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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쓰는 맛'을 안 덕이는 좀처럼 쉽게 본인의 씀씀이를 줄이려 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일단은 덕이가 마음 편하게, 그리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 뒤 그 다음에 함께 이야기 하는 방향을 택했다.

내가 "덕아~"라고 부르자 덕이는 그렇지 않아도 본인의 씀씀이가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지 내 눈치를 보면서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고모 : "덕아~ 앞으로 6개월간 너가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해보렴."
: "응? 왜?"

덕이는 순간 '이건 뭐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되묻는다.

고모 : "사실 너도 지금 돈 써보는 재미가 좋긴 하지만, 내가 언제 너의 씀씀이에 대해 불러서 이야기할지 몰라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지?"
: "맞어."
고모 : "지금까지 2년동안 너가 마음대로 해보았듯이 앞으로 6개월간 네가 하고 싶은대로 써보렴. 대신에 한 가지 약속을 할 수 있을까?"
: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뭔데?"

고모 : "앞으로 6개월간은 가능하면 천 원 단위라도 현금을 사용하지 말고 카드로만 사용해보고, 매달 나오는 카드사용 내역서를 보고….(사전에 준비한 내 카드내역서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사용된 품목별로 너가 구분해 보는거야."
: "어떻게?"
고모 : "품목별로 너가 갖고 있는 노트에 매달 어느 곳에 얼마를 사용했는지 합계를 내보는 거지."

나는 한 가지씩 품목별로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덕이는 "알겠다"고 말하며 씨익 웃었다. 다행이라는 듯 홀가분해 보인다.

6개월 후, '약속의 날'이 밝았다

덕이가 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덕이가 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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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5개월이 흘렀다. 일과를 마친 덕이는 TV 앞에서 즐거워하며 휴대전화로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그런 덕이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덕이가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를 의식했는지 약간은 짖궃은 투로 말한다.

: "뭘보셩?"
고모 : "핸드폰 하고 있는 너"
: "왜?"
고모 : "너가 집중하는 모습에 힘이 느껴져서"
: "왜 할 말 있어?"
고모 : "핸드폰 요금…."
: "요금제 만큼만 쓰니까 걱정마."
고모 : "그렇구나. 역시 맘에 들어."

사실은 신경이 무척 쓰였다. 다행히 근래에는 휴대전화 요금이 과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는 덕이를 종종 보면서 처음 몇 번처럼 덕이가 유료인지 모르고 게임을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때 함께 봉사하는 형제들이 덕이를 친동생처럼 덕이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어떤 게 유료고 어떤 게 무료인지 설명해줬다. 다행히 그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덕이가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약간 마음이 쓰였다. 6개월간 덕이 마음대로 해보라고 할 때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었다. 일단은 믿고 기다려보기 위해서.

이제 약속한 6개월이 다 지나고 카드명세서를 받은 날. 그날 나는 오후 11시쯤 귀가했다. 덕이는 이미 일과 마무리를 끝낸 상태였다.

고모 : "덕아~. 이제 우리 정리해보자."

덕이는 당당하게 노트를 들고 내 앞으로 온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아마도 자신이 있나 보다. 덕이가 "자~" 하면서 내 앞에 노트를 내려놓는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고모 : "자신 있나 본데?"
: "한번 봐."

덕이 나름대로 분류해서 합계를 기록한 노트를 보니까 내가 흐뭇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그대로 이행하려고 했던 흔적이 보인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2년 전부터 설명할 때는 듣는 것 같지 않더니, 그렇게 할 때 스스로도 생활의 틀을 조화롭게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나 보다. 약간 품목의 분류가 정확하지 않은 곳이 발견됐지만, 전체적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 싶었다. "잘했다, 역시 믿을만 한데"라고 해주니 덕이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진정한 발전을 원한다면... 기다리세요

무엇보다 기다리는 게 필요했다.
 무엇보다 기다리는 게 필요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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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한다. 상대가 진정으로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기다림' '믿음' '존중', 여기에 더해 그런 점들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말이나 태도로 보여주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나는 덕에게 나에 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과일, 음식을 이야기 해줬는데도 어느날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노란 참외를 사왔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포도도 한 팩 사와 내 앞에 놓는다. 물론, 아무런 말 없이.

그런 덕이 모습이 고맙고 든든하기까지 하다. 이제 이 정도면 덕이가 신체적 자립과 경제적 자립을 모두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입에 맞춰 매일, 매주, 매달, 분기별로 지출해야 하는 항목을 기록한 뒤 수입과 지출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도 덕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선, 우선 덕이의 마음에서 온전히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게 꼭 필요했다.

또한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해볼 수 있는 시간, 어느 정도 비교 분석해볼 수 있을 정도의 긴 시간 역시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난 뒤에 추가로 필요해보이는 점을 지도하면 덕이는 보편적으로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말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 벌어진다. 마음과 머리 사이의 싸움 말이다. '기다려줘야 하나?' '이쯤에서 말해야 할까' '아니야, 덕이가 충분히 해봤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려봐야 해' 등…. 나는 나 안의 갈등 때문에 두통이 생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덕에게 필요한 시간 만큼 기다린 뒤 따라오는 효과는 그동안 머리가 아팠던 이상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종종 덕이의 일에 있어선 덕이가 필요한 시간 만큼 기다려준다. 그 일에 주체는 덕이이기 때문에.

이런 지도를 받고 자란 사람은 섣불리 남에게 불평을 하거나, 본인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대 초조해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자! 다음으로는 덕이의 '정서적인 독립'을 실행해 볼 차례다. 실행 결과, 본인이 원하는 결과든 아니든 거기에 따르는 감정요인까지 받아들이는 훈련(다른 표현으로 학습이라고 한다)이 될 것이다.


태그:#핸드폰, #월급, #게임, #돈,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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