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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룡이 나르샤>.
 <육룡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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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흠모한 이방원의 변심

정치가 발전하려면 정치인의 자질이 개선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이런 말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정치인의 자질이 낮은 게 오히려 정치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정치인의 자질이 높아지면 서민이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저변에 깔린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음미해보면, 이 점에 동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육룡이 나르샤>의 이전 방영분에서, 이방원은 정도전에게 꽤 협조적이었다. 이방원은 같은 남자인 정도전을 좋아하고 흠모했다. 아주 멋있는 사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도전의 역성혁명을 열심히 도왔다.

그랬던 이방원이 어느 순간 변했다. 정도전이 멋있는 사나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정도전과 함께하는 게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문제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손해라는 게 이방원의 결론이다. 그래서 이방원은 정도전의 적으로 돌변했다.

이방원의 변심은 정도전의 정치사상 때문이다. 정도전이 세우고자 하는 나라는 선비 출신 사대부들이 통치하는 나라였다. 이 시스템은 군주와 왕족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런 데서 왕족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게 이방원의 판단이다. 그래서 정도전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드라마 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실제의 이방원도 그런 점 때문에 정도전과 척을 지게 되었다. 

새로운 나라의 정치 시스템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도전의 신념은 대단했다. 군주는 독재를 해서도 안 되지만 정치에 지나치게 간여해서도 안 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정도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구도는, 유교 철학 즉 성리학을 배운 사대부 철학자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군주는 상징적 지위만 유지하는 것이었다. 사대부 전체가 똑같은 정치적 권한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대표자가 나서야 했다. 사대부들의 대표자인 재상이 그들의 뜻에 입각해서 나라를 이끌고 군주는 그런 재상을 임명하는 권한만 가지면 된다는 게 정도전의 발상이었다.

직접 편찬한 법전인 <조선경국전>의 치전(治典) 편에서 정도전은 "(재상이)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리는 것"을 새로운 나라의 정치 시스템으로 제시했다. 플라톤이 표방했던 철인 정치, 철학자 정치의 이상을 정도전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정도전이 철학자 정치를 꿈꾸게 된 것은 군주제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이었다. 그는 군주 지위가 세습되는 나라에 대해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위의 치전 편에서 그는, 혈통에 따라 왕위를 세습하는 나라에서는 어리석고 유약한 인물이 군주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왕조국가에서는 자격 미달의 군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성리학을 공부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대표자인 재상이 군주를 대신해서 정치를 운영해야 한다는 게 정도전의 판단이었다. 바로 이 점이 이방원한테는 불쾌했다. 사대부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의도라고 파악한 것이다.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정도전이 패배했다. 하지만, 정도전과 이방원이 모두 죽은 뒤에 조선 정치는 정도전의 뜻대로 흘러갔다. 조선시대의 대부분 기간 동안에 정치를 주도한 것은 군주가 아니라 사대부들이었다. 사대부 철학자들이 나라를 경영했던 것이다. 

조선, 정치인 자질이 뛰어난 나라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김명민 분).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김명민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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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배운 철학자들이 국정을 운영했으니, 조선시대에는 정치인의 자질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을 연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시로 표현하는 훈련을 받았다. 이런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국회 의석'을 가득 메웠으니, 정치인의 자질이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이 유명한 고전에 나오는 문구를 거침없이 인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즉흥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까지 한다면, 또 그가 예의바르고 겸손한 태도까지 보여준다면, 시청자들은 그가 자질이 높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이런 정치인이 흔치 않지만, 조선시대 정치인들의 상당수는 이런 사람들이었다. 이런 관료 혹은 정치인들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그들 대다수는 철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즉흥시도 잘 지었다. 또 예의도 바른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은 철인 정치의 나라, 철학자 정치의 나라였다. 조선왕조는 분명히 정치인들의 자질이 높은 나라였다. 

송강 정철은 율곡 이이와 친구 사이였다. 한번은 두 사람이 정치협상을 한 적이 있다. 정철의 과격성 때문에 이 회담은 결렬됐다. 회담 직후의 정철은 좀 흥분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결렬 직후에 즉흥시를 지었다. 친구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시였다. 

말하고 싶어서 말했으나 말은 티끌이 되고,
묵묵히 생각했으나 묵묵함은 먼지가 됐네.
말하는 것이나 침묵하는 것이나 다 티끌과 먼지라네.
시를 쓰려니 친구한테 부끄럽다.

정치인이 협상 결렬 직후의 흥분을 억누르고 시를 쓰는 것은 정철의 개인적 능력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예비 정치인들에게 어려서부터 철학과 시를 가르치는 정치 풍토에 기인한 측면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정철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도 삶의 순간순간에 위와 같은 즉흥시를 지었다. 이 정도였으니, 조선시대 정치인들은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우수한 사람들이었다. 

정치인의 자질이 특정 계급 이익에만 기여

 사대부 출신 신하들과 군주의 모습.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사대부 출신 신하들과 군주의 모습.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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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인의 높은 자질이 과연 조선의 정치발전에 도움이 됐을까? 물론 사대부들의 관점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고려시대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조선시대에도 서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민의 권익 보호라는 측면에서, 조선이나 고려나 별반 차이가 없다.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정치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는 노비와 토지를 많이 보유한 기득권층이었다. 사대부 정치가들의 높은 자질이 기득권층의 권익 향상에는 도움이 됐지만, 백성 전체를 위한 정치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치인들의 자질 향상이 정치발전으로 직결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높은 자질이 백성 전체를 위해서보다는 지주 계급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대부 정치인들도 본질적으로 지주계급이었기 때문이다. 사대부들은 노비와 토지에 대한 소유를 바탕으로 조선을 지배하는 지주계급의 구성원들이었다.

조선시대 관료나 정치인들은 주로 이들 지주계급에서 나왔다. 그래서 정치인의 자질 향상은 지주계급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백성 전체의 권익을 높이는 데는 그렇지 못했다. 정치인의 자질 향상은 지주계급이 좀더 많은 권익을 챙기는 데만 명백히 기여했을 뿐이다. 정도전이 만들어놓은 철인 정치, 철학자 정치의 구도가 일반 백성에게는 직접적 이익을 주지 못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자질이 특정 계급의 이익에만 기여하는 구도에서는, 그들의 자질이 낮아지는 게 오히려 전체 백성한테 유리할 수도 있었다. 정치인들의 자질이 낮아져야 이들에 대한 서민층의 대항이 쉬워지고 그래야만 지주 중심의 정치체제가 보다 빨리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주계급뿐만 아니라 백성 전체에서 정치인들이 골고루 배출됐다면, 사정은 당연히 달라진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세력이 조선왕조의 '여의도'에 골고루 진출했다면, 정치인의 자질 향상은 당연히 정치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에서는 지주 출신의 사대부들이 여의도를 독점하는 가운데서 이들의 자질 향상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정치인의 자질 향상이 일반 백성의 복지 증진에 별로 기여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의 자질이 낮아지는 게 조선 전체를 위해서는 나은 일이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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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