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고심 끝에 해체 (패러디 사진) 건국대학교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고심 끝에 해체 (패러디 사진) 건국대학교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이찬우

관련사진보기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해결책은? 수학여행을 없앤다. 그 와중에 해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무능을 증명했다. 해결책은? 해경을 폐지한다.

한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아래 OT) 행사가 열리던 리조트가 붕괴됐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학 학생회가 OT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경주 리조트 참사 정부 대책, 어이없다)

국방부에 부대 내에서 종일 게임 TV만 틀어놓는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역시 해결책은 군대 내에서 게임 채널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며, 보름 만에 차단 조치가 풀렸다).

보아라. 이렇게 한국식 문제 해결은 늘 언제나 근본주의적이다. 근본을 찾아 뿌리를 뽑는다. 아 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만세! 그런데 문제는, 늘 그 근본에 대한 핀트가 조금씩 엇나가 있다는 점이다.

언제나 쉬운 길을 택한다. 사건이 발생할 공간 자체를 폐쇄해, 문제가 발생할 여지 자체를 없애버린다. 공간만 없고, 사람은 그대로다.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팽배하다.

너무나 한국적인 '건국대의 대처'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곳은, 건국대의 신입생 OT였다. 한 신입생은 익명으로 올릴 수 있는 '건국대학교 대나무숲'에 글을 올려 OT에서 벌어진 '25금 몸으로 말해요' 게임 등의 문제를 폭로했다. 제시어로 유사성행위를 뜻하는 말 등이 나왔고, 그것을 선배가 몸으로 표현하면 후배가 그것을 맞추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이어 문제가 된 것은 '방팅'이었다. 처음 보는 남성과 포옹하고, 그의 무릎에 앉게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리고 남성들은 방을 돌았다. 여성들은 남성들을 맞아야 했다. 피해자는 해당 글에서 자신이 장난감처럼 느껴졌다고 심경을 밝혔다.

 성희롱 문제가 제기된 OT 프로그램 관련, 건국대학교 '대나무 숲' 페이지 게시글.
 성희롱 문제가 제기된 OT 프로그램 관련, 건국대학교 '대나무 숲' 페이지 게시글.
ⓒ 건국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관련사진보기


명백한 성폭력이었다. 필요한 조치는 징계 그리고 교육이었다. 학교 안의 성인지적 감수성이 부족하고, 학생사회 내 성폭력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모자란 것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런데 학교는, OT와 MT를 없앴다. 아주 한국적으로다가.

건국대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통해, "본교 생명환경과학대학 신입생 수련회 중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로 실망을 끼쳐드려 깊이 사죄드린다"며 "학생회 주관 신입생 교외 OT를 전면 폐지"할 뿐 아니라, "학과 단위 모든 교외 MT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없앰으로, 해경을 해체함으로 앞으로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똑같은 질문이다. MT와 OT를 없앴으니, 이제 술자리에서의, 대학 내에서의 성폭력적 문화가 사라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

해결책은 명백하다. 다른 의미로, 근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수학여행을 가다 사고가 났다면 수학여행이 아니라 사고를 없애야 한다. 해경이 무능했다면 해경이 아니라 무능을 없애야 한다. 학교 행사 중 건물이 붕괴되면 행사를 없앨게 아니라 건물이 붕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OT에서 성폭력이 일어났다면 OT가 아니라 성폭력을 없애야 한다. OT를 없앤다면, 성폭력은 OT가 아닌 다른 곳에서 똑같은 얼굴을 하고 다시 나타날 뿐이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방법이다. OT와 MT를 없애는 일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더디게, 서로 충돌하고, 또 부딪히면서 만들어진다. 앞서 말했듯, 여기에는 성인지적 감수성, 또 성폭력에 대한 오랜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장미칼 무 썰 듯'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문화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만들어 줄 수 없는 것이다. 학생회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학생들의 자치권을 빼앗음이 아니라, 자치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지원하며 또 기다릴 때에 학내 성폭력은 조금씩, 또 천천히 사라질 것이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