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보스턴 글로브>지의 특별취재팀 '스포트라이트'. 오늘 '씨네만세 116'에서 소개할 영화는 그들이 가장 빛났던 순간을 담은 영화 <스포트라이트>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다. 2002년 미국 보스턴에서 발생한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담백하지만 진정성 있는 연출로 시상식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지난해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버드맨>에 비해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스포트라이트>의 진가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영화의 배경은 보스턴이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에 자리한 이 도시는 영국에서 온 청교도들이 처음 세웠으나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히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미국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를 여럿 배출하며 그 세를 넓혀왔다. 보스턴 정치 명가로 자리한 케네디 일가가 대표적이다. 보스턴 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종교는 가톨릭으로 아일랜드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들여온 것이다.

보스턴 사회가 은폐한 진실, 이를 파헤치는 '진짜' 기자들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팀의 실제 편집장이었던 로비 로빈슨(오른쪽)과 영화에서 그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왼쪽). 로빈슨은 영화 속 마이클 키튼이 자신과 너무도 비슷했던 나머지 "극 중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팀의 실제 편집장이었던 로비 로빈슨(오른쪽)과 영화에서 그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왼쪽). 로빈슨은 영화 속 마이클 키튼이 자신과 너무도 비슷했던 나머지 "극 중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이야기는 <보스턴 글로브>지 편집장이 바뀌는 장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보스턴 글로브>지가 1993년 <뉴욕 타임스> 사에 인수되면서 신입 편집장으로 <뉴욕 타임스> 기자 출신 유대인이 부임한 것이다. 아일랜드계와 가톨릭이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보수적 도시에서, 외지인이자 유대인인 편집장의 부임은 눈길이 쏠리는 일일 수밖에 없다.

편집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분)은 <보스턴 글로브>에 부임하자마자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마이클 키튼 분)에게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의혹을 심층 취재하라고 지시한다. 과거 일회성 사건기사로 몇 차례 다뤄진 바 있었던 의혹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라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반기는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의 모습을 잡아내며 그동안 알 수 없는 외부의 압력에 사제들의 성추행 의혹이 제대로 취재되지 못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후 영화는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이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 이를 세상에 낱낱이 공개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악의 카르텔에 맞서 진실을 보도하는, 여느 기자들이 등장하는 영화와 흡사한 전개다. 이들은 우선 성폭행 피해자를 비롯해 일련의 범죄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고 설득한다. 사건과 관계된 여러 기록물을 확보하고 그 속에서 은폐된 진실을 끄집어낸다. 획기적인 취재가 빚어내는 극적인 순간보다는 원칙에 충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기자들의 활약상이 영화 내내 비춰진다.

영화는 가톨릭 사제들의 성폭행이란 개별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이를 묵인하고 방조해온 사회 전체를 고발한다. "아이 하나의 좋은 행동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의 잘못된 행동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라는 대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개별 사건의 비극성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영웅적인 인물에 주목하는 대신 보스턴 사회 전체의 책임을 되묻는다. 마을 전체의 책임을 일깨우며 그로부터 우리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문제를 지목하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건 보스턴 사회 밖의 타자들이다. 갓 부임한 유대인 편집장과 좀처럼 주류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아르마니아인 변호사가 그들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디까지나 스포트라이트 팀을 위시한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 즉 보스턴 사회 토박이들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이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는다. 로비가 그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고 모두 앞에서 이를 실토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제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선포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포트라이트 실제 스포트라이트팀 기자 샤샤 파이퍼(오른쪽)와 영화에서 그녀를 연기한 레이첼 맥아담스(왼쪽).

▲ 스포트라이트 실제 스포트라이트팀 기자 샤샤 파이퍼(오른쪽)와 영화에서 그녀를 연기한 레이첼 맥아담스(왼쪽). ⓒ (주)팝엔터테인먼트


<스포트라이트>가 거대한 악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를 드러내는 기자들은 영웅이 아니며, 범죄를 저지른 자들만이 죄인이 아니다. 문제를 모른 척 덮어버리고 방조하며 방관한 보스턴 사회 전체가 이 잘못에 책임이 있음을 드러내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며 이를 이뤄냈다는 게 이 영화의 성취다. 단언컨대 지난 한 해 개봉한 기자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가운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던진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영화에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은 결코 영웅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은 <어벤저스>의 히어로가 아니라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심지어는 내적으로도 갈등하는 기자들인 것이다. 영화는 언뜻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장면들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팀장인 로비와 싸운 후 마이크(마크 러팔로 분)가 동료 샤샤(레이첼 맥아담스 분)의 집을 찾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정생활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늘 일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는 샤샤를 뒤에서 바라보는 남편,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샤샤, 그리고 한밤중 그런 샤샤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마이크에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까지…. 영화는 이처럼 짤막한 에피소드 몇 개만으로 마이크나 샤샤 같은 기자의 삶이 모든 면에서 안락하고 균형 잡혀 있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절제된 연출 속에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영리함은 <스포트라이트>가 가진 또 다른 훌륭함이다. 영화는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는 극적인 전개나 파격적 반전보다는 스포트라이트 기자들의 뒤를 묵묵히 따르는 이야기 전개를 택했다. 다소 긴장감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영화는 이를 몇 가지 장치만으로 효과적으로 극복해낸다. 한밤중 마이크의 집을 찾은 벤(존 슬래터리 분)의 모습에서 <보스턴 글로브> 내부에 사건을 무마하려는 자가 있다는 인상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긴장감을 자아내는 식이다. 이 밖에도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과 각각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함으로써 사건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통쾌한 결말 대신 주목한 여전히 어두운 진실

스포트라이트 실제 스포트라이트팀 기자인 마이크 레젠데스(오른쪽)와 영화에서 그를 연기한 마크 러팔로(왼쪽). 마크 러팔로는 레젠데스로부터 "내가 말하고 걷는 모습도 잘 포착해서 연기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 스포트라이트 실제 스포트라이트팀 기자인 마이크 레젠데스(오른쪽)와 영화에서 그를 연기한 마크 러팔로(왼쪽). 마크 러팔로는 레젠데스로부터 "내가 말하고 걷는 모습도 잘 포착해서 연기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결말은 이런 부류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가 흔히 선택하는 방식이다. 보통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선택을 취한다. 하나는 <내부자들>처럼 거대한 악의 카르텔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분투를 보여주며 그 끝에서 극적인 승리를 그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빅쇼트>처럼 주인공들의 분투에도 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이들이 싸운 악보다 더욱 큰 악이 세상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후자를 택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스포트라이트 팀은 보스턴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고발하고 이듬해 기자로서 최고의 영광인 퓰리처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사건이 해결됐다는 짜릿함보다 불안하고 암담한 느낌을 받는다. 보스턴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사제들의 성추문을 묵인했다고 알려진 버나드 로 추기경이 추기경 직분을 유지한 사실부터, 보스턴처럼 아동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교구가 전 세계 수백 개에 이른다는 사실까지가 검은 화면 가득 자막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꾸며진 쾌감으로 관객을 마취시키는 대신 진실을 알리고 책임을 일깨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 전반을 가로지른 스포트라이트 팀의 성취도 역시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린다. 보다 중요한 건 마을 전체가 불의에 동조하지 않는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내고자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목적을 이뤘다.

<스포트라이트>가 뛰어난 작품이라면 그건 바로 이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 토마스 맥카시 (주)팝엔터테인먼트 아카데미 시상식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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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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