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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 알바 알토>(시공문화사)라는 흥미로운 신간을 만났다. 일반적인 여행기와 달랐다. 책장마다 맛집 사진이나 '인증샷' 대신 점과 선이 어우러져 있었다. 건축 스케치가 담긴 여행기였다.

ⓒ 시공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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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 박희찬(영국건축사, 영국왕립건축사협회 정회원)이 핀란드의 건축 거장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1976)의 건축과 디자인을 글과 스케치로 정성스럽게 기록한 것이다.

영국 건축 유학 도중 받게 된 장학금으로 핀란드를 여행한 뒤 쓴 여행보고서라고 한다.

그런데 왜 스케치일까. 책 속 저자는 아래와 같이 답한다.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들이 저 자신의 감성의 틀로 해석되기를 바랐습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면서 긴 여운을 가지고 내가 경험한 알바 알토의 건축을 스케치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이 아닌 드로잉은 더 섬세하게 내가 본 장소와 공간을 관찰하게 만들어 주었고, 내가 경험한 공간을 어떻게 점과 선으로 표현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본문 중에서)

알토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알토의 건축은 그 중에서도 도드라진다. 기능에 중점을 둔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자연 환경과 함께 호흡하는 '유기적인 모더니즘'이 바로 알토의 건축 정신인 것이다. 이런 알토의 건축을 기록하는 일에는 '기능적인' 사진보다 점과 선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는 스케치가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은 건축가의 야망과는 다르게 반세기도 지나기 전에 도시의 흉물이 되어버린 예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알토의 건축은 놀랍게도 거의 모든 건물들이 21세기인 지금도 잘 유지되고 핀란드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용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행의 시작점은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아카데믹 서점'.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와 미도리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자연광이 쏟아지는 비정형 수정 형태의 천장이 인상적이다. 그 천장과 도서관 내부 구조를 점과 선의 스케치로 구현해낸 저자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놀랍다. 알토의 건축물과 발자취가 마치 가상현실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저자의 여정은 '알토 하우스'와 '핀란드 국민 연금 센터'(KELA)를 거쳐 헬싱키 교외 지역의 '삼 십자가 교회'와 '알토 대학'으로 이어졌다.

여정마다 새로워지는 건축 스케치를 음미하는 것만큼 건축 관련 지식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웠다. 저자가 쉽게 풀어주기 때문에 건축학도가 아닌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았다.

"현대 건축은 원하는 형태를 얻기 위해 수학적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해 형태를 만들어내고 재생산해 낼 수 있는 '파라메트릭 디자인' 방법을 폭넓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도움을 얻을 수 없었던 시대에 알토는 어떻게 이런 복잡하고 유기적인 형태와 공간을 창조해 낼 수 있었는지 놀라웠습니다."(본문 중에서)

또한 '알토의 초대를 받아 알토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는 문학적 상상과 '시민 복지 사회를 향한 국가의 비전'을 꿈꾸었던 알토의 건축 철학을 설명하는 부분도 눈길을 끌었다.

"알바 알토의 초대로 하룻밤을 '알토 하우스'에서 머물게 되는 상상과 함께 그의 집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왠지 40대 중반의 알토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건축을 한창 열어나가는 혈기왕성한 건축가, 한 가정의 가장인 알토가 20번지 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본문 중에서)

"공공건축이 어떻게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영감을 주는지, 어떻게 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아이콘이 될 수 있는지를 알토의 KELA가 증명하고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여행을 마친 저자는 "이번 스케치 여행을 통해 알바 알토 건축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카메라가 아닌 펜으로, 사진이 아닌 점과 선으로 영원한 아름다움을 얻다니!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아니라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와 시각으로 해석해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알토의 건축은 건축적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했다"며 "건축적 실험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밝힌 저자. 그가 어떤 건축적 실험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스케치 여행을 보여줄지도.

덧붙이는 글 | <여행의 기록, 알바 알토>(박희찬 씀 / 스페이스타임 / 8000원 / 2016년 2월 2일)



여행의 기록, 알바 알토 - Aalto, Architecture & my travels

박희찬 글.그림,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2016)


태그:#박희찬, #알바 알토, #핀란드,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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