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13시간>을 들고 관객을 찾아온 마이클 베이

신작 <13시간>을 들고 관객을 찾아온 마이클 베이 ⓒ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아마겟돈>, <아일랜드>, <트랜스포머> 등을 연출한 마이클 베이는 군인을 아주 좋아한다. 그의 작품엔 빠짐없이 군인이 등장해 영웅적 활약을 펼친다. <트랜스포머>에서 레녹스 대위 역을 맡은 조쉬 더하멜은 촬영에 앞서 군부대에서 기초 훈련을 받기도 했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군 당국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미 국방부는 1920년대부터 전쟁을 긍정적으로 그린 영화에 대해 인력과 자문을 제공해왔다. 그러다 베트남전을 치르면서 지원을 끊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란시스 F.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었다. 코폴라는 이 영화를 통해 미군의 광기를 실감나게 묘사했고, 국방부는 이를 불편하게 여겼다. 베트남전 이후 육-해-공 각 군 별로 아예 LA에 사무실을 내고 영화 제작 전반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베이는 이런 시스템의 수혜자 가운데 한 명이다. 마이클 베이의 2001년 작 <진주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자.

"<진주만>은 2001년 5월21일 원자력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 호의 비행갑판 위에서 특별 상영을 하는 식으로 개봉됐다. (중략) 해군과 디즈니사는 2500여 명의 손님을 이 특별 상영에 초대했다. 협력 명단에 나오는 것처럼 많은 미군 지휘관들이 영화 제작에 협조했고, 그 대가로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군을 우호적으로 그리도록 하고 군 복무가 로맨틱 하고 애국적이고 재미있다는 식의 생각이 들도록 했다." - 찰머스 존슨, <제국의 슬픔> 중에서

마이클 베이의 신작 <13시간>에서는 정규군이 아닌 이들에 주목한다. 그가 밝힌 연출의 변이다.

"다양한 군인들의 모습이 담긴 작품을 해오며 수 년 동안 특수부대, 특수 공작대라 불리는 이들과 작업을 했었다. 덕분에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도움을 받아왔다. 이번 <13시간>은 그들의 모습을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내면에 담겨 있는 감정적인 이야기까지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마이클 베이의 주특기

 마이클 베이 신작 <13시간>

마이클 베이 신작 <13시간> ⓒ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2012년 9월11일 리비아 벵가지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렸다. 당시 리비아는 '아랍의 봄' 영향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뒤이은 권력 공백으로 혼란한 와중이었다. 리비아 민병대는 미국에겐 상징성이 큰 날인 9월 11일, 벵가지의 미 영사관과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기지를 급습한다. 이 사건으로 당시 미국 대사였던 크리스 스티븐슨과 두 명의 요원이 죽음을 당했다.

영화는 마이클 베이 버전의 <블랙 호크 다운>이라 할 만하다. 다른 점이라면 <13시간>의 주인공은 비정규군, 즉 용병들이었다는 것이다. 미 영사관이 민병대에 습격을 당하자 경비 업무를 수행하던 여섯 명의 용병들은 현장에 출동한다. 당시는 지도부가 붕괴한 상황이라 피아 식별이 어려워 이들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정규군도 아니었기에 보상받을 길마저 막막하다. 그러나 이들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미 영사관과 CIA 비밀기지를 지켜낸다.

영화엔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는다. 연출자인 마이클 베이는 여섯 용병의 처지를 보다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배우를 기용했다. 게다가 영화 중간, 이들이 정식 CIA 직원이나 다른 정부 요원들에 의해 홀대 당하는 장면도 간간이 보여준다. 이런 장치들은 용병들의 활약을 더욱 영웅적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마이클 베이 특유의 현란한 액션도 볼만하다.

문제는 근본적인 질문이 빠진데 있다. 왜 리비아의 민병대들이 미 영사관으로 돌진했을까? 그냥 미국이 싫어서? 그럴 수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집권 시절 미국과 리비아는 적대관계였다. 그러나 카다피는 말년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려고 했다. 2002년 카다피는 1988년 발생한 미국 팬암 항공기 103편 폭파사고에 리비아가 개입했음을 공식 인정했고 2003년엔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미국은 2004년 대 리비아 무역금지조치를 철회했다. 이런 의문도 든다. 카다피 체제 붕괴 이후 창궐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9.11테러 기념일에 맞춰 미국을 조롱하려고? 역시 이유일 수 있지만 동기로 보기엔 여전히 미흡하다.

이슬람은 왜 미국 대사관을 공격했나

사건의 발단은 13분 분량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부터였다. 이 영상은 샘 바실이란 미국계 유대인이 500만 달러의 기금을 모아 제작한 영화 <순진한 이슬람>(원제: Innoncence of Muslim)의 예고편이었다.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도인 이집트인 의사의 집을 약탈,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이 예고편 영상은 벵가지 습격사건이 벌어지기 두 달 전인 2012년 7월1일 '무함마드의 실제 삶'(The Real Life of Muhammad)이란 제목으로 유투브에 올라왔다. 예고편 영상에서 이슬람교도들은 살인, 방화를 일삼는 불한당으로 그려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영상은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점쟁이, 동성애자, 광대, 바람둥이, 아동 성애자 등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칠한다.

이 영상은 아랍권의 공분을 샀다. 무슬림은 무함마드에 대한 그 어떤 형상화도 금기시한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이 영상을 이슬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그 즈음 리비아와 이집트는 정정이 불안했다. 가뜩이나 국내 상황이 불안한 와중에 이슬람을 비하하는 동영상이 유포됐으니 리비아에서 벌어진 영사관 습격사건은 예측 가능했던 수순인 셈이었다.

마이클 베이는 벵가지 사건에 숨겨진 본질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보다 미국을 건드리면 '개죽음' 당한다는 엄포를 놓는다. 여기에 한 발짝 더 나아가 아무 거리낌 없이 리비아에 실패한 국가란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기치 않게 미국 군사전략의 허점을 드러낸다. 영화에서 미 영사관과 CIA비밀기지가 어려움을 당하지만 지원 병력은 감감 무소식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CIA정규직 직원들은 벵가지와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에 간절하게 도움을 호소하나 끝내 무위에 그친다.

그래도 미국이 낫다?

 무슬림의 공분 산 '무함마드의 실제 삶' 동영상 중 한 장면.

무슬림의 공분 산 '무함마드의 실제 삶' 동영상 중 한 장면. ⓒ 유투브 화면 갈무리


실제 미국은 세계 도처에 군사기지를 운영 중이다. 주둔지는 다르지만 명분은 늘 똑같다. 미국의 군사안보와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다. 그러나 해외 기지가 주둔 미군의 놀이터 역할만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벵가지 사건은 이 같은 지적이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딱 한 가지는 칭찬해주고 싶다. 여섯 용병은 13시간의 사투 끝에 CIA비밀기지를 지켜낸다. 이들 중 타이론 우즈와 글렌 도허티는 교전 중 사망했다. CIA는 사망한 두 명과 나머지 네 명에 대해 비공개로 훈장을 수여했다. 버지니아 랭리 본부 입구에 희생된 두 사람을 기억하는 별을 새겨주기도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세월호 민간 잠수사를 떠올렸다. 이들은 국가를 대신해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했다. 그러나 국가는 이들을 쓰다 만 일회용품처럼 취급했다. 그나마 미국이 좀 나아 보인다.

13시간 마이클 베이 블랙 호크 다운 벵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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