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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핸드폰 메시지 및 메일 확인이다. 여러 가지 수신 메시지를 확인하고 삭제하고 답신하고보니 아일랜드에서 온 30세 여자의 메일이 와 있다.

보통 당일 숙박 요청은 거절하는 편인데 홈스테이 가능 여부를 묻는 그녀의 글이 매우 단출하면서도 배려심이 느껴졌고, 아일랜드라는 나라도 궁금하기도 했기에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이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이번주부터 엄청 바쁜 일이 그득한데 괜히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그제야 슬금슬금 든다.

늦게까지 수업을 하는데, 밖에서 불편하게 기다리고 있어야 할 여행자에 대한 미안함도 간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나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틀 머무는 동안 하루는 다른 곳에서 묵기로 한 것이다.

단번에 생각을 사로잡는 건 이런 기회에 꼭 한 번 자보고 싶었던 곳을 가보는 것이다. 강릉이 집이라서 숙박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약간의 설렘으로 마음이 울렁대기까지 한다.

역시 관광지다 싶을 만큼 즐비한 강릉의 숙소 중에서 나는 '선교장'의 아침을 느껴보기로 했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그곳에서 아침을 맞아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마치 300년 전 그곳을 이용하던 어느 여행객의 마음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선교장 입구 사대부의 문으로 들어서면서부터 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 선교장 입구 사대부의 문으로 들어서면서부터 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 박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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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피로를 씻고 다시 길을 나설 수 있게 하는 건 편안한 숙소일 듯하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행지가 정해지고 나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도 숙소이다. 숙소가 정해지면 나머지 동선까지 정해지는 이유도 한몫이다.

어느 여행지에선 숙소 자체가 주는 편안함 때문에 그곳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책 읽고 하는 시간 자체가 좋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여행의 참맛은 나홀로 여행이라고 위안하며 수없이 홀로 다녔던 나같은 사람에게 정보 교류의 장이면서 사람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의 재미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예전엔 모텔이나 민박처럼 단순한 잠자리용의 숙박 형태가 많았다면 요즘은 다른 여행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깊이 있는 여행 문화를 끌어내는 게스트하우스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여행이 혼자만의 풍경 즐기기가 아닌 소통에서 오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변화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확실히 사람이다.

선교장의 풍류, 대가집의 여유로움을 느끼다

짐을 내려놓기 위해 간 시간은 오후 2시경이었다. 넉넉하게 선교장의 잔디밭을 유유히 걸어 보고도 싶어서 일찍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체크인이 6시니 그때 짐을 옮겨야 된다는 것과 조식은 8시부터 9시까지인데 퇴실이 9시니 유의해달라는 말을 들으니 좀 빡빡하다 싶다. 나는 이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서 계속 여행자의 맘을 유지하기로 한다.

선교장을 거니니, 옛 가옥을 보면 슬픔도 따뜻해진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고택을 둘러싸고 있는 숲들이 굉장히 우렁차게 보임에도 오래된 것이 주는 따뜻함은 슬픔의 정서와 비슷한가보다.

정문에서 선교장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다. 300년이란 시간 동안 집을 한 번도 비우지 않고 대대로 살고 있는 후손들의 정성이야말로 고택의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이었던 듯싶다.

강릉 선교장은 효령대군 11세손 무경 이내번이 집터를 찾던 중 족제비 무리를 만나 이르게 된 곳이다. 족제비가 이동하는 모습이 너무나 생경했던 무경은 족제비를 쫓았고 족제비가 사라진 곳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본 후 천하 최고의 명당자리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엔 경포호수가 주위 12km여서 (현재는 주위 4km)배를 타고 건너다녔기에 '배다리(船橋里)라고 불렸던 곳이기도 하다. (참조 : <강릉 선교장>, 이기서, 열화당)

가장 민간형의 성격을 지닌다는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열화당, 중사랑, 별당, 행랑채를 꾸준히 증축했고 이씨가의 중흥기라 불리는 오은 거사 이후 은일지사의 생활이 정점에 달하면서 동구에 연못을 파고 연을 심어서 그 가운데 '활래정'을 건립하여 풍류의 이상을 보여주던 장소가 선교장이다.

활래정은 수중누각인 서울 창덕궁의 부용정과 매우 흡사한 모습으로 석주가 누각을 떠받들고 있어서 건물의 일부가 물 가운데 있는 듯한 형상을 보여준다.

장지문이 있는 두 개의 온돌방이 마루와 이어져서 ㄱ자형을 이루고 있고 이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는 다실이 있는데 자연의 묘경과 더불어 차를 즐기고 시를 노래하며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개방적 구조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연잎과 연꽃이 한창일 때는 뒷산의 노송과 고목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으며 차 한 잔, 아니 술 한 잔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풍류는 없으리라.

활래정 날아갈 듯한 처마가 연꽃을 안고 있다.
▲ 활래정 날아갈 듯한 처마가 연꽃을 안고 있다.
ⓒ 박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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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래정 사방이 탁 트인 아늑함 속에 햇빛을 머금고 있다.
▲ 활래정 사방이 탁 트인 아늑함 속에 햇빛을 머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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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온 그녀는 그중에서도 유독 열화당(悅話堂)을 맘에 들어 했다. 활래정이 개방적이고 정겨운 자연미를 맛보는 곳이라면 열화당은 폐쇄적이고 구수한 인정미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개방적이면서 폐쇄적이고 자연미에 인정미까지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얼굴의 공간이 아닌가 싶다.

열화당은 순종 15년(1895)에 오은거사가 건립한 건물로 형제가 늘 열화당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싶다는 오은거사의 뜻을 담은 선교장의 대표 건물이다. 오은 이후로 오랫동안 많은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사랑채의 역할을 해왔고 지금은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열화당은 장지문이 가로지르면 3개의 방으로 나눌 수 있으며 ㄴ자형의 구조이다.

활래정이 장지문이 가로지르면 2개의 방이 되고 ㄱ자형 구조인 것과 뭔가 운이 맞으면서도 다르다. 대청의 T자형 대들보는 열화당만의 특징이라면 벽이 온통 문짝으로 되어 있어 전부 열어놓으면 사방에서 자연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은 두 건물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뒷산의 노송과 함께 열화당 옆에 있는 수령 수백년 된 나무들이 열화당의 운치있는 풍모를 더한다.

행랑채가 보이는 열화당 한곁에서 친구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고보니 선교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부쩍 말이 없었던 게 생각이 난다. 이유를 묻는 나에게 나무와 햇볕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건네길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아마도 기쁨을 이야기(悅話)하고 있는 거겠지.

열화당 기쁨을 이야기하는 열화당의 오후.
▲ 열화당 기쁨을 이야기하는 열화당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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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열화당 문고 앞에서 친구와 추억을 쌓다.
▲ 열화당 열화당 문고 앞에서 친구와 추억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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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행랑채가 보이는 열화당 방 한 곁에서 오후의 햇살을 맞다.
▲ 열화당 행랑채가 보이는 열화당 방 한 곁에서 오후의 햇살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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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객들이 돈 대신 각지의 물품을 진상하고 선교장에 머물면서 시를 읊고 자연을 노래했다는 얘기는 듣기만 해도 정스럽고 그것을 받아주었던 대가집의 여유로움은 엄청 푸지다.
넓은 공간에 여행자들로 빼곡했을 선교장의 풍모가 느껴진다. 친구가 된 여행자와 구석구석 사진을 찍는데 그녀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선교장의 자연 나무도 하늘도 모두 그녀의 사진에 담겼다.
▲ 선교장의 자연 나무도 하늘도 모두 그녀의 사진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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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 공방 널뛰기도 할 수 있고, 투호도 할 수 있는 공방 앞마당.
▲ 선교장 공방 널뛰기도 할 수 있고, 투호도 할 수 있는 공방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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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선교장 공방에서 만든 장승도 볼 수 있다.
▲ 장승 선교장 공방에서 만든 장승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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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공간에 들어서면 다소곳하게 변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하다.
▲ 행랑채 공간에 들어서면 다소곳하게 변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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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우리가 묵었던 행랑채는 소소하지만 정갈했다.
▲ 행랑채 우리가 묵었던 행랑채는 소소하지만 정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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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저렇게 많은 행랑채 안에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묵었을까.
▲ 행랑채 저렇게 많은 행랑채 안에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묵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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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의 부족한 영어 설명에 갈증을 느꼈던지 지나가는 선교장의 문화해설사를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여행지의 오래된 문화도 알고 싶어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외별당에 늘어서있는 장독대의 모습에도 관심이 많았다. 올망졸망한 장독대에 든 갖가지 것들은 세월과 더불어 짙은 향기를 내는 선교장의 모습과 같아지겠지.

선교장 문화해설사 친절한 설명을 영어로 들을 수 있다.
▲ 선교장 문화해설사 친절한 설명을 영어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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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별당 맏아들의 신혼살림이나 작은아들의 분가 이전에 사용했던 건물로 외별당 앞에는 많은 장독대들이 늘어서 있다.
▲ 외별당 맏아들의 신혼살림이나 작은아들의 분가 이전에 사용했던 건물로 외별당 앞에는 많은 장독대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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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역사를 이불삼아 밤을 보낸 후 아침밥을 먹자마자 짐을 들고 나섰다. 오전 9시가 퇴실이라 급하게 나와야 해선지 밥을 먹었음에도 허한 느낌이 들어 바다내음 물씬 나는 미역국을 또 먹기로 했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역시 먹는 거지. 우럭을 푹 고아 끓인 미역국은 밥을 먹었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맛나서 이내 한 그릇을 비웠다.

집 놔두고 외박하는 하루가 참 길다.

선교장 조식 정갈하게 준비된 조식은 선교장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일용할 양식이었다.
▲ 선교장 조식 정갈하게 준비된 조식은 선교장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일용할 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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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강릉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기획하고 파랑달협동조합이 제작한 여행 책자 <다섯가지 테마로 즐기는 강릉여행, 2015>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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