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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 아나우 다운스의 풍경과 타고 갈 배
 테 아나우 다운스의 풍경과 타고 갈 배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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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년간 기다려왔던 오늘이다. 9시 45분 센터 앞에서 버스를 타고 테 아나우를 떠날 때는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30분도 채 안 걸려 25킬로미터 떨어진 선착장인 테 아나우 다운스에 도착했다. 배에 타고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10시 반에 떠난 배는 1시간 남짓 걸려 밀포드 트랙 입구에 도착했다.

오직 자연광과 태양전기 그리고 빗물

가는 도중 완벽한 색깔의 무지개가 우리를 반기듯 반짝 웃어주는 것 같았다. 전체 거리 53.5킬로미터의 밀포드 트랙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발걸음을 뗐다. 출발부터 비를 맞은 것이 끝날 때까지 비를 맞으며 끝냈다.

길은 잘 나 있고 이정표도 잘 되어있다. 1킬로미터쯤 가니 글레이드 하우스(Glade House)가 나온다. 퀸스타운에서 출발하는 관광상품으로 온 사람들은 여기서 첫 밤을 보낸다고 한다. 클린턴 강을 따라 원시림 속에 잘 나 있는 폭 1미터 정도의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내린 비로 물이 가운데 고여 있어 가장자리로 피해 다녔다. 1시간 반 정도 약 5킬로미터를 걸으니 클린턴 산장(Clinton Hut)이 나온다. 해발고도 250미터쯤 된다.

 이층침대가 각 방마다 10개씩 있다.
 이층침대가 각 방마다 10개씩 있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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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방에 각각 20개의 침대가 이층으로 놓여 있다. 신발은 벗어 문 밖에 놓아야 했다. 그래서 슬리퍼 같은 신발이 필요하다. 가운데 놓인 이층침대 아래위를 선점했다. 등은 없고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뿐이다. 내 위로 창이 나 있어 비가 와도 내부는 9시까지 환했다.

식당엔 가스레인지가 놓여있고 싱크대도 있다. 물은 그냥 마실 수도 있으나 끓여 먹어도 좋다고 쓰여 있다. 이곳의 모든 물은 빗물을 받아 정수해 사용한다. 라이터나 성냥은 없으니 각자 지참해야 한다. 햇빛 집열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기는 햇빛으로 생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식당에 전기등은 있으나 일정한 시간에 산장 관리인이 나와 켜 준다. 등은 에너지 효율이 좋은 LED이다. 관리인은 80이 넘어 보이는 키가 큰 할아버지다. 그 연세에 이런 힘든 일을 할 수 있다니 경이로웠다.

 식당에 등은 있으나 관리인이 일정 시간에 켜준다.
 식당에 등은 있으나 관리인이 일정 시간에 켜준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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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컵밥 두 개와 크로와상 빵 한 조각으로 가볍게 점심을 했다. 점심을 끝내고 나니 2시다. 밖은 비가 계속 오니 나가 다니기가 좀 그렇다. 방 안에서 듣는 비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정겹다. 왜? 난 비를 안 맞고 있으니까.

화장실은 10미터쯤 앞에 따로 있다. 물론 등은 없고 자연광뿐이며 수세식으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화장지도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서 세수나 양치를 할 순 있지만 절대 비누나 세제는 사용할 수 없다. 물을 깨끗이 보존하려는 그들의 정책이다. 3박 4일 내내 함께 지내면서 비누를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알뜰하게 여행 온 한국인 네 쌍을 만나다

3시 반쯤 되니 한 팀이 또 들어온다. 한 무리의 한국인들도 있다. 우리보단 좀 젊어 보이는 여덟 명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이 모두 10명으로 이번 밀포드 트랙 걷기에 참여한 인원의 1/4이 넘는다. 역시 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 사람을 만난다더니 실감한다.

그들은 부부로 오클랜드에서 10인승 차를 빌려 4주 예정으로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텐트에서 잠자고 직접 해먹으면서 일인당 500만 원 정도 쓰고 있다고 한다. 참 알뜰하게 여행한다. 이렇게 모임을 꾸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평소 함께 다니던 사이란다. 한 여자애는 대학 4학년인데 엄마 대신 왔다고 한다. 아무튼 부러운 사람들이다. 저 나이에 함께 다닐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클린턴 산장의 전경
 클린턴 산장의 전경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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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장에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다. 모두 39명이다. 비는 세기를 달리하며 계속 내린다. 오후 6시에 국밥 두 개와 빵으로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비는 그치고 맑아진다. 내일이 꼭 이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기상예보를 무시하기엔 너무 잘 맞추니 걱정이다.

산장 관리원이 8시 무렵 식당에 다들 모이게 하더니 상황 설명을 한다. 비는 오다 개다를 반복한다. 처음 듣는 다양한 새소리가 들린다. 한 마리가 방 주위를 돌며 꺼이꺼이 소리를 낸다. 이중엔 키위(Kiwi) 소리도 있단다. 키위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야행성 새이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 사람을 키위라고도 부른다. 이 새의 특징은 날개가 없다. 천적이 없어서인지 날개가 퇴화해 걷기만 한다. 그래서 거의 멸종하고 있어 지금은 보호하고 있다.

창문 하나가 열려있다. 찬바람이 들어온다. 누구도 닫지 않는다. 견딜만해서인가? 통풍이 필요해서인가? 잠시 후 누군가 창문을 닫았다. 그렇지. 추웠겠지.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나고 밖에선 새들이 울부짖는다. 10시가 되니 내 위에 있는 채광창이 어두워졌다. 한 마리가 방 밖을 돌며 계속 운다.

 키위같이 생긴 새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키위같이 생긴 새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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