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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노인이면서 동시에 청년이었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의 억압을 초월해 '지금 이 순간'의 의미와 행복을 중요시하는 조르바의 태도는 함께 동행하게 된 청년인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 매력적인 노인을 통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청년과의 소통에 스스럼이 없었던 조르바는 '꼰대'가 아니라 '멘토'였고, 안갯속 같은 인생의 길에서 만난 '도반'(道伴)이었다. 

노인 세대는 왜 '꼰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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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듦 수업> 표지 .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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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에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화두다. 은퇴 이후의 삶이 존엄한 제 2의 인생으로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정치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으며 적절한 수준의 문화 생활도 보장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여기에 신체적 능력이 허락하는 한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일을 하면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꿈 같은 이야기다.

우리의 현실에서 노년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여전히 일할 수 있지만 일자리는 없고, 사회보장체계는 허술한 데다 먹고 살기 어려워지다보니 가족의 부양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노인을 존엄하게 대우하기보다는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사회적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노인일수록 '꼰대'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꼰대는 '불통'의 다른 이름이다. 꼰대가 되니 청년세대와 소통하지 못하고 세대간 갈등은 깊어진다.

한국 극우보수의 행동대로 부상한 '어버인연합'은 '꼰대병'이 집단적으로 발흥했을 때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들이 주장하는 '노인의 지혜'는 청년 세대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고집일 뿐이다.

'꼰대'가 아닌 '꽃대'로 존엄하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늙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행복한 노년의 삶을 학습하는데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책 <나이듦 수업>은 2015년 안양문화예술재단이 기획한 대중강연 '나이듦 수업'의 결과로 올바른 노년 문화 담론을 모색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여성학자 정희진, 심리학자 김태형, 물리학자 장회익,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 남경아, 사회복지사 유경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노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제시한다.

100세 시대의 재구성,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자본주의는 젊음의 에너지를 계속 산업에 투입해 화폐로 바꿨던 겁니다. 청춘이 노동력으로 계산된 시대가 된 거죠. 쓸모없으면 그냥 버렸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노년에 대한 설정이나 문화, 담론이 없었어요"라고(28쪽) 노인 담론 부재 현상을 설명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형을 하면서까지 청춘을 연장하고 청춘을 모방하는 집착과 욕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성숙한 노년 문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건 혈연적 관계망에서 벗어난 거예요.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자식은 다 커서 자기 길을 가고, 나는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세상에 뚜벅뚜벅 나온 거예요. 온전히 세상과 만나는 일만 남은 거죠. 그런 존재들의 결합이 우정이에요. 철학을 함께 하는 우정, 이를 동양에서는 '도반(道伴)'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배움이 일어나면 사제지간이죠. 스승이면서 친구, 이를 '사우(師友)'라고 하죠.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성된 관계는 사우 관계예요. 스승인데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낼 수 있고, 친구인데 그를 스승으로 존중할 수 있는 관계. 이런 관계가 인간이 태어나서 맺을 수 있는 최고의 관계입니다.' (고미숙, 43쪽)

고미숙은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직업을 다시 얻어 사회적으로 진출하는 일이 아니고, 혈연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비전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며 "지혜의 장이 열리고 이 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면 노인과 청년은 계속 소통할 수 있다"고(46쪽) 충고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과거에는 인간이 늙어가는 것이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었다면, 현대사회의 인간은 끊임없이 나이의 흔적과 싸우고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직장을 구할 수 없고 대화의 장에 끼지 못할 존재라는 근심 속에서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며 "지식인이나 소위 좌파는 나이 들어도 노인으로 불리지 않고 자신을 노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기 때문에 노인 담론은 풍요롭지도 못한 실정"이라고(67쪽) 본다.

'노인의 바람직한 삶의 방향은 우리가 토론해 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의 방향은 자기몰두예요. 자기몰두형 인간. 이기적인 거하고는 달라요. 자기 세계가 있다는 것,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가 있는 것, 그게 공부든 낚시든 사회운동이든 예술이든 자기가 추구하고 몰두하는 세계가 있는 분들은 일단 외롭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아요. 그거만 해도 어디예요? 외롭거나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제일 문제잖아요...(중략)...사람이 어떤 세계를 추구할 때는 결코 나쁜 것을 추구하지 않아요. 살인과 악을 추구한다든가 부패를 추구한다든가 이렇지는 않죠. 대부분 나쁜 것을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없죠. 저는 가장 바람직한 삶은 공공선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희진, 82쪽)

필자들은 사회적 존재로서 노인의 정체성을 되찾고 '의미있는' 인생 후반전을 추구하는 것이 건강한 노년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데 동의한다.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 남경아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공헌 일자리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베이비붐 세대의 경험, 능력을 계속 살려서 할 수 있는 공익활동이 없을까, 또 이를 소득 활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다"고(185쪽) 설명했다. 그는 "100세 시대의 일과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과 학습과 관계를 탐색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며 "사회는 노년을 품어야 하고 우리 개인도 사회를 품는 노년이 되어야 한다"고(201쪽) 강조했다.

노인 '문제→존재'로... 건강한 노년 담론 필요

심리학자 김태형은 "한국 노인 세대의 삶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자기 인생을 긍정적으로 회고하기 어려운 삶이었다"고(109쪽) 진단한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보다는 인내하며 머리를 숙이고 산 세대인 노인 세대는 심리적으로 패배적이고 무력감을 겪는다.

이런 맥락에서 노인 세대는 지배집단에 대체로 순종적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보수적인 반공이데올로기를 내면화 하게 된다.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휩싸이면 권위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고 순종적인 삶에서 오는 비겁함과 복종심은 비이성적인 보수주의적 성향으로 표출된다.

꼰대의 사회심리학적 배경을 살피다보면 지금의 노인 세대는 '나쁜 분'들이 아니라 '아픈 분'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김태형은 "노인 세대는 젊은 세대, 청년 세대의 고통을 들여다보면서 도와주려 하는 건강한 어른의 모습을 갖기 힘든 상황"이라며 "한국의 노인 세대가 더 이상 꼰대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행복해지려면 자기비하와 자기부정에서 벗어나 자기긍정으로 들어가야 한다"고(118쪽) 충고한다. "한국 같은 혼탁한 나라에서 성실하게 살았으면 잘 산 거다, 잘 살았으면 된 거다"라고 노년기의 자기 평가 기준을 바꾸자는 것이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 노인은 불편하고 외롭다. 사회적으로 그들은 '존재'가 아니라 '문제'로 인식된다. 마치 지구 위에 남성, 여성, 노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은 다른 '종'으로 취급된다. 고령화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기능적 접근을 넘어서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건강한 '노년의 양식'을 형성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바야흐로 젊었을 때부터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덧붙이는 글 | <나이듦 수업> (고미숙, 정희진, 김태형, 장회익, 남경아, 유경 지음 / 서해문집 펴냄 / 2016.1.)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이듦 수업 -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

고미숙 외 지음, 서해문집(2016)


태그:#노인문화, #100세시대, #고령화사회, #나이듦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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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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