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무대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자라서 남자아이는 자신이 사진을 찍던 결혼식 부케를 낚아채서 여자아이에게 결혼 신청을 했다. 이에 여자아이는 자신이 먼저라며 반지를 주며 프로포즈를 한다. 초등학교 시절 생리적 현상으로 이루지 못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은 어른이 되어 비로소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그런데 나름 운명적인 이 러브 스토리의 결말은 '재혼'이었다. 결국, 하늘이 맺어준 진정한 짝을 만나기 위해, 두 남녀는 각자 한 번의 결혼이라는 장애물을 통과해 온 것이다. 지난 10일 종영한 MBC 수목 미니시리즈 <한번 더 해피엔딩>의 결말이다.

아침 드라마에서 주말 드라마까지, 재혼의 범람

 <한 번 더 해피엔딩>이 보여준 러브 스토리의 결말은 '재혼'이었다. 결국 하늘이 맺어준 진정한 짝을 만나기 위해 두 사람은 '한 번의 결혼' 이라는 절차를 거친 셈이다.

<한 번 더 해피엔딩>이 보여준 러브 스토리의 결말은 '재혼'이었다. 결국 하늘이 맺어준 진정한 짝을 만나기 위해 두 사람은 '한 번의 결혼' 이라는 절차를 거친 셈이다. ⓒ MBC


그리고 보면 아침 드라마는 드라마계의 트렌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숱한 아침 드라마들이 '이혼'과 '재혼'을 드라마의 주된 내용으로 삼아왔다. 멀쩡하게 잘 살아가던 주부가 남편의 불륜 등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지만, '똑순이'같은 그녀는 일은 물론 남편보다 훨씬 더 잘난 남자를 만나, '재혼'에도 성공을 거둔다는 스토리. 이런 이야기는 이제 아침 드라마에서는 '늘어난 테이프'가 될 정도로 매우 흔한 소재가 됐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가 선두 주자 격으로 우려먹던 그 소재가, 어느덧 주중 미니 시리즈, 주말 드라마에까지 영역을 넓히며 다종다양하게 변주되어 방영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재혼'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을 드러낸 <한번 더 해피엔딩>의 주인공 송수혁(정경호 분), 한미모(장나라 분)는 물론, 이들과 엮이게 된 구해준(권율 분)은 모두 사별이나 이혼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드라마는 다시 한 번 결혼에 애끓어 있는 한미모를 통해 재혼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해프닝을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한번 더 해피엔딩>만이 아니다. '재혼'을 다룬 드라마들이 즐비하다. 주말 드라마의 왕좌를 굳건하게 고수한 <내딸 금사월>의 후속작 <결혼 계약>의 여주인공 강혜수(유이 분)는 일곱 살짜리 딸과 사는 독신 엄마다. 그런 그녀가 비록 나이는 한참 차이가 나지만 미혼인 서른일곱 살의 한지훈(이서진 분)과 엮이며 벌이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MBC 드라마 <가화만사성>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MBC 드라마 <가화만사성>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 MBC


오후 10시 드라마만이 아니다. 8시 45분에 방영되는 <가화만사성>에는 '재혼' 예상 인물이 여러 명 등장한다. 무려 그들은 현재 다 이혼은커녕 결혼 상태이다. 하지만 벌써 남편의 외도가 들통난 한미순(김지호 분)에, 역시나 죽은 아이로 인한 채워질 수 없는 불화에 외도가 겹친 봉해령(김소연 분), 거기에 오랜 시간 가부장적인 남편에 시달려온 배숙녀(원미경 분)까지, 모두 잠재적 이혼 예상자들이자 재혼 대상자들이다. 드라마는 이들의 바람 잘 날 없는 이혼과 재혼 스토리를 다룰 예정이다. 심지어 아직 이혼도 하지 않은 봉해령에게는 상대남 서지건(이상우 분)이 등장했다.

MBC만이 아니다. KBS와 SBS도 뒤질세라 '재혼'을 화두로 삼는 드라마가 등장한다. KBS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은 아이가 둘 딸린 남자와 셋 딸린 여자의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는 재혼 스토리를 극의 골간으로 삼는다. 대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연을 다룬 <그래, 그런 거야> 역시 재혼을 빼놓을 수 없다. 몇 주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아내를 잃은, 그래서 한집에 살다 '불륜'으로 오해받기까지 한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이제 서로 먼저 재혼를 하라며 권하는 사이다. 결국,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시간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재혼'을 소재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디한 소재, 재혼

 우리나라 이혼율 추이를 살펴보면 드라마에 왜 '재혼' 소재가 많이 쓰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이혼율 추이를 살펴보면 드라마에 왜 '재혼' 소재가 많이 쓰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여성가족부


왜 재혼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늘어나는 이혼율 때문이다. 한때 세계 2위였던, 정확하게는 2015년 기준 OECD 9위, 아시아 1위의 현실이 바로 '재혼' 유발 드라마의 배경이 된다. 심지어 서울의 경우 황혼 이혼율이 신혼 이혼율을 앞지를 만큼, 다양한 연령층의 이혼이 일상화되어 가는 세태를 드라마는 반영한다.

하지만 그저 이혼율이 높은 것만으론 다 설명되지 않는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여주인공 한미모가 재혼 컨설팅업체 '용감한 웨딩'의 대표 이사로 등장하는 것처럼, '재혼'이라는 것이 전문 컨설팅 업체가 등장할 만큼 '예사'가 된 세태도 뒷받침한다. 즉 이혼하지만,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희망이 여전함을 드라마는 반영한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15%가 급증한다는 통계에서도 보이듯이 우리나라 이혼 이유의 상당수는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에 기인한다. 즉 노후한 가족 제도와 그 제도에 더는 적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높은 이혼율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이듯이 대부분 사람은 한 번의 결혼에서 얻은 경험을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그리 달라지지 않는 사회라면 '재혼'은 여전한 불씨를 안고 있다. 그런 한에서 드라마가 '권하는 재혼'이란, 마치 이전 드라마들이 백마 탄 왕자와의 행복한 결혼으로 해피엔딩을 꾸려온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해결 방식이다.

 드라마 <가화만사성> 역시 결혼과 이혼·재혼 등의 소재를 파고든다.

드라마 <가화만사성> 역시 결혼과 이혼·재혼 등의 소재를 파고든다. ⓒ MBC


그리고 이런 '재혼' 권장 캠페인과 같은 드라마의 범람 안에는 '불온하게도' 위기의 가족 제도를 '재혼'이라는 장치로 봉합하려는 '가족주의'의 음흉한 의도 또한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이혼'은 '가족 제도' 속에 꾸려져 있는 일원이 한 개인으로 방출돼 가는 과정이다. 그런 개인이 많아질수록, 즉 이혼율이 높아져 갈수록, 우리 사회가 지탱해 왔던 '가족'이라는 제도가 붕괴되어져 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는 이혼이 예사가 된 세상에서, 다시 한 번 결혼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가족' 제도를 꾸깃꾸깃 꿰어 매고자 한다.

하지만, 거기엔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겪었던 실패에 대한 반성은 그리 깊지 않다. 대부분 드라마가 '재혼'을 다루지만, 그 방식이 여전히 이전에 '결혼'을 다루던 드라마적 방식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던 데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래, 그런거야>에서 상처한 장남은 늙으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눈을 감지 못하실까 봐 못 이기는 척 재혼 맞선 자리에 나선다. 이는 마치 예전에 노총각을 둔 부모님들이 하던 걱정과 다르지 않다.

<한번 더 해피엔딩>이 어린 시절 첫사랑을 재혼의 과정에서 만난 것도 마찬가지다. <가화만사성>처럼 지금 남편보다 더 자상한 남자를 만나면 해결될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선택'은 쉽지 않다. 그저 트렌디한 요깃거리를 넘어, 이제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가 된 이혼과 재혼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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