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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돌목 우수영에 설치돼 있는 고뇌하는 이순신 상. 명량대첩을 앞두고 어떤 전략을 짤 것인지 고뇌하는 모습 같다.
 울돌목 우수영에 설치돼 있는 고뇌하는 이순신 상. 명량대첩을 앞두고 어떤 전략을 짤 것인지 고뇌하는 모습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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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함대를 이끌고 조수를 따라 수군진을 벽파진에서 우수영으로 옮겼다. 명량대첩을 하루 앞둔 1597년 9월 15일(양력 10월 25일)이었다. 진도 벽파진에서 해남 우수영까지는 그리 멀지 않는 거리다.

이순신은 적은 숫자의 수군으로 울돌목을 등지고 진을 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칫 물살에 밀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돌목의 좁은 바닷길이 적은 병력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대적하는 데도 맞춤이란 판단도 했다. 강한 해류를 이용하면 쉽사리 일본군이 진격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었다.

울돌목은 육군과 협공작전을 펴며 한양으로 진격하려던 일본군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서해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그 길목을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의 함대가 지키고 선 것이었다.

 진도대교 아래로 흐르는 울돌목. 조류의 속도가 최대 11.5노트, 시속 22㎞에 이른다. 물길을 감안할 때 무척 빠른 속도다.
 진도대교 아래로 흐르는 울돌목. 조류의 속도가 최대 11.5노트, 시속 22㎞에 이른다. 물길을 감안할 때 무척 빠른 속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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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돌목의 물살. 물 흐르는 소리가 20리 밖에서도 들린다는 험한 해협이다. 급류가 서로 부딪혀 울면서 소리를 낸다고 지명도 ‘명량(鳴梁)’이다.
 울돌목의 물살. 물 흐르는 소리가 20리 밖에서도 들린다는 험한 해협이다. 급류가 서로 부딪혀 울면서 소리를 낸다고 지명도 ‘명량(鳴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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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일본군과의 일전을 벌일 장소로 택한 울돌목은 수로의 길이가 2㎞에 이른다. 폭은 가장 좁은 곳이 300m 정도다. 최저 수심은 1.9m, 조류 속도는 최대 11.5노트에 이른다. 시속 22㎞인 셈인데, 물길을 감안할 때 무척 빠른 속도다.

유속이 빠르고 바닥이 거칠어 물 흐르는 소리가 20리 밖에서도 들린다는 험한 해협이다. 급류가 서로 부딪혀 울면서 소리를 낸다고 지명도 '명량(鳴梁)'이다. 그 해협에 전운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이순신은 모든 장수와 병사들을 불러 모아놓고 역설을 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다(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 이순신은 제장들에게 여기서 살아나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겠다고 밝혔다.

이순신은 이어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일부당경 족구천부, 一夫當經 足懼千夫)"면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장수와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군사들의 사기가 밤하늘을 찌를 듯했다.

 명량대첩을 앞두고 모인 조선의 수병들. 전라남도가 여는 명량대첩축제 때의 한 장면이다.
 명량대첩을 앞두고 모인 조선의 수병들. 전라남도가 여는 명량대첩축제 때의 한 장면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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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순신의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났다. 그 신인은 전투에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고, 지게 되는지 소상히 알려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이른 아침, 망을 보러 나갔던 군관이 와서 "어란진 쪽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적선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이순신은 바로 제장들에게 닻을 올리도록 명령했다. 곧바로 바다로 나가서 몰려오는 적선을 봤더니,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도저히 상대를 할 수 없을 만큼의 규모였다.

그 시각, 울돌목의 조류는 거의 멈춘 상태였다. 최대 간조기였다. 덕분에 왜선은 순한 물흐름을 타고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오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때를 이용해 자신들의 최대 장점인 백병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이순신은 제장들에게 "간밤의 꿈에 하늘의 신이 나타나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며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적선이 몰려오는 긴박한 순간인데도 이순신이 꿈 이야기를 꺼낸 것은 병사들을 안정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순신은 군함으로 위장하고 수군의 뒤쪽에서 머물고 있는 피난선과 어선도 돌아봤다. 수군을 뒤에서 돕겠다고 나선 피난선과 어선이 100여 척 됐다. 언뜻 수군의 함대처럼 보였다. 완벽한 위장이었다.

어민들은 어선을 도열시켜 놓고 솜이불을 한 채씩 들고 있었다. 적진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물에 적신 솜이불로 막겠다는 것이었다. 군사와 백성이 똘똘 뭉쳐 하나 된 모습에서 이순신은 승리를 예감할 수 있었다.

 “초요기를 올려라! 조선의 수병들이여, 진군하라!”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진군하는 조선수군들. 명량대첩 축제 때 해상전투 재현 장면이다.
 “초요기를 올려라! 조선의 수병들이여, 진군하라!”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진군하는 조선수군들. 명량대첩 축제 때 해상전투 재현 장면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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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진군을 명령하는 이순신. 진도 녹진관광지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모습이다.
 총 진군을 명령하는 이순신. 진도 녹진관광지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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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일본군의 함선이 가까이 다가왔다. 겉보기에 이순신은 싸우려는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군은 조선수군의 형세가 강하지 않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하고 이순신의 턱밑까지 다가왔다. 마다시가 이끄는 일본군의 선봉대가 울돌목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그 순간, 이순신이 탄 함선에서 태평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선수군 함대의 깃발도 일제히 올라갔다.

"초요기를 올려라! 조선의 수병들이여, 진군하라! 마다시, 오늘 울돌목 바다가 너의 마지막이 되리라."

이순신의 출전 명령과 함께 조선수군의 격군들이 힘차게 노를 저었다. 수군 함대가 적선으로 돌진하며 포를 쏴 올렸다. 현자총통의 포성이 뇌성과 번개를 동반한 우레처럼 들렸다. 탄환이 허공을 가르며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군관들은 함선의 위에 줄지어 서서 화살을 쏘아댔다. 적선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빗발처럼 많았다.

 이순신의 출전 명령에 따라 조선수군들은 적선으로 돌진하며 포를 쏴 올렸다. 명량대첩 축제 때 해상전투 재현 모습이다.
 이순신의 출전 명령에 따라 조선수군들은 적선으로 돌진하며 포를 쏴 올렸다. 명량대첩 축제 때 해상전투 재현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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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재건로 고증 및 기초조사(전라남도), 이순신의 수군재건 활동과 명량대첩(노기욱, 역사문화원), 명량 이순신(노기욱,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등을 참고했습니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두 차례 답사했습니다.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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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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