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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이 마취사고로 사망을 했습니다. 민사소송 1심에서 이긴 상태입니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본의 아니게 의료 관련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사건 이후로 뭘 할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하기도 했고요."

"아버님 아픔이 전해져 옵니다. 저도 사실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만 끝까지 소송을 하지 못했어요. 1심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고요. 지치지 마시라는 말씀과 응원하는 마음 전합니다."

환자와 의사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행복한 진료실'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모였는데 뜻밖에도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환자와 의사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제6회 환자권리교실 '토마토' 현장에서다.

3분 진료, 진료받은 건지 안 받은 건지...

2월 27일, 강남역 인근 카페 무라노에서 정영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정혜진 제너럴닥터 의료생활협동조합 의원,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일반 시민 6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여섯 번째 환자권리교실 '토마토'가 열렸다. 의사 및 의료 전문가, 의료 소비자인 일반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모두가 '행복한 진료실'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자는 취지다.

 2월 27일, 강남역 인근 카페 무라노에서 김형기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제6회 환자권리교실 '토크로 마주하는 환자권리 토크'가 열렸다.
 2월 27일, 강남역 인근 카페 무라노에서 김형기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제6회 환자권리교실 '토크로 마주하는 환자권리 토크'가 열렸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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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을 맡은 김형기 아나운서는 먼저 '최소한의 진료 시간이 정해져 있다'라는 질문의 OX 퀴즈를 냈다. 대부분의 참석자는 X를 들었지만 예약받는 시간 간격을 고려해 15분 정도의 시간이 정해져 있을 거라는 대답도 있었다. 정답은 X. 환자들은 의사와 만나는 시간이 대체로 너무 짧다고 여기고 있다는 데에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마포구 연남동 소재 제너럴닥터 의원에서 근무하는 정혜진 원장은 생활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의료기관의 경우를 이야기했다.

"저희 병원에서는 한 환자당 15분 정도로 시간을 정해두고 있어요. 환자 상태에 따라 30분 정도로 잡기도 해요. 처음에 제너럴닥터 의원을 할 때는 한 분이랑 두 시간을 한 적도 있어요. 저희는 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의원이라 환자 개인에 대한 체계적이고 개별적인 관리가 가능하거든요. 대학병원 시스템 내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죠. 사실 의사도 환자들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답니다."

정영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진료 시간이 짧은 것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리적인 시간 15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어떤 환자가 감기로 병원을 찾았다고 해 봅시다. 환자는 감기약 처방만 얼른 받아서 가면 좋겠는데 의사가 15분 진료 시간 채운답시고 쓸데없는 얘기나 한다고 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그 15분이 오히려 불편한 시간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 문화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ㅇㅇㅇ 이다"

환자들은 의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참석자들에게 '의사는 ㅇㅇㅇ 이다'라는 주제를 내자 정형화된 의사의 이미지가 눈에 그려지듯 보였다.

"할아버지가 암 환자셨어요. 담당의사가 환자나 저희 가족들을 대할 때 좀 냉정하고 딱딱하게 대하곤 했어요. '냉철한 엘리트.' 제가 의사를 보는 시선이 딱 그래요. 사실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냉정하게 대하는 태도에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정영진 공동대표는 드라마에서 종종 보게 되는 의사의 모습과 실제 의료현장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무리 헌신적인 의사라 해도 환자를 위해 모든 걸 다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드라마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병원 내에도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고 그 시스템 내에서 여러 사람이 협동해 환자를 돌보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의사는 시스템 내에서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존재다.

의대 시절부터 감정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엔 가족이나 지인의 치료를 맡지 말라는 얘기도 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감정에 휘말려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나쁜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정영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공동대표는 드라마 속 의사의 모습과 실제 의사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며 아무리 헌신적인 의사라 해도 환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영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공동대표는 드라마 속 의사의 모습과 실제 의사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며 아무리 헌신적인 의사라 해도 환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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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감정적으로 흔들려서는 안 되는 현실을 존중한다면서도 진료실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에는 주치의 제도가 있습니다. 우리도 주치의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최근 논의를 많이 하는데 저희 환자단체에서는 '동네 단골의원'을 하나씩 정해서 이용하도록 권장합니다. 의사 분들 중에는 지금도 환자들한테 개인 연락처를 공개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환자들이 야간이나 주말에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전화를 하고 의사가 간단하게 답변을 하도록 비상연락처를 알려주는 '단골의원'을 이미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죠. 그런 분들은 냉철한 엘리트나 냉정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없겠죠. 환자를 진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불통'에서 '소통'으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날 시민 참가자들은 '최소한의 진료시간이 있다', '7시 이후에 내원하면 야간할증 진료비가 청구된다' 등 OX 퀴즈를 통해 의료관련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시민 참가자들은 '최소한의 진료시간이 있다', '7시 이후에 내원하면 야간할증 진료비가 청구된다' 등 OX 퀴즈를 통해 의료관련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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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마토'를 관통하는 주제는 의사와 환자 간의 '불통'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의료 소비자인 참석자들은 대체로 의사가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길 바란다. 진료를 할 때에는 모니터만 쳐다보지 말고 환자의 눈을 쳐다보면서 설명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혜진 의사에 따르면 진료실에서의 원활한 소통 문제는 의료인들의 '숙제'다.

"최근에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는 고객 서비스 개념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어요. 굉장히 연구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해서 '병원이 이렇게 친절했나!' 하며 환자들이 놀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고 봐야죠. 의사들의 용어와 환자들의 용어가 달라서 100%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는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의대에서 '환자와 의사'라는 과목으로 진료실에서의 소통 문제에 대해 강의를 개설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전에도 '의료윤리학' 같은 과목이 있긴 했지만 1학점 과목이라 의대생들이 거의 신경을 안 쓰는 과목이었던 것에 비하면 반가운 변화다. 의사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연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과거에는 의사가 아버지 역할을 했던 가부장적인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의사를 에이전시 역할로 설명하는 추세다.

변화의 싹이 트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의료 환경은 지금과는 조금 다를 것도 같다. 어쩌면 환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의사와 환자가 더 자주 만나서 서로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다음 환자권리교실 '토마토'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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