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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최고위원들을 비롯한 의원들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야당의 무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테러방지법도 못 만드는 국회'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새누리 "테러방지법도 못 만드는 국회" 피케팅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최고위원들을 비롯한 의원들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야당의 무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테러방지법도 못 만드는 국회'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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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탈이 났다.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변협)가 지난 24일 국회에 제출한 테러방지법 찬성 검토의견서에 대한 '주문생산' 및 '날림 작성'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변협은 해당 검토의견서에서 "9.11테러 이후 OECD 국가 대부분이 테러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했는데도 우리나라는 국가 대테러활동 수행에 기본이 되는 법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찬성했다.

특히 인권침해 우려를 받고 있는 테러위험인물 등에 대한 국정원의 정보수집권 부여 문제에 대해서도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의 테러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테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보취합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면 (해당 권한들이) 과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여당의 테러방지법 제정 주장에 힘을 크게 싣는 자료였다. 무엇보다 지난 2002, 2003년 두 번에 걸쳐 국가정보원이 발의했던 테러방지법에 대해 반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변협이 태도를 180도 바꾼 점이 주목 받았다.

새누리당도 이를 적극 활용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5일 "대한변협에 공식의견을 요청했다, 전부 찬성이다, 대한변협은 우리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단체 중에 하나 아니냐"라고 강조했다. 

변협 회원들 "검토서 작성한 일부 집행부, 특정정당 법률자문위원으로 전락했나"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변협)가 지난 24일 국회로 제출한 테러방지법 찬성 검토의견서에 대한 '주문생산'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변협에서 제출한 찬성 검토의견서 일부.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변협)가 지난 24일 국회로 제출한 테러방지법 찬성 검토의견서에 대한 '주문생산'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변협에서 제출한 찬성 검토의견서 일부.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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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즉각 내부 반발에 직면했다. 당장 변협 산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는 26일 결의문을 내고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입장을 밝혔다. 변협 임원진의 찬성 검토의견서를 정면 부인한 셈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는 26일 "(테러방지법은) 헌법상 기본권과 헌법과 법률이 정한 영장주의, 죄형법정주의, 적법절차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높다"라며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국정원은 초헌법적 정보수집권한을 가지게 된다"라고 비판했다.

또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는 이 테러방지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공식적으로 이 법률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국회에 제출해줄 것을 건의하기로 결의한다"라고 밝혔다.

경남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42명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변협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인권을 수호하는 전문가 직역단체"라며 "변협 협회장과 몇몇 집행부가 이번 의견서를 새누리당에 전달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에 관한 국민적 신뢰가 훼손된 것에 대해 유감과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하창우 변협회장을 비롯한 일부 임원들이 제대로 된 공식절차 없이 내부협의를 거쳐 찬성 검토의견서를 제출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당장 새누리당의 주문에 따라 생산된 검토의견서가 아니냐는 의혹이다.

변협 산하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조영관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새누리당이 제출한 테러방지법 제정안이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이란 협회의 설립목적에 비추어 협회가 의견을 발표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냐"라고 물었다. 즉, 협회의 설립목적에 비춰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 각종 법령의 제정 및 개폐 등에 대해 의견을 발표하거나 건의할 수 있도록 돼 있는 회칙에 따른 검토의견서 제출이 맞느냐는 질의였다.

조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협회장님께서 협회 이사회를 소집한 사정이 있나, 그랬다면 회의록을 공개하여 주십시오"라면서 "소집되지 않았다면 도대체 검토의견서는 어떠한 논의 및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서 발표된 것인지 설명하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대한변협 소속 회원이면서 공익인권 옹호 활동을 하고 있는 변호사 59인도 따로 성명서를 내고 "변협은 일부 집행부가 변협 '명의'를 이용해 특정정당 주문제작형 의견서를 발표한 것에 대해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변협 일부 집행부는 회칙에 규정된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테러방지법에 대해 찬성하는 변협 '명의' 의견서를 작성·제출했다"라며 "테러방지법에 대한 이사회는 개최된 바 없으며 지난 22일 개최된 상임이사회에서도 테러방지법안을 논의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 "대다수 변호사(변협 회원)들이 언론을 통해 의견서 제출 소식을 접하고 의견서 작성까지 어떠한 절차를 거쳤는지,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변협에 연락했으나 일부 집행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라고도 밝혔다.

무엇보다 이들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의 요구를 받고 새누리당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의견서를 낸 것은 변협 일부 집행부가 특정정당의 법률자문위원으로 전락했음을 자인한 것일 수 있다"라면서 "해당 의견서가 공식 입장이 아님을 즉각 확인하고 경위를 소상히 밝히는 한편, 책임 있는 관련 집행부의 공개사과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날 공문을 통해 ▲ 테러방지법 법률의견서 제출 요구 수령 경위 ▲ 의견서 작성 경위 및 초안자 ▲ 국회 전달 경위 ▲ 테러방지법 기존 입장 변경 사유 등을 공개 질의했다.

국회 정보위 법안 검토 보고서와 흡사, "주문생산형 의견서에 가까워"

변협의 테러방지법 찬성 검토의견서가 국회 정보위원회의 법안 검토 보고서 등을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변협은 해당 의견서에서 "동 법안의 경우 테러통합대응센터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 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우려가 제기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본 법안은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설치하고, 테러대응의 실무적 역할을 담당하는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두어 국정원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키고 있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23일 작성된 국회 정보위원회의 검토보고서와 거의 유사하다. 당시 검토 보고서에는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 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바, 동 법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설치하고, 테러대응의 실무적 역할을 담당하는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두어 국정원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키고 있음"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즉, 문장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 주요 논리 전개 구조나 선택한 단어들이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앞서 이 검토의견서에 의혹을 제기했던 변호사들의 '의문'과도 일치한다. 집행부 공개사과 등을 촉구했던 공익 변호사 59명은 성명서에서 "변협 '명의' 의견서는 법률 의견서가 아닌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며 "법문의 명확성, 국내외 사례, 비교법적 측면, 국가기관의 권한 분배, 국민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주문제작형 의견서에 가깝다"라고 꼬집었다.

민변 역시 공개질의에서 "(해당 검토의견서가) 법률의견서로서의 갖춰야 할 최소한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에 대한 대한변협의 의견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한편, 변협은 이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23일 내부 협의를 거쳐 의견을 도출한 후 24일 국회의장에게 전달한 것"이라며 "새누리당의 요청을 받고 의견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태그:#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대한변호사협회,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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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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