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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보다 정치에 관한 카피를 많이 쓰는 카피라이터. 요즘에도 연필로 글을 쓰는 아날로그 광고쟁이인 정철 선생이 최근에 <카피책>(허밍버드)을 출간했다.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라는 부제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한 권 샀다.

그가 정의하는 카피란? '설득하기 위해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말과 글'을 지칭한다. 연필만 잡으면, 키보드에 손만 얹으면 얼음처럼 꽁꽁 굳어버리는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이미 카피라이터가 되어버렸거나 카피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한 당신이라면 지금 당장 카피를 써내야 하는데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참고서로 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신이 쓰는 글은 모두 카피다
▲ 정철의 <카피책> 당신이 쓰는 글은 모두 카피다
ⓒ 허밍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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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필과 머리가 결합한 자연스러운 카피 쓰는 법을 <카피책>에서 알려주고 있다. 우선 글자로 그림을 그리라는 장을 살펴보자. 나이트클럽의 웨이터 류현진은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합시다. 류현진"이라는 광고 스티커를 부착하고 다닌다.

그러나 이영표는 "반 발짝만 앞으로 오세요. 이영표"라고 구체적인 행동을 알려주고 이영표임을 강조한다. 손님은 누구를 찾겠는가? 정답은 나와 있다.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그림이 되는 카피를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울러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구닥다리 카피는 그만 쓰자고 한다. 아파트 광고에 있어서 "서울보다 훨씬 저렴한 파격 분양가" 보다는 "용인에 집 사고 남는 돈으로 아내 차 뽑아줬다"가 더 좋을 것 같다는 말이다.

카피의 기본은 문장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그것을 두 문장이나 세 문장으로 나누는 것이다. 문장을 깍두기 썰 듯 깍둑깍둑 썰 듯 짧게 쓰라고 말한다. 바디카피를 잘 쓰는 법은 부엌칼 쓰듯 쓰는 것이 최고임을 강조하고 있다.

카피라이터는 주방장과 같은 존재라서 말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기를 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충남도지사인 안희정 선거에서 "충남도민은 이 사람의 재선을 당근이라고 말한다"를 "충남도민은 이 사람의 재선을 당근이라고 짧게 말한다"라고 양념을 더했다.

카피라이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말과 글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엄숙주의와 결별하라. 말장난을 도와주는 교재인 국어사전과 친해져라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우개를 과소비하라. 쓴다, 지운다, 두 가지 일을 많이 하십시오. "몰랐G? 디G털도 G마켓이 G배한다" 등 놀라운 카피가 가득하다. 카피라이터는 연필을 드는 시간만큼 지우개를 들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의 카피는 "바람이 다르다"였다. 그는 이 카피를 통하여 카피라이터가 날려야 할 것은 카피뿐이 아니라, 욕심도 날려야 함을 주장한다. 군더더기를 전부 날리고 잘게 썰어 쓴 바디카피가 최고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좋은 말이 있으면 과감하게 도둑질을 해야 한다. 어느 날 중랑구청장 후보인 박종수를 위한 쓴 카피가 걸작이다. "여보, 중랑구청에 박종수 들여놔야겠어요"라고 보일러 광고를 도둑질해서 광고 카피를 썼다. 구민 대부분이 너무 재미있다고 박종수를 기억했다. 절반은 성공이었다.

양말 광고에서는 온 국민의 관심사인 통일 이야기를 꺼낸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양말부터 통일하자" 누가 봐도 박수가 나오는 카피이다. 이처럼 멋진 카피는 다양한 아이디어 도둑질을 통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다.

카피는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들어야 한다. 특히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찾아서 조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손이 아니라 눈으로 쓸 것이며, 힘 빼고 던지는 카피가 생명이다. "얼음정수기를 가지면 다 가진 겁니다", "진로는 술을 만들 줄 압니다", "산을 내려오면 산에 오르기 쉽다" 등 너무나 편하게 힘 빼고 눈으로 쓴 카피들이다.

좋은 제품의 경우에는 확신에 대한 카피가 필요하다. 특히 광고는 제품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제품을 향해 달리는 길, 과속을 권장합니다"라는 카피는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한 자만이다. 때론 이런 거만도 필요하다.

가끔은 뚱딴지같은 카피도 대중을 사로잡는다. "택시 요금 2500만 원입니다" "박원순은 박원순이 아니다" "두 번 결혼합시다" 엉뚱함이 시선을 자극하는 카피를 쓰는 것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길이다.

일하는 사람 강원도지사 최문순을 위해서는 "오직 강원! 기호2번 최문순입니다. 땀에는 빨간색 파란색이 없습니다"라며 여야의 이념논쟁을 땀으로 극복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정면 돌파보다는 강한 흡인력이 있는 메시지로 쟁점을 부드럽게 하는 카피인 것이다.

또한 성인이 되면 자주 쓰지 않는 용어인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쓸 것을 강조한다. "로봇도 사랑에 빠지면 가슴이 뛴다" "영어에 풍덩" "부글부글 민심이 들끓으면 민란이 일어납니다" 이런 재미있는 카피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적절한 조합에서 나온다.

때로는 그들에게 들리는 익숙한 사투리가 좋다. "그려 정범구여!" 선거에 출마한 후보에게 지역민과 동질감은 필수적인데, 특히 사투리가 주는 어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이 되는 것이다.

죽은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5월은 노무현입니다"라며 5월 전체를 노무현의 달로 선포한 일이나, 그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김해을에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한 김경수를 두고 "나는 꼴찌를 지지한다"는 진솔한 카피는 눈물 나게 한다.

카피라이터 정철 선생은 <카피책>을 통하여 발상의 전환과 광고인을 꿈꾸는 젊은이들, 글쓰기에 고달픈 직장인들에게 작은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재미난 책이다. 한번 읽어 두면 반드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정철 지음, 손영삼 이미지, 허밍버드(2016)


태그:#카피책,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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