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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세계 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다. 그러나 어떤 저널리스트는 경제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보너스를 받는 동안에도 근로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책은 미국을 돌아다니며 저임금 노동을 직접 체험한 저널리스트의 이야기이다.

<노동의 배신> 겉표지
 <노동의 배신> 겉표지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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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무비판적으로 사회에 퍼져나가는 허황된 낙관주의를 비판한 <긍정의 배신>과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실업 문제를 다룬 <희망의 배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플로리다, 메인, 미네소타를 오가며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점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싸늘한 태도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임금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처음에 플로리다에서 500달러짜리 원룸을 구해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기 시작했다. 구직 과정에서 저자는 일자리 공고를 냈다고 하더라도 바로 사람을 뽑을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며 당장 뽑을 생각이 없는데도 공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지런히 웨이트리스로 일하지만 팁으로 받는 일부 금액이 온전히 독차지가 아닌 데다가 관광객이 주는 팁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시급이 5.15달러에 근접해진다.

주변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대부분 밴에서 살거나 먹고 사는 용도로 쓰이는 트레일러를 놓은 주차장에 산다. 결국 주거비 부담이 심해져서 호텔 청소부로도 투잡을 뛰게 된 저자는 같이 근무하는 사람의 치아 상태를 보고 당황한다. 앞니가 없었다. 대부분의 저임금 일자리는 건강보험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똥 묻는 변기를 닦아 줘도 집주인들은 고마워하지 않아. 오히려 우리가 뭘 훔쳐 가지 않을까 감시하지. 그 사람들 눈엔 우리가 보이지 않아.' - 본문에서

저자의 두 번째 거주지는 메인이었다. 비교적 노동력 공급 부족현상에 시달렸고 대부분 백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백인이 저임금 단순 일자리에 지원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 곳이었다. 저자는 매일 59달러를 모텔에 숙박료로 지불하다가 주당 120달러의 방을 구해 거주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시간당 7달러를 받고, 다른 날에는 청소부 일을 해서 생계를 꾸리게 된다.

청소 회사의 주된 일은 상류층의 집에 조를 이루어 파견되어 청소를 하는 것이다. 고객은 시간당 이용료로 25달러를 내고 청소부는 6.65달러를 받는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대부분 학력 수준이 낮았고 그중에는 이민자가 아닌데도 'carry' 같은 영어 단어를 알지 못하는 이도 있다. 청소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애큐트랙 테스트라는 테스트를 받는데, 이 테스트의 목적은 심리적으로 회사에 적합한 사람인지 검사하는 것이었다. 노동자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곳에서도 시급은 대부분 6-7달러였다.

저자의 세 번째 거주지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이다. 그나마 진보적인 주 중 하나로 사회복지에 있어서 다른 주보다 관대한 곳이었다. 여기서 월마트 점원으로 일하게 된 저자는 월마트의 이념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와 월마트는 커지고 있고 노조는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듣는다. 월마트의 옷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온종일 옷을 정리하면서 산다.

아무리 옷을 정리해도 또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탈의실에서 입어보고 걸어놓으면 카트 8개분량의 옷을 다시 제자리에 정리해야 한다. 휴식시간은 미리 체크한 뒤 쉬고 돌아와서 근무시간에 돌입해야 하며 시간절도(근무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행위)는 금지대상으로 혹독하게 감시받는다. 월마트 점원 시급은 7달러인데 모텔 숙박료가 주당 295달러였다.

'인성 검사에 약물 검사에 대단한 오리엔테이션까지 거쳤는데 하는 일이라곤 옷 개는 단순노동. 말로는 '동료'라는데 사실은 노예야.' - 본문에서

이 책에 따르면 저소득층으로 사는 가장 큰 어려움은 주거비 부담이다. 식비와 주거비 부담은 최저 한도 이하로 줄일 수가 없다. 주거비를 부담하는 그나마 나은 방법은 적절한 아파트에 보증금을 주고 세를 구하는 것인데 미국의 공공 임대 물량은 지극히 적다. 또한 보증금을 마련해서 구하는 것 자체가 돈을 요구한다. 그래서 대신 트레일러 파크의 트레일러나 모텔을 이용하게 되는데 모텔 비용이 주당 250달러, 1달 1000달러 이상인 곳이 많았다.

이외에 직장에 따라 제공되는 의료보험도 다친 노동자의 재기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저임금으로 간주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소득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주변의 임금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한다. 권위적 관리체제 역시 직원들의 사기를 깎는 데 공헌한다. 고용에 대한 사업주의 공헌을 과대평가하고 직원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서 임금협상의 유리한 토대를 마련한다.

저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식 복지제도 전반이다.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주는 것이 좋은 복지라고 전제되어 복지가 설계되어 있는데 일자리를 구해 소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다.

일자리가 있고 소득이 있음에도 복지서비스를 받아야 할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에 있는 이들이 있는 상황이 정말 복지의 최선인지가 의문시 된다. 오바마 집권 이후의 미국과 다른 점에 주목하면서 읽어도 좋고, 미국의 근로 환경과 저임금 노동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읽어도 좋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06.08.



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부키(2012)


태그:#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배신, #저임금 노동,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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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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