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한 학원 원장에게 무려 6년간 학대당해온 한 남매의 이야기를 그렸다. '붉은 지붕 집의 비밀-뉴욕 한인 남매 노예 스캔들'이라고 이름지어진 이번 사건은 위험수준에 도달한 아동학대의 민낯을 스스럼없이 보여줬다. 어린 남매를 죽음으로 몰고갈 뻔했던 가정폭력, 그 적나라한 실체가 낱낱이 드러난 셈이다.

2016년 판 '헨젤과 그레텔'

 지난 12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붉은 지붕 집의 비밀' 편에서는 노예처럼 살아가는 한 남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지난 12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붉은 지붕 집의 비밀' 편에서는 노예처럼 살아가는 한 남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 SBS


"그 곳은 앞이 보이지 않는, 꽉 막힌 감옥 같았어요."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과 인터뷰를 시작하며 남매가 내뱉은 말이었다. 하늘이와 바다(가명)는 이어 끔찍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무엇이 '가정'이라는 공간을 감옥으로 느끼게 만들었을까.

하늘이와 바다가 머나먼 땅 뉴욕으로 가게된 건 6년 전이었다. 평소 하늘이와 바다의 부모와 알고 지내던 모 학원의 원장은 부모의 이혼 이후, 유학의 기회를 이유로 남매의 뉴욕행을 권유했다고 한다. 뉴욕으로 이민을 간 원장의 가족 집에 남매가 머무르게 되면서, 붉은 지붕 집의 '잔혹동화'는 시작되었다.

남매는 붉은 지붕 집에서 '24시간 노예'라고 해도 될 만큼 쉬지 않고 일했다. 원장은 쉴 새없이 걸레질을 시키고 창문의 유리를 닦게 했다. 일을 다 하기 전에는 밥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고 남매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반찬 하나 없이 돼지기름에 비벼 사료처럼 던져지는, 그런 밥이었다. 그나마도 앉아서 먹는 것조차 허용이 안 되어 그릇을 들고 서서 먹어야 했다.

남매를 '노예'라고 부를 수 있는 더 정확한 이유는, 한 집안 내에서의 명확한 서열화와 계급화였다. 남매와 같이 원장의 집에서 살았던 한 학원 친구는 "심하게 말해,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남매의 인터뷰에서도 이는 명확히 드러났다.

"우리를 더럽다는 듯이 취급했어요. 우리가 용변을 보고 나오면 변기통도 세 네번은 더 닦아야 하고, 변기통 옆 휴지도 우리는 따로 써야했고, 샤워할 때는 분무기(샤워기)도 못 쓰게 했어요."

남매는 집안 구성원들이 모두 가졌던 침대도 쓰지 못했다. 누울 자리가 없어서 옷장에 몸을 반 정도 구겨넣고, 다리만 겨우 내놓고 잠을 잤다. 거기다 매일 이어지는 원장의 폭행과 폭언을 견뎌야 했기에 남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다. (누나 하늘이는 원장에게 중요부위를 하도 많이 발길질을 당해서 요실금에 걸렸다고 말했다.)

마녀에 의해 철장에 갇혀 온갖 고된 시련과 고난을 겪는 남매의 모습과, 아이들에게 학대와 폭력이라는 사악한 마수를 뻗는 마녀와 같은 원장의 모습은 마치 동화 '헨젤과 그레텔' 같았다.

가정폭력, 탈출구 없는 감옥

 아동학대는 단순히 '가정폭력' 사건이 아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다룬 이야기는 이런 문제의식을 일깨워준다.

아동학대는 단순히 '가정폭력' 사건이 아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다룬 이야기는 이런 문제의식을 일깨워준다. ⓒ SBS


가정폭력과 학대에 노출되어 있는, 2016년 판 '헨젤과 그레텔'의 수많은 아이들은 하늘이와 바다의 말대로 어쩌면 집을 '감옥'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날 방송은 담담하지만 분노에 찬 어조로 이런 현실을 설명했다.

한번은 하늘이와 바다가 붉은 지붕 집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다의 얼굴에 난 찢어진 상처를 보고 학급 담임 선생님이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다가 바다가 학대 사실을 털어놓은 것. (담임 선생님은 바다의 상처를 보자마자 확실히 학대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다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원장이 결백을 주장하며 미국 한인 학부모회를 설득해 기자회견을 열고, 뒤로는 남매에게 협박을 했다. 협박 끝에 바다가 결국 상처에 대해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것"이라고 번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남매는 허무하게 다시 노예의 삶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정폭력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결국 돌아갈 곳은 가정 뿐이다'라는 씁쓸한 사실이다. 실제로 집안에서 학대를 심하게 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다시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악몽같은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울타리'가 되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정폭력을 겪는 아이들에게는 '쇠창살'이 되는 것. 이것이 가정폭력이 탈출구 없는 '감옥'이자, 오늘날까지도 '보호사각지대'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해답은 '관심'이다

 남매를 보호해줘야 할 주변 사람들은 아이들의 말보다는 가해자인 어른(원장)의 말을 믿었다.

남매를 보호해줘야 할 주변 사람들은 아이들의 말보다는 가해자인 어른(원장)의 말을 믿었다. ⓒ SBS


이날 방송에서 다룬 '뉴욕 한인 남매 노예 스캔들'은 미국 현지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될 정도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동학대에 중벌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에서 원장에게 내려진 형벌은 노동력 착취, 3급 폭행, 아동보호법 위반 등으로 인한 '징역 7년형'이다. 미국 법원은 이 중 '노동력 착취'가 가장 중죄라고 판결내렸다.

그러나 현재 원장은 감옥에 있지 않다. 보석금으로 풀려난 원장은 아직도 아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있는 중이다. 이 날 방송에서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원장이 하늘이와 바다의 부모에게 아이들 유학에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해달라고 속이고, 남매를 입양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원장은 법적으로 아이들의 입양모이기 때문에, 원장의 동의없이는 출국이 금지되어 남매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을 다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 언론과 인근 주민들은 무엇보다도 남매의 학대가 어떻게 6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놀라워했다. 6년간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어떻게 아무도 몰랐느냐(혹은 신고할 생각을 못했느냐)는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그 원인으로 '한국식 문화'가 한몫했다고 진단했다. 하늘이와 바다를 도와줄 만한 어른들, 한인 타운에서 만나는 교회 신자들과 목사, 그리고 한인 학부모회 사람들 모두는 정확한 증거도 없는 원장의 말을 믿고 있는 상황이다. '부모가 이혼해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둬들여 씻겨주고 먹여주고 정성들여 돌봐주는 천사'의 가면을 쓴 원장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 '항상 사고만 치고 돈을 훔치는 등 거짓말을 일삼는 남매'라는 거짓소문을 퍼뜨린 것도 다 주변 어른들이었다.

한국인들은 아이의 말보다는 어른 말을 잘 믿는 경향이 있다. 판단력이 부족하고, 생각이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어른의 말이 더 믿음직스럽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한국인의 '수용성'은 결국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책임의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단 한 명의 어른들만 생각을 바꾸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최근 들어서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아동학대의 해결책도 바로 이러한 연장선에서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당장 지난 주에도 평택 실종아동이 극심한 폭력과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이것으로 모자라 계모에 의해 야산에 암매장 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또 부천에서는 20대 어린 부부가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무차별적으로 학대해 아이는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되어 세상밖으로 사라졌다. '보호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구하려면 결국 해답은 사소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이다. 장기결석아동에 대한 신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아동보호시설을 늘리는 것도 모두 이러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보호사각지대'의 그물망을 좁혀나가는 것은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확대해서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눈'이 있어야 가능하단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이 만든 잔혹동화에 더 이상 희생되는 아이가 없기를.

그것이알고싶다 뉴욕남매학대 뉴욕남매학대스캔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