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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차인 안산에서의 하루는 길고 아팠다. 세월호 가족들도 도보순례에 많이 참석한 가운데 걷는 일정이 끝나고 중앙역 앞에서 난장문화제를 안산시민들과 함께 했다. '기억저장소'에 방문해서 아이들의 흔적을 가슴에 담았고 추모의 의미도 되새겨 보았다. 분향소에도 들르고 세월호 가족들과의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자리를 일어나려는데 우연히 보고 듣게 된 장면. 밤새 손수 만들었노라며 세월호 가족이 백도라지씨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었다. 분향소의 수많은 이름들과 수많은 얼굴들을 보며 어찌할 수 없는 고통에 무너졌는데, 바로 눈앞의 장면에서 뭐라 말 할 수 없는 비통함에 또 눈물이 쏟아졌다. 국가폭력으로 생활이, 삶이 쑥대밭이 된 사람들이 겨우 일어나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어찌 바라봐야 할까.

이제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 폭력 앞에 안전장치 하나 없이 노출되어 버리고 말았다. 비정상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정상적인 마음을 갖고 살려고 저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앙 다문 입술 '내가 밤새 만든 목걸이야...' 눈물을 참는 듯한 백도라지 씨의 앙 다문 입술이 안쓰럽다.
▲ 앙 다문 입술 '내가 밤새 만든 목걸이야...' 눈물을 참는 듯한 백도라지 씨의 앙 다문 입술이 안쓰럽다.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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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에서 발걸음을 뗀 지 17일 만인 2월 27일, 도보순례단은 서울에 도착했다. 남태령고개에 걸린 '서울특별시' 표지판 다섯 글자가 정말이지 '특별'해 보였다. 서울을 매일 오가지만 '서울'이란 존재가 그렇게 특별해 보이긴 처음이었고 그것이 울컥함으로 안겨오기도 처음이었다. 마중 나온 사람들이 현수막으로, 피켓으로 반겨준다. 드디어 오늘, 서울이구나!

서울특별시 보성을 출발한 지 17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환영 나온 서울시민들이 상기된 얼굴로 맞아주었다.
▲ 서울특별시 보성을 출발한 지 17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환영 나온 서울시민들이 상기된 얼굴로 맞아주었다.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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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순례단에 참가하기 위해 2월 10일 저녁 용인에서 광주를 거쳐 보성까지 내려가는 길은 저녁 먹고 버스 갈아타기 위해 기다린 시간까지 해서 6시간이 걸렸다. 차를 타고 내려갈 때 여섯 시간, 걸어서 올라올 땐 17일이 걸린 것이다.

새벽밥 지어 먹고 보성에서 서울까지 아마도 6시간이면 도착했을 것이다. 걸어도 17일이면 서울에서 보성까지 닿을 수 있는 길이건만, 백남기 농민은 100일이 훨씬 넘게 서울에서 보성을 가기 위한 한 걸음조차 아직 떼지 못하고 계시다. 그러니 우리의 17일은 얼마나 가볍고 짧은 기간인가. 그러니 백남기 농민의 100일은 얼마나 무겁고 긴 걸음인가.

함께 걷다 백남기 농민과 함께 걷는 도보순례단
▲ 함께 걷다 백남기 농민과 함께 걷는 도보순례단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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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저 폭력정권이 발목 잡고 놓아주지 않는 100일이었다. 테러집단 버금가는 폭력정권의 사죄를 받아내고 기적처럼 그분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보성-서울을 몇 번이고 더 오갈 수 있으련만.

백남기 농민의 모교인 중앙대에서 한강도하를 재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엄청나게 길어진 행렬과 몇 배로 많아진 깃발을 보며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보셨더라면 그 순박한 웃음으로 꽹과리 두드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을 텐데 싶었다.

행렬의 앞뒤로, 도로가 난간으로 뛰고 오르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긴 행렬의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찍으며 나중에 이 장면을 꼭 보여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사람들, 푸른 들판 같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 생명의 밀밭이 되어 푸른 내음 가득 품고, 민주화를 꿈꾸며 한강을 건넜던 그를 기리며 그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으로 '백남기 선배'에게 가고 있었다.

끝도 없이 긴 행렬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폭력규탄, 책임자처벌과 민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도보순례단이 한강을 건너기 위해 중앙대를 출발, 흑석동을 지나고 있다.
▲ 끝도 없이 긴 행렬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폭력규탄, 책임자처벌과 민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도보순례단이 한강을 건너기 위해 중앙대를 출발, 흑석동을 지나고 있다.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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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도하 수 많은 '백남기 농민'들이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다.
▲ 한강도하 수 많은 '백남기 농민'들이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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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을 지나면서 보니 장성의 눈보라 길에서 인터뷰했던 공무원노조원이 생각났다. 5000 대오가 모여 서울역에서 사전집회를 가질 거라고 했었다. 거기 있었다! 저 수많은 깃발을 이제 곧 서울광장에서 만나겠구나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무원노조 사전집회 도보순례단이 서울역 광장을 지날 때 공무원노조는 사전집회를 갖고 있었다. 이후 시청광장으로 합류했다.
▲ 공무원노조 사전집회 도보순례단이 서울역 광장을 지날 때 공무원노조는 사전집회를 갖고 있었다. 이후 시청광장으로 합류했다.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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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에 들어서니 수많은 총궐기 참가자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풍물패를 앞세운 도보순례단 긴 행렬을 맞아주는 함성과 박수와 깃발들! 잠시 내린 눈비로 질척대는 땅에 푸른 밀밭이 펼쳐진 듯 일시에 연두색이 광장에 들어찼다.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학생, 시민들이 모두 모인 이름 그대로 '민중총궐기'였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는 '백남기'였다.

4차 민중총궐기 도보순례단을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상태에서 바라본 서울광장의 4차 민중총궐기 참가자들
▲ 4차 민중총궐기 도보순례단을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상태에서 바라본 서울광장의 4차 민중총궐기 참가자들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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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순례를 마무리한 지 이틀이 지났다. 아직도 귓가에는 방송차량에서 흘러나왔던 호소문과 노래들이 맴돌아서 맘이 쓰리기도 하고 노래 구절을 흥얼거리기도 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올라갔던 육교에서 내려다본, 일정하게 흔들리며 걷던 연두색 몸자보의 순례단과 깃발의 일렁거림이 아련하게 잔상으로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들판의 새싹들 같다고 느꼈던 모습.

가자, 민중총궐기 민중총궐기를 향해 가는 푸른 사람들
▲ 가자, 민중총궐기 민중총궐기를 향해 가는 푸른 사람들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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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던 사람들 얼굴도 떠오른다. 합천에서 왔던 세 아이들 몸살 나지는 않았을까, 짐을 잔뜩 챙겨왔던 청년은 무거운 짐 들고 집으로 잘 갔을까, 최고령 최종대 어르신은 푹 쉬고 계실까, 막걸리 한 잔에 얼굴 빨개지던 올해 대학 새내기 된다는 명랑소녀, 아내가 보내온 아빠 보고 싶어 우는 아들 사진에 마음 아프다던 청년 농부, 도보순례단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 최고의 성과라고 한 사람들...

웃으며 가는 길 힘들어도 서로 의지하며 웃으며 걷는 길
▲ 웃으며 가는 길 힘들어도 서로 의지하며 웃으며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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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선전전 도보순례단은 시내를 지날 때 지역민들에게 유인물로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폭력을 알렸다.
▲ 도심 선전전 도보순례단은 시내를 지날 때 지역민들에게 유인물로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폭력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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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명이 400km, 2억4천만 보를 걸었던 16박 17일 도보순례의 일정은 끝이 났다. 회색의 도시를 푸르게 물들였던 사람들, 쓰러져 누운 백남기 농민에게 밀밭이 되어 생명을 전하고자 했던 사람들, 국가폭력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온 힘 다해 걸었던 사람들.

그들은 이제 가슴에 씨앗 하나를 품고 각자의 자리에서 또 새로운 밀밭을 일굴 것이다. 그들이 일군 밀밭이 번지고 번져 대한민국 전부 푸르게 될 때까지, 다시는 국가폭력이 사람을 죽이지 못하도록, 민주주의를 해치지 못하도록 싸워나갈 것이다.

백남기를 살려내라 백남기 농민은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져 3월 1일인 오늘, 109일째 서울대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경찰이, 국가가 국민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 백남기를 살려내라 백남기 농민은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져 3월 1일인 오늘, 109일째 서울대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경찰이, 국가가 국민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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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들었던 구호를 다시금 가슴에 되새겨 본다.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
"우리가 백남기 농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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