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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소들로 뒤엉켜 있는 인도 네팔 국경도시 다르줄라의 아침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소들로 뒤엉켜 있는 인도 네팔 국경도시 다르줄라의 아침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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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다르줄라 인도 네팔 국경. 인도, 네팔 사람들만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다리를 벗어나 시장으로 접어들었다. 네팔로 건너갈 수 없다는 말에 맥이 빠져서 그런지 한꺼번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무거운 배낭에 짓눌린 무릎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일단 숙소부터 잡기로 했다. 상가거리에 외국인 관광객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인도, 네팔, 티베트의 얼굴들이다. 외국인은 국경을 넘을 수 없고 거기다가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어 보이는 이곳, 인도북동 지역 끝자락인 다르줄라까지 구태여 찾아올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시장 근처에 'DEV 호텔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눈에 잡힌다. 게스트하우스 안내 실에 반가운 사진들이 보인다. 히말라야의 수미산, 카알라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이 달라이라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내걸려있다. 딸과 함께 미소로 반기는 중년의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에게 물었다.

"티베트 불교인입니까?"
"그렇습니다."
"네팔 사람입니까, 티베트 사람입니까."
"라다크에서 이주해온 티베트인이지만 국적인 인도입니다."

티베트 사람이면서 인도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과 딸.
 티베트 사람이면서 인도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과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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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땅인 이곳 다르줄라에는 네팔인들 뿐만 아니라 티베트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한다. 1962년 인도와 중국의 영토 전쟁이전에는 이곳 다르줄라를 통해 인도의 향신료와 티베트의 수제 카펫 등의 교환이 이뤄지면서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아이가 이 호텔의 가장 싼 방으로 안내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싼 방이라고 하지만 이전에 사용했던 방보다 두 배로 비쌌다. 비싼 만큼 시설이 좋았다. 텔레비전까지 갖춰 놓은 방은 이전에 머물렀던 숙소에 비하면 두 배로 넓다. 욕실도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넓었다. 더 이상 값싼 숙소를 찾으러 다닐 기운이 없었다. 이참에 한 달 넘게 못한 샤워도 할 겸 배낭을 내려놓았다.

배낭을 풀어놓고 여권과 지갑 등의 간단한 소지품을 챙겨 숙소를 빠져 나와 식당을 찾아 나섰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문시아리에서 새벽에 출발해 이곳 다르줄라 국경 도시에 도착하기 까지 단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말에 따라 내가 인도에 와서 즐겨 먹고 있는 만두, '모모'와 볶음국수, '자오민' 식당이 몰려 있는 거리로 나섰다.

네팔인이 운영하는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한국의 중국집에서 짜장면 아니면 짬뽕을 시켜먹듯이 다들 나처럼 모모 아니면 자오민을 시켜 먹고 있다. 이곳에도 달라이라마와 함께 웃고 있는 식당주인 사진이 내 걸려있었다.

'이참에 한 달 넘게 못한 샤워도 하자'

다르줄라에서 맛본 붂음국수 자오민. 꼬들꼬들하게 볶아낸 자오민에 짬뽕 국물 맛의 육수가 달려 나왔다.
 다르줄라에서 맛본 붂음국수 자오민. 꼬들꼬들하게 볶아낸 자오민에 짬뽕 국물 맛의 육수가 달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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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국수라 할 수 있는 자오민은 코사니나 문시아리에 비해 향신료나 기름이 많지 않고 담백했다. 꼬들꼬들하게 볶아낸 자오민에 짬뽕 국물 맛의 육수가 달려 나왔다. 만두, 모모는 이제까지 인도에서 먹어본 것 중에 한국에서 먹는 만두 맛과 가장 가까웠다. 네팔 사람들은 생김새만 닮은 게 아니라 입맛까지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불리 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와 여행 도중 어디선가에서 잃어버린 사진기 케이블을 구입하기 위해 전자제품 거리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외국인들의 발길이 뜸한 이곳에서 영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엘지와 삼성간판이 나란히 보인다. 겨우 물어물어 찾아간, 짧은 영어가 통하는 점포에서는 내게 사진기 케이블을 내보이며 60루피를 달란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 나는 다람살라 맥간에서 백 루피 이상 주고 구입했던 것을 기억하면 아주 싼 편이다. 맥간에는 카메라 상점이 한 곳이라서 유대인처럼 생긴 주인으로부터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비싸게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케이블을 여행 도중 어디선가 다시 잃어버렸던 것이다.

사진기 케이블을 노트북에 연결해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비워놓아야 다시 찍을 수 있다. 모바일 상점에서 내보였던 케이블이 내 사진기와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사진기를 들고 다시 오마 말해놓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진기를 챙겨들고 나오다가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사진기를 취급하는 상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옆에 조립식 아동용품과 장난감 로봇도 팔고 있었지만 사진기를 주로 취급하는 사진기 전문점이었다. 상점 주인에게 사진기를 제시하자 거기에 맞는 케이블을 찾아준다. 가격도 40루피에 불과하다.

카이저수염을 기른 인도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있는 다르줄라 짜이 집
 카이저수염을 기른 인도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있는 다르줄라 짜이 집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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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수염을 기른 인도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있는 짜이 집에서 짜이 한잔으로 잠시 여유를 부리며 내일 일정을 떠올렸다. 인도에서 90일을 넘기기 전에 네팔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의하면 다르줄라에서 10시간 거리의 반밧사라는 곳에 네팔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국 사무소가 있다고 한다. 내일 이른 아침에 반밧사로 떠나는 차편을 알아보기 위해 지프차가 줄지어 서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와 얼굴 생김새가 비슷한 네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내일 아침에 반밧사로 가려고 합니다.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합니까?"
"택시를 타야 할 것입니다."
"몇 시에 출발합니까?"

혹시나 싶어 세 명에게 똑같이 물었는데 다들 친절하게 오전 4시와 6시, 같은 시간대를 알려주고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상세하게 알려 준다.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악덕 기업주나 악덕 식당주인을 만나게 되면 노예 취급 받기 일쑤다. 못된 한국인들이 떠올라 같은 한국인으로서 공연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한 네팔인은 반밧사 가는 택시를 타려면 택시조합에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며 택시조합 사무실 근처까지 안내했다.

택시 조합 사무실에는 당찬 한국 여성을 닮은 중년의 네팔 여성이 앉아 있었다. 어디서 언제 출발하고, 요금은 얼마나 하고 또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정도의 간단한 영어였지만 그녀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녀가 잠시 밖으로 나서더니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 여성을 데리고 왔다.

인도 여성과의 간단한 대화를 통해 오전 6시에 출발하는 반밧사행 택시 티켓을 구입했다. 값싼 바나나와 함께 다른 과일에 비해 비교적 값이 비싼 망고를 여러 개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돈 좀 쓰기로 했다. 내 자신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샤워 꼭지를 틀고 샤워를 하면서 묵은 때를 벗겨냈다. 손닿는 곳마다 때가 밀려 나왔다. 땟물에 절은 옷가지를 빨아 선풍기 주변에 널어놓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의 전부인 두 벌을 다 빨았기에 발가벗은 채로 고목나무 자빠지듯 침대에 누웠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인도 유선 방송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채널과 음악, 뉴스, 드라마 그리고 수없이 많은 광고 채널을 돌리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방안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다르줄라 국경의 밤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오후 9시도 채 안됐음에도 거리의 대부분 불빛이 꺼져 있고 몇 군데의 상가에만 불이 들어와 있다. 택시나 버스 정류장 주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두터운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상가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네팔이나 인도 산골 깊숙한 곳에서부터 돈벌이에 나선 일당벌이 노동자들인 듯하다.

낮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소와 개들도 일당벌이 노동자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국경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기관총을 둘러멘 군인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빗어 넘긴 몇몇 청소년들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밤거리를 건들거리며 개떼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

간디 동상과 그 주변에 불태우고 있는 쓰레기 더미로 몰려든 소들.
 간디 동상과 그 주변에 불태우고 있는 쓰레기 더미로 몰려든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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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골목길을 청소하는 사람. 저녁이 되면 다시 쓰레기들이 골목 곳곳에 널린다.
 이른 아침 골목길을 청소하는 사람. 저녁이 되면 다시 쓰레기들이 골목 곳곳에 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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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텔레비전 앞에서 리모컨을 들고 인도 방송을 탐방하다가 깜박 잠에 들어 다음날 오전 5시에 눈을 떴다. 짐을 챙겨 곧장 택시 정류장으로 나섰다. 택시 정류장이 자리한 텅 빈 거리 한복판에 마하트마 간디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동상 한 옆에 모아놓은 쓰레기들이 불타오르고 있다. 거기에 인도에서 신성시 여기는 소들이 몰려들어 가장 신성하지 않는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우유를 제공하는 암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저만치 골목에서는 여전히 쓰레기를 청소하는 사람이 보인다.

반밧사로 떠난다는 택시를 잡아 배낭을 실어놓고 출발한다는 6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사내가 다가왔다. 네팔사람이라는 그는 영어를 썩 잘했다.

"어디서 왔습니까?"
"한국. 아십니까?"
"압니다. 내 친구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나는 그의 친구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에 뜨끔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네팔 사람들이 못된 한국인들을 만나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이 얼마나 고약한 자본주의 국가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한국 사람을 좋아합니다. 당신과 우리 네팔 사람들은 얼굴이 닮았습니다."

나를 닮은 네팔사람들의 얼굴 생김새에 친근감이 들었듯이 네팔 사내 또한 내가 자신들의 얼굴 생김새와 닮았다는 것에 친밀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출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지프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네팔 사내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데 인도 사내가 다가와 짜이 한 잔 하자고 한다. 키는 멀쩡하게 크고 눈가에 웃음기가 자글자글하다. 참 싱겁게 생겼다 싶은 그런 인도 사내였다. 짜이를 시켜놓고 일용 노동자처럼 보이는 그가 돈을 내려고 한다. 내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짜이값을 내밀 무렵 지프차가 시동을 걸고 있다. 조바심에 네팔 사내에게 물었다.

"택시가 지금 출발하는 것은 아니겠죠?"
"걱정 마세요. 출발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내가 얘기하고 올게요."

여행길에서 가장 불친절한 택시가 곧 출발했다

영어를 잘하는 네팔 사내와 짜이를 사주겠다고 나선 인도 사내. 배낭을 실은 택시가 사라지자 조바심을 냈던 나에게 걱정마라, 여유를 가지라 일렀다.
 영어를 잘하는 네팔 사내와 짜이를 사주겠다고 나선 인도 사내. 배낭을 실은 택시가 사라지자 조바심을 냈던 나에게 걱정마라, 여유를 가지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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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택시 기사에게 다가가 뭔 얘기인가를 주고받고 다시 돌아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짜이 한 잔 마실 때까지 출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짜이가 나올 무렵 내 배낭이 실려 있는 지프차가 저만치 미끄러져 가고 있다. 내가 벌떡 일어서자 사내가 옷소매를 잡아끈다.

"돈 워리. 괜찮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인도 사내도 거든다. 싱겁게 웃으며 괜찮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뭐가 괜찮단 말인가. 지프차가 삼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건물들 사이로 사라지고 있다. 내가 뒤쫒아 가려하자 그가 다시 제지한다.

"돌아올 것입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참으로 난감했다. 내 배낭을 실은 지프차가 다시 돌아온다고는 하지만 시장 바닥에서 처음 만난 이 사내들의 말을 어떻게 믿고 가만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걱정 말라며 친절하게 웃고 있는 이 순박한 사내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스톱! 스톱!" 외쳐가며 택시를 쫒아가 불러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여전히 여유가 없었다. 딴에는 여유있게 느리게 살아가고 있다 여기고 있지만 이들의 여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도 한 패거리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 불신과 함께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자포자기 상태로 중얼거렸다.

"그려, 니들 맘대로 해라. 까짓 거, 털어가고 싶으면 다 털어가라."

내가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허탈하게 웃자 네팔 사내가 히죽히죽 따라 웃으며 "릴렉스 릴렉스"라고 말한다.

"그려, 릴렉스다. 사는 게 뭐 있냐."

등에 짊어진 배낭이 다친 무릎을 압박할 때마다 내 업보처럼 무거운 저 놈의 배낭 속의 물건들, 컴퓨터를 비롯한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내동댕이치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의지로는 팽개칠 수 없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다잡아 나가자 사내 말대로 '릴렉스 릴렉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우리가 짜이 한 잔을 다 마시고 담배 두 개비 째를 꺼내 물 무렵 지프차, 택시는 네팔 사내의 말대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딘가에서 손님 한 사람을 태우고 되돌아 왔던 것이다. 잠시 의심을 했던 이들에게 미안해 낯짝이 화끈거렸다.

좌측에 보이는 배불뚝이 사내가 반밧사로 가는 택시, 지프차 운전기사다. 인도영화에서 악역을 단골로 떠맡는 캐릭터처럼 다가왔다.
 좌측에 보이는 배불뚝이 사내가 반밧사로 가는 택시, 지프차 운전기사다. 인도영화에서 악역을 단골로 떠맡는 캐릭터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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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시간 보다 삼십분이 넘게 지났는데 반밧사 가는 택시, 지프차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좀 전에 함께 타고 왔던 사내조차 지프차에 내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운전기사도 바뀌었다. 처음 만났던 운전기사에 비해 말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할 정도로 인상이 아주 험상궂다. 인도영화에서 악역을 단골로 떠맡는 캐릭터처럼 생겼다. '언제 출발할 것이냐'는 물음에 '기다려요'라고 명령조로 짧게 대답하며 인상을 팍팍 쓰고 있다.

6시에 출발한다던 택시는 7시가 다 되어가도록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사람과 택시와 버스들로 거리가 번잡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지프차 바퀴를 슬쩍 둘러봤다. 어제 바퀴를 펑크 낸 지프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그 몇 배 되는 장거리를 달려야 한다. 그런데 바퀴가 다 낡아 있다. 반밧사까지 10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드디어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지프차가 시동을 걸었다. 내가 앞자리에 앉으려 하자 운전기사가 미간을 찌푸려 가며 짐짝 떠밀어대듯 맨 뒷자리로 가라고 한다. 앞좌석과 중간 좌석에 앉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80일째로 접어들고 있는 인도 여행길에서 가장 불친절한 택시는 다르줄라를 빠져 나가기에 앞서 국경 초소 주변에서 네 명의 네팔 사람들을 태웠다. 그리고 다르줄라를 마악 빠져 나가기 전에 또 다른 사내가 올라탔다. 매끈하게 생긴 인도 사내였다. 앞좌석은 운전기사와 친구처럼 보이는 그의 차지였다. 중간 좌석에 세 명, 뒷좌석에는 짐과 함께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마주보고 앉았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자꾸만 눈앞을 가린다. 나는 출발 선상에 있는 달리기 선수처럼 마음을 다잡아가며 긴 머리를 질끈 묶으며 중얼거렸다.

"가는데까지 가보자..."

다르줄라 국경에서 반밧사 국경까지 10시간. 이제 10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다. 모든 시간을 지프차에 떠맡겨야 한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반밧사가 지도상으로 어느 곳에 붙어 있는가는 알고 있었지만 어느 길로 가는지, 어떤 국경 도시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지프차가 가는대로 가면 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길과 저 험상궃은 운전기사의 운전 습관에 따라 가게 될 것이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만이다. 그 과정을 지프차와 운전기사에 떠맡겨야 한다. 그렇게 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길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험상궂은 운전기사에게 내 운명을 떠맡기고 있었다.


태그:#인도 네팔 국경 다르줄라, #친절한 네팔사람들, #반밧사 가는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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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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