호랑이이고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는 샤치가와라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각층의 모든 기와지붕의 용마루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샤치가와라가 장식되어 있다. 화재를 진압하는 물을 불러야 하기 때문에 층마다 샤치가와라를 설치한 것이다. 이 샤치가와라는 용마루마다 양 끝에 암수 1쌍씩 설치하는데 용마루 남쪽에 올려져 있는 것이 수컷이다. 

샤치가와라는 간결하고 정교하게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장식물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왜일까? 조선을 침략한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성의 장식물들이기 때문이리라. 화산과 울창한 삼림이 어우러진 일본의 자연을 보면 경탄하면서도 한반도 침략과 관련된 일본의 여러 유적지를 만나면 마음이 심란하다.

먹이를 노리는 자세의 호랑이의 모습을 복제해서 전시하였다.
▲ 후세토라. 먹이를 노리는 자세의 호랑이의 모습을 복제해서 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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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볼수록 오사카성 덴슈가쿠는 장식이 매우 화려한 건물이다. 2층 성곽정보 코너를 둘러보다가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화려한 장식물을 만났다. 거기에는 덴슈가쿠 외벽에 장식된 호랑이 조각장식이 실물크기로 복제되어 있었다. 1931년 덴슈가쿠 재건 당시 316년 만에 복원된 이 장식은 먹이를 노리는 자세의 호랑이, 후세토라(伏虎, ふせとら)이다. 후세토라는 외부의 액운으로부터 덴슈가쿠를 보호하기 위해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낸 모습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복제품이 아닌 실제의 후세토라 장식을 보기 위해 덴슈가쿠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 덴슈가쿠의 맨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덴슈가쿠 밖에서 봤을 때 최고층인 5층 외벽은 온통 진한 검은색으로 치장된 허리 높이의 목판재, 고시이타(腰板, こしいた)로 둘러싸여 있었고, 이 목판재 위에 호랑이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덴슈가쿠 최고층의 동서남북 사방 외벽마다 2마리씩 있으니 모두 8마리의 호랑이가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덴슈가쿠 성곽정보 코너의 설명문에는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호랑이는 먹이를 노릴 때 이렇게 몸통과 수직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먹이를 노리거나 앞다리를 벌리고 있지는 않는다. 호랑이들은 발을 머리 앞에 모으고 잔뜩 웅크린 채로 먹이를 노린다. 호랑이가 없는 일본에서 전해들은 이야기 속의 호랑이를 미숙하게 그렸던 것이다.

호랑이도 없는 나라에서 왜 호랑이를 흉내 내고 있을까? 오사카성 외벽에는 왜 호랑이가 장식되어 있을까? 이 후세토라가 오키나와성에 장식된 시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시대였으니, 임진왜란 당시 목격한 조선 호랑이의 위용을 보고 전쟁 후의 건축물에 이 호랑이를 장식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덴슈가쿠 외벽에 다양한 모습의 호랑이 8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 덴슈가쿠 외벽 호랑이. 덴슈가쿠 외벽에 다양한 모습의 호랑이 8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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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조선을 약탈하면서 조선의 대표적인 맹수인 호랑이도 사냥하였다.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騰淸正)는 함경도를 침략하면서 부하들과 함께 호랑이를 닥치는 대로 사냥하였고, 그중 수십 마리의 호랑이는 죽거나 생포된 채로 일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호랑이 사냥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졌다. 일본군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처음 접한 호랑이의 실물에 압도되었고 일본에 돌아와서 건축물 속에 호랑이를 미숙하게나마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오사카성 덴슈가쿠의 호랑이를 보고 있으니 마치 우리나라의 호랑이가 잡혀와 있는 것 같이만 보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해로운 맹수라는 이유로 한반도의 호랑이들을 멸절시켜버렸으니 더욱 이 호랑이를 보는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오사카 성위에 재현된 조선의 호랑이 8마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일본인들이 재현한 호랑이들이지만 이 호랑이는 조선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 호랑이들이 멸절되지 않고 한반도에 그대로 살아남은 우리의 호랑이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연히 만난 이 호랑이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50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 #일본여행, #오사카, #오사카성, #덴슈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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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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