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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2월 송파구의 세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14년 2월 송파구의 세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 서울경찰청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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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 셋방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함께 목숨을 끊었다. 두 딸은 질환을 앓고 있었고, 음식점 일로 월 150만원을 받던 어머니가 몸이 다쳐 실직하자 유일한 수입원이 끊겨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몇 년 전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했지만 대상이 되지 못했고 긴급구호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이들은 결국 '정말 죄송합니다'는 메모와 함께 전 재산인 70만원을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긴 채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들의 죽음도 안타까웠지만, 더 안타까웠던 것은 이같이 어려운 사람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긴급구호라는 것도 응급처방에 불과했다.

이후 국회는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부랴부랴 '송파 세모녀법'을 만들었으나 안타까운 유사 사건들은 전국에서 연이어 벌어졌다. 그해 10월 동대문구 장안동에서는 세들어 살던 집이 팔려 퇴거에 몰린 60대 독거노인이 장례비와 수도·전기요금을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이듬해 1월엔 일생 장애인 언니를 돌봐온 대구의 20대 여성이 '지쳤다'며 목숨을 끊었다.

이들도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난해 여름 서울 금천구 시흥동 주민센터 김아무개 주무관은 동네주민에게 어렵게 사는 세 모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사회복지공무원(복지플래너)과 함께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세 모녀의 반지하방은 월세가 10개월 이상 밀려있었고 가전제품과 가구가 전혀 없었다. 특히 방 안에는 바퀴벌레가 가득할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김 주무관은 인근 여관에 이들의 임시거처를 마련해주고 지역내 직능단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과 함께 성금을 모으는 한편 서울형 긴급생계비와 합쳐 월세 보증금을 마련해줬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이들도 만약 제때 발견되고 긴급 처방이 제공되지 않았다면 어찌됐을까 아찔하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어떻게 이들의 사연을 접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었을까.

서울 한 동주민센터의 복지플래너가 만65세 도래 어르신을 방문하기 위해 집 주소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 한 동주민센터의 복지플래너가 만65세 도래 어르신을 방문하기 위해 집 주소를 확인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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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복지'로

서울시는 2015년 7월부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송파세모녀처럼 복지사각지대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을 사람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황금용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추진지원단 단장은 "사실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송파세모녀사건으로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이전부터 있어왔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복지전달체계 개편에 대한 화두가 던져졌지만 그때뿐이었으나 이번엔 지자체인 서울시가 작심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서울시의 처방은 두 갈래다. 우선 태부족인 사회복지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 공무원을 대폭 확충하는 것.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좀 더 꼼꼼하게 묶어주기 위해 주민관계망을 복구하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대민 업무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공무원은 현재 동마다 2-3명 정도. 이 인원으로 쏟아지는 복지 업무를 대처할 수 없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미옥 서울시 자치행정과 동혁신팀장은 "서울시의 사회복지통합관리망(2013년)에 잡힌 복지대상자는 3년간 73%가 증가했는데, 복지담당 공무원은 겨우 18% 증가에 그쳤다"며 "모든 업무가 동으로 몰리는데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복지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같은 '복지깔때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동별로 평균 5-6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서울시는 작년에 사회복지담당공무원 500명과 방문간호사 106명 등 606명의 사회복지인력을 충원했다. 오는 2017년까지는 모두 2450명을 뽑아 서울시내 424개 전체 동에 각 5-6명의 사회복지공무원(복지플래너)을 추가배치하고, 방문간호사도 최소 1명을 둔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충원된 인력으로 '복지플래너' 1명과 '방문간호사' 1명이 2인1조가 되어 동네 곳곳의 복지사각지대를 돌아다니며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낸다.

방문간호사들이 동네 어르신들을 방문해 건강을 체크해드리고 있다.
 방문간호사들이 동네 어르신들을 방문해 건강을 체크해드리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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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누구를 찾아다니나

그럼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과연 누굴 찾아 나서는 걸까. 사업이 가장 주목하는 사람들은 '만65세 도래 어르신'. '출산가정', '빈곤위기가정' 등이다.

만65세는 인생사이클로 볼 때 노인이 되는 나이다. 신체 건강하고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보편적 복지 관점에서 연금, 교통카드, 건강체크 등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복지제도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

'출산가정'도 마찬가지다. 보건소 등 국가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 안타까운 가정이 아직 많다. 모든 면에서 복지의 손길이 필요한 '빈곤위기가정'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타나는' 홍반장처럼 무조건 환영받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직 건강한데 세금 걷어 쓸데 없는 짓 한다는 어르신도 많고, 바깥 사람을 안으로 들이기 꺼려하는 출산가정도 있다. 물론 "이제야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복지를 하는구나"하는 어르신도 있지만 방문 성사율이 아직도 60-70% 수준에 그친다.

때문에 미리 가정 사정을 잘 아는 통장을 통하거나 출산한 아기에 대한 정보가 많은 보건소 간호사가 동행하는 것은 필수. 방문이 한 번 성사되는데 대여섯 번 이상 시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꾸 거부하면 솔직히 계속 방문을 시도하기 귀찮아지지 않을까? 황 단장은 "일반인들과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사고가 다른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거부하고 욕하다가도 서비스를 한 번 받고 만족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맛에 취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일이 많아서 가보지 못하면 너무나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복지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주말이면 '독산극장'으로 변해 각종 공연이나 영화상영이 펼쳐지는 금천구 독산3동 주민센터.
 주말이면 '독산극장'으로 변해 각종 공연이나 영화상영이 펼쳐지는 금천구 독산3동 주민센터.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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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학3동 주민센터 '활력소'는 야간에 주민들을 위한 라운지로 변신한다.
 서울 방학3동 주민센터 '활력소'는 야간에 주민들을 위한 라운지로 변신한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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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다고 끝 아냐, 관계 형성해 지속해나가야

서울시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이 성공하려면 복지사각지대를 찾아내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찾아냈으면 해결책을 내야 하고 지속가능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게 주민간의 '관계망 형성'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찾아낸 사람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일쑤지만, 끈끈한 정으로 뭉친 마을은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준다.

성북구 장위1동에 홀로 사는 김아무개 할아버지(75)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할아버지는 쓰레기와 악취가 가득한 한 식당 건물 마룻바닥에서 생활했다. 식사를 제대로 못해 대상포진이나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친구는 키우는 개 한 마리. 동주민센터는 그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나 후원품보다 따뜻한 돌봄의 손길이라고 보고 '이웃'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직원들이 노력한 결과, 길 건너 이용원은 수시로 안부를 확인해주기로 약속했고, 분식집은 반찬배달, 봉사단체에서는 대청소와 이불교체, 병원 동행을 책임지기로 했다. 할아버지를 향한 손길은 동 전체로 번져나가 순식간에 20여 곳이 돕기에 나섰다. 실의에 빠졌던 할아버지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은 물론이다.

서울시는 '찾아가는' 것만큼 '찾아오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고 주민센터를 개선해 커피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주말에는 영화상영, 음악회도 여는 등 동네 사랑방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구별 한 동은 주민들이 설계부터 관리까지 직접 하는 공간 '활력소'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유미옥 팀장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 사회에서 뭔가 할 수 있고 쓸모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는 것"이라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을 통해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그:#송파세모녀, #찾동, #금천세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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