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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향리들의 삶은 고달팠다. 고려 때와는 달리 국가에서 녹봉을 주지 않은 탓에, 알아서 백성들로부터 돈을 받아내어 삶을 꾸려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고을의 원님을 대신하여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민란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하곤 했다. 그들의 잘못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윗사람의 잘못까지 떠안은 것이다.

조선시대에 향리들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가맹점주가 있다. 아르바이트생들 입장에서는 그들은 착취자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쥐꼬리만한 급여로 부려먹고 그나마도 번번이 떼어먹으면서, '이런 시급~' 하는 광고 하나에 성내는. 열정페이에 당한 사람들의 증언이 넘쳐나는 지금, 일견 지당한 의견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가맹점주만 문제인 걸까? 그렇다고 넘어가기엔 과거 남양유업 사태의 경과가 마음에 걸린다. 그 사건 속의 점주는 갑이 아니었다. 나이가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손아랫사람에게 쌍욕을 듣는, 을 중의 을이었다. 열정페이를 주건 안 주건 상관없이, 그들 또한 윗선의 잘못까지 떠안은 이 시대의 약자가 아닌가 싶었다.

고등학교 때부터의 친구이자 GS 편의점 점주인 J와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이다.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막상 J의 편의점에 찾아갔을 때 난 '방해꾼'이었다. 한갓진 시간대인 오전 10시경이었음에도,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J는 계속 계산을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열정적으로 답해주었다. 일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인 친구라도, 일단은 친구라는 이유로 말이다.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점주도 사실상 월급쟁이... 하루 매출은 본사에 입금"

우리 시대 모두 누군가에게는 갑이고, 누군가에게는 을이다.
▲ 계층 우리 시대 모두 누군가에게는 갑이고, 누군가에게는 을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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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편의점 점주 일을 하게 되었는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군대 제대 후에 대학교 다니면서 편의점 알바를 했었다. 학업과 등록금 벌이를 동시에 하려 했다. 어차피 수업엔 흥미가 별로 없어서, 출석만 채우고 알바에 몰두했다. 적성에 맞기도 했고. 내가 할 일만 잘하면 되고, 상사 눈치 볼 필요가 없었으니. 거기다 휴식 시간도 충분한 편이었고, 장사 잘 될 때 빼면 말이다.

하면 할수록 익숙해져서, 스물여섯 살 때 즈음에 대학교 끝마치고 일에 몰두했다. 취업해야 할 때이기도 해서, 평일에 받는 알바비만으로는 부족했으니까. 근데 일주일 내내, 그것도 야간 시간에만 일했는데도 한 달에 180만 원밖에 못 벌었다. 난 더 돈 벌고 싶었다. 때마침 배송 오는 물류센터 기사 한 분하고 친해졌다. 그 형과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물류 센터 기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보다는 힘들겠지만,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중고차를 하나 산 후에 그 일을 시작했다."

- 왜 차를 샀나, 빌려서는 할 수 없었나.
"남의 차 빌려서 하는 것도 있긴 한데, 나한테 돌아오는 돈이 적다. 그렇게 일을 하게 되어서, 한 2년 반 정도 했다. 휴일은 1주일에 한 번, 분당에 여섯 곳, 성남에 여섯 곳 총 열두 곳을 담당했다. 원래 시간은 새벽 타임이었으나, 아침 타임도 여건만 되면 항상 했다. 이렇게 골병들지 싶었다."

- 근무시간 외에도 다른 어려움이 있었나.
"관리비도 많이 들고, 짐도 무겁고, 졸음운전 때문에 사고 위험도 컸으니까. 거기다가 사장 눈치도 많이 봐야 했다. 배송시간 배정에 사고라든가 하는 돌발 상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고, 물건이 덜 들어오면 무조건 내 책임이라고 돈을 물게 시켰으니. 그래서 결국 차를 팔았고, 그나마 내가 가장 많이 경험해 본 게 편의점이라 생각해서 점주를 하게 되었다. 점주를 하는 데 자격이 필요하거나 하진 않다. 그냥 돈만 내면, 본사에서 알아서 잘 가르쳐 준다."

- 현재 상황은 어떤가. 수익은 좋은 편인지?
"돈은 잘 버는 편이다. 모든 업종이 다 그렇듯이, 입지가 좋아야 하는데 여긴 괜찮은 편이다. 주변에 유흥가랑 주택가가 있으니까. 전반적으로 훌륭한 편이다. 다른 편의점과 비교하면, 한 중상 정도는 된다. 먹고 살긴 할 정도다."

- 업계 전체의 전망은?
"안 좋아질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처럼 핵가족화와 독신자가 늘어나는 추세라, 더 많은 사람이 편의점을 이용할 것이라 본다. 경제가 안 좋아지는 것도 오히려 플러스이다. GS가 다른 편의점보다 1+1행사를 많이 한다. 설령 가게가 망하더라도 보증금은 돌려준다는 점에서, 망하면 아무것도 없는 다른 자영업보다는 나은 편이다."

-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쉴 수가 없다. 내가 목표로 하는 금액이 있는데, 그 정도 못 벌면 화난다. 인건비가 높고, 특정 상권을 빼고 편의점은 항상 문을 열고 있어야 하니까 내가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 야간매출도 무시 못 한다. 여름에는 야밤에 맥주 사러 오는 손님들이 많고, 근처 피시방에서 오는 손님들도 많다. 피시방에서 파는 음식은 맛이 없으니까. 물론 내가 정한 목표니까 감내할 일이긴 하지만."

- 흔히 말하는 진상 손님 문제는 없는가?
"손님이 문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바로 앞에 경찰서가 있어서 진상이 거의 없다. 정말 경찰서에서도 행패 부릴 수준이 아닌 이상은. 모텔이나 술집 같은 곳은 진상들이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다."

- 작년 알바몬 사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광고에서 일방적으로 알바 입장만을 반영했다'며 자영업자들이 집단 반발한 사건 말이다.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해는 간다. 나도 알바를 해봤으니까. 알바의 처지에선 당연히 더 벌고 싶고, 사장으로선 조금 주고 더 이익이 나오는 게 좋으니까. 시급이 오르는 건 좋은데, 점주들한테 돌아오는 것도 나아져야 할 거 아닌가.

점주도 사실상 월급쟁이다. 하루 매출을 죄다 본사에 입금하면, 본사에서 그걸 다 처리한 다음에 다음 달에 급여를 준다. 결국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 점주가 몸으로 때워야 하게 된다. 정부가 시급이 오르는 만큼 프랜차이즈에도 요구해서, 점주에게 돌아오는 금액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점주 중엔 가족 딸린 사람도 많으니, 사실 알바보다 더 영향을 많이 받는데 말이다.

- 알바생 중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가?
"1:9, 2:8 비율 정도? 일을 잘하는 알바는 정말 드물다. 이 일이 겉으로 보기엔 쉬워 보이니까, 아무나 지원한다. 화난다고 막대할 수도 없으니 정말 스트레스다. 잘하는 알바는 친절하고 시키는 일 잘한다. 거기에 알아서 일 더 찾아서 하는 사람도 있고. 가게가 좁으니까, 일하는 상태가 한눈에 들어와서 파악하기 쉽다."

- 본사와의 관계는 어떤가? 남양유업 사태 같은 문제는 없나?
"괜찮은 편이다. 특별히 횡포를 부리진 않는다. 남양유업 사태 같은 일은 없다. 급여만 좀 더 줬으면 좋겠다. 다만 화이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때는 잘 안 팔리는 상품을 억지로 밀어 넣긴 한다. 그래도 본사 직원과 협의해서 처리할 수는 있다. 잘 안 팔리는 상품은 물류센터에 반품한다. 다만 반품금액은 매달 정해진 수치 내에서 준다. 거기에 맞춰서 반품하는 식으로 처리하려 한다. 안 팔리는 물건은 신상품으로 대체하기도."

내 생각이 맞았다. 점주들은 이 시대의 향리들이었다. 비록 남양유업 사건 수준의 피해는 자주 있지 않았더라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적은 돈이 그들을 가해자로 만들고 있었다. 열정페이의 문제는 최하층인 아르바이트생부터 중간자인 점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태그:#편의점, #갑을, #알바몬사태, #남양유업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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