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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마지막 날이다. 아침이 숙박비에 포함되지 않아 일찍이 출발할 수 있었다. 비는 약하지만 띄엄띄엄 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국도 58번을 찾았다. 길가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들이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가는 쪽에 맥도널드가 눈에 띄어 아침을 먹기 위해 들렀다.

오늘 갈 곳은 후텐마 기지가 이전하기로 되어있는 헤노꼬와 오키나와 전투로 사망한 자들을 기리는 평화기념공원이다. 잠시 가니 왼쪽으로 가는 329번 도로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와 동쪽으로 넘어갔다. 산마루에 오르니 미군기지(Camp Schwab)가 나오고 그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푸른색의 옷을 아래위로 입은 용역인 듯한 사람들이 문 입구에 서 있었다. 이런 것이 늘 문제다. 여자의 적은 여자이고 가난한 자들의 적은 가난한 자들이라고 하던가. 용역들이 누군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아닌가? 나름 돈 좀 벌겠다고 가진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대신해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대치하는 사람들 아닌가? 권력 있고 돈 있는 자들은 늘 돈으로 용역을 사서 대신하게 한다. 힘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은 늘 몸으로 맞서야 한다.

어찌 이곳이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을까?

 미군기지 앞에서 시위하는 현장
 미군기지 앞에서 시위하는 현장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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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도쿄에서 왔다고 하며 우리를 매우 반겼다. 철조망에는 한글로 된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저 얕은 바다를 매립하고 그곳에 미군 비행장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곳엔 세계적 희귀종 듀공이 사는 곳이다. 듀공은 초식만 하는 유일한 해양 포유류로 새끼를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사람을 닮았다고 한다.

어찌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을까? 하긴 우리나라도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있는 환경영향 평가라는 것이 전문가들이 알량한 평가비 받고 발주처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주는 요식행위로 변질되지 않았던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법원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4대 강이 그렇게 훼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헤노꼬 주변은 자연환경보존에 관한 지침에서 평가 1순위 지역이라 한다. 듀공, 바다거북이, 푸른산호 등이 자라고 있고 북부의 얀바루 숲은 동양의 갈라파고스라 할 정도로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임에도 편법으로 조사하고 맞춤평가가 강행된 것이다. 듀공 대 럼즈펠드 재판에서 '미 국방부는 듀공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에 주는 영향을 배려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고 2012년 당시 현지사도 환경영향조사가 불충분함을 지적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매립하려고 한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매립하려고 한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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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을 보니 반가웠다.
 한글을 보니 반가웠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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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노꼬를 지나 329번을 타고 난조시로 들어와 다시 331번을 타고 해안을 따라 이토만시로 향했다. 아침나절 간혈적으로 계속 내리던 비는 오후가 돼서 그쳤다. 길가 아주 조그만 식당에서 점심을 했는데 평범한 음식이 우리 돈으로 만 원이 넘고 맥주도 5천 원이 넘는다. 확실히 오키나와의 물가는 우리나라보다는 비싸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우연히 들린 한 카페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카페는 고즈넉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조그만 나무집이었다.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는데 커피는 자신이 알아서 몇 번이고 가져다 마실 수 있었다. 가까운 곳 탁자 위에 뜨거운 커피, 냉커피, 얼음, 그리고 몇 개의 차가 준비되어 있어 알아서 가져가면 되었다. 잠시 후 치즈케이크가 하얀 접시에 아주 예쁘게 담겨 나왔다. 가격은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적절했다. 목마르던 차에 몇 잔이나 냉커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너무도 예쁘게 나온 치즈케이크
 너무도 예쁘게 나온 치즈케이크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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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미국에 종속되기를 자처할까?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기득권 세력이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의 후손이니 기득권 유지를 위해 미국에 스스로 종속적인 나라가 되려고 한다고 억지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일본은 스스로 굴욕적인 종속을 자처할까? 맥코맥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구미에 대한 혐오감도 있지만 열등감에 따른 경외심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시아의 다른 민족에 대해에서는 우월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A급 전범인 일본 왕 히로히또는 신헌법이 시행되자 "미국에게 일본의 안전보장을 맡긴다"고 노골적으로 맥아더에게 말했고 미국의 반공파들과 직접적인 통로를 만들어 강화조약과 안보조약 등 중요한 정책 체결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거대기업을 배후로 반공 세력이 로비를 벌여 전범들과 관료들이 공동으로 재벌을 부활하고 재군비정책을 벌여 미일관계를 지탱해 왔다. 이러한 공모관계로 형성된 속국 관계가 현재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자본주의화되어가는 현재까지 전 분야에 지배해 왔다고 한다.

한편 미국은 냉전 초기 아시아 전략에서 일본을 서방에서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 주도 하에 일본과 군사적으로 일체화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을 이웃나라와 우호적으로 지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지역 긴장이 커지고 그 결과 미군기지를 유지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에 복귀시켰으나 동중국해의 센까쿠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시정권)만 넘겨 영토분쟁을 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영토분쟁은 미군의 오키나와 주둔을 일본이 더 받아들이게 하고 미국에 더 오래 의존하도록 미군기지의 주둔을 정당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즉 중일과 한일관계의 지속적인 분쟁은 일본을 미국의 속국 자리에 가두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분쟁을 위한 외교적 노력보다는 미일 안보조약에 근거한 일본의 시정권 아래에 있는 영토가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 미군이 일본을 지키도록 규정한 조항에 의지하고 있다.

일본은 전후부터 지금까지 집단자위권과 중국 위협론을 근거로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전체 경비의 3/4를 부담하고 후텐마 기지 이전 비용도 부담하는 등 오키나와 군사기지를 강화하며 중국을 봉쇄하는 구조를 건설하여 스스로 미국에 협력하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조선인 위령탑이 있는 평화기념공원

이토만시(糸滿市)에 속하는 오키나와 남부 끝자락 해안에 평화기념공원에 들렸다. 공원은 매우 넓게 조성되어 있다. 오키나와 전투 종결 50주년을 기념하여 1995년 6월 23일에 건립된 이 공원은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23만여 명의 모든 사람을 추도하고 영혼을 위로하면서 평화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세계평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고 문화유산이 파괴된 곳이다. 공원 내 평화의 초석에는 평화의 불이 점화되어 있는데 이 불은 오키나와 전투 당시 최초 상륙지였던 곳에서 채화한 것과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나누어 받은 것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평화의 불
 평화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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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이 새겨진 비
 이름이 새겨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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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검은 비가 빼곡히 서 있는데 여기에 비참한 전쟁의 체험을 후세에게 바르게 전하기 위해 국적과 신분을 불문하고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조선인을 위한 위령공원도 따로 있다. 만여 명이 넘는 조선인이 희생되었지만 2014년 6월 현재 평화의 초석에 이름이 새겨진 조선인은 남북한 합해 447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굳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구분해야 했을까? 나머지는 아직도 이름조차 알 수 없다.

이곳서 공항까지는 약 20킬로미터도 채 안 되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에 지고 공항에 도착하니 5시이다. 오늘의 주행은 130킬로미터나 되었다. 맡겼던 짐을 찾아 자전거를 포장한 후 다시 네 대의 자전거를 싼 짐을 보관소에 맡겼다. 공항에서 바로 모노레일을 타고 숙소가 있는 역까지 가는데 약 20분 걸렸다. 내일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와야 하므로 24시간 내 여러 번 탈 수 있는 승차권을 구입했다. 

다음 날 8시에 숙소를 나와 모노레일을 타고 슈리성 공원에 갔다. 오키나와 전투로 모두 부서진 궁궐을 1992년에 복원하여 슈리성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류큐왕국의 문화유산은 1609년 사쓰마군에 의해 약탈되었고 또 푼돈에 팔려 본토로 반출되었다. 그러한 문서는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었다. 전투 후에는 미군들에 의해 대량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마치 일본에 합병된 조선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아시아의 평화 허브로 다시 태어나길

 1975년에 세워진 한국인위령탑. 북한 사람은?
 1975년에 세워진 한국인위령탑. 북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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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치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903년 오사카 박람회 인류관에 야만인이라며 오키나와인 한 쌍을 다른 민족들과 함께 전시한 것이다. 여기엔 조선인도 있었다고 한다. 마치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해 원주민을 잡아다 전시한 것처럼.

또한 오키나와 전투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학살하고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저질러진 집단자결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역사를 왜곡해 일본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미화시켜 오키나와 사람들, 특히 생존자나 희생자의 가족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미국과 일본은 모두 오키나와 주민을 대화의 상대보다는 억누를 대상자로만 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은 전 국토가 평등하게 기지 부담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오키나와에 그 모든 부담을 떠 넘겼고 미국은 토지를 마음대로 징발했다.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은 바로 이러한 일본의 불평등 대우에 대한 반대이자 미국의 반식민지주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일본 헌법의 적용도 받지 못하고 군사기지와 공생하라는 것은 겨우 전쟁에서 살아남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겐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구조적인 오키나와 차별에 오키나와 민중이 투쟁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결국 오키나와는 일본과 미국 두 나라와 맞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본토의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일부 주민들은 2010년 6월에 류큐 자치공화국연방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키나와가 분명 일본의 영토라면 똑같이 평화헌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미군기지가 축소되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철수하여 오키나와가 예전 류큐왕국이 행했던 대로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동남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평화 허브의 역할을 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다카라 구라요시, 「류큐왕국」,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08
아라사키 모리테루, 「오키나와 현대사」, 논형, 2008
개번 매코맥, 노리마쯔 사또꼬,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창비, 2014
통일뉴스, <제주 4·3을 떠오르게 한 오키나와>, 2014.4.1.
한겨레 21, <성명서가 아니라 연구가 필요하다>, 2016. 2, 제10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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