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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온 나라를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도 2년이 되어간다. 올해는 250명이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동갑내기인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성년이 되는 해다. 입시준비로 힘든 고3을 보내고 이제 한숨 돌렸을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 당시와 지금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친구들의 죽음에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수능, 입시에 눌려 아픔도, 분노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눌러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이제는 성년으로 세상을 향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교차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청소년으로 넓혔다. 배가 침몰하고, 선장과 선원들이 다 구조되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선내 안내방송이 지금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각종 사교육에, 스펙 쌓기에 생각할 시간마저 빼앗긴 청소년들에게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른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다.

함께 한 이들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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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한국YMCA연맹이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모였다. 두 달여에 걸친 준비 끝에 지난 2월 20일(토)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창비 신사옥 지하홀에서 세월호청소년 토크콘서트 '응답하라 2014'가 열렸다.

세월호 희생학생 형제자매와 세월호의 아픔과 함께한 청소년들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하고 광운대 풍물패, 성공회대 노래패 공연 등을 결합한 토크콘서트였다.

토크 1부의 이야기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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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1부는 세월호 희생 학생 형제자매가 이야기 손님으로 나왔다. 고 김동혁군 동생 김예원씨,  고 박예슬양 동생 박예진씨, 고 김도언양 오빠 김태우씨, 고 최윤민양 언니 최윤아씨 이렇게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놀이공원으로 봄 소풍을 갔다가 오빠의 사고소식을 들었다는 예원씨, 밤 근무를 마치고 자고 있는 중에 전화벨이 계속 울려서 받아보니 동생의 사고소식이었다는 태우씨, 회사에서 일하는데 직장 동료가 '동생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학교 이름이 뭐라고 했죠?'하고 물어서 알게 되었다는 윤아씨, 평소처럼 언니에게 전화를 하다가 '맞다, 이제 언니 없지...' 하면서 전화기를 내려놓는다는 예진씨. 모두 그저 평범한 청소년, 청년이었다.

유가족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는 어느 참석자는 예전에 뉴스 같은 걸 보면서 '유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냥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며 눈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소식을 뉴스로 듣고도 '설마 내 오빠가, 내 언니가, 내 동생이 죽기야 하겠어? 그래도 살아 돌아오겠지' 했다는 형제자매들의 이야기에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뭐라도 해보려고 부모님과 집회나 서명을 따라다니면 기자들이 들이대는 카메라와 한 마디 해달라는 요구에 힘들었다는 이야기,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시는 것은 알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이 양해없이 덥석 안을 때의 당혹감 등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참사 직후 군대에 입대하여 올해 3월에 제대하는 태우씨는 군인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다 주위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유가족이라는 말을 안 했다. 하지만 내부반에서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던 동기가 "쟤네들 돈 받았다며 왜 저러냐? 언제까지 할거냐?"는 말을 했을 때는 참지 못하고 싸웠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토크 2부의 이야기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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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140여 명의 청소년, 청년들이 참여했다. 2부 이야기 손님으로는 광명 운산고 2학년 김지영양, 제천 간디학교 3학년 송륜근군, 올해 안산 고잔고를 졸업한 김영찬군, 세월호 참사 당시 고3이었고 지금은 직장인이 된 장한나양이 함께 했다.

2부에는 방청객으로 참여한 청소년들과 이야기 손님들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면 객석 참여자들이 사전에 나누어준 스케치북에 본인들의 이야기를 적고 함께 나누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어떤 생각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성남 이우학교에 다닌다는 한 학생은 "당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도보기행이 취소되어 불만이 많았는데 그 후 부모님과 함께 추모 집회를 다니면서 세월호 참사의 실상을 알게 되니 그렇게 생각한 게 후회가 되었고 유가족께 너무 미안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한 학생은 "다니던 학교에 '자기는 정치적으로 극우'라고 하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폄훼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학교 안에서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1인시위를 하다가 선생님께 주의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세월호 1주기 때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 티를 입고 다니다가 학생부 선생님께 벌점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은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사회의 슬픈 단면이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그러한 '가만히 있으라'는 명시적, 묵시적 압력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펼쳐나간 청소년들도 많았다.

안산 고잔고에 재학 중이던 김영찬군은 함께 연합동아리 활동을 하는 단원고 친구 여섯 명을 잃고 안산지역에서 세월호의 진실과 아픔을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제천 간디학교에 재학 중인 송륜근군도 방학기간 중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세월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찾아서 해왔고, 광명 운산고 2학년 김지영 양도 친구들의 "아직도 세월호냐, 언제까지 할거냐"는 핀잔에도 여전히 세월호 활동에 함께 하고 있다.

당시 고 3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추모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여 거리공연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장한나씨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그때까지 본인이 살고 있던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착한 사람은 잘 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었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세대

희생 학생 형제자매에게 객석 참여자가 스케치북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학생인 '우리'들은 여러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요?"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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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윤아씨가 이렇게 답했다.

"학생이라서 할 수 없는 건 없어요. 저는 출근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습관적으로 노란리본을 찾아요. 발견한 날은 참 기뻐요. 저분도 기억하고 있구나 하고 힘이 나요. 사실 요즘 같이 유행이 빨리 변하는 시대에 2년이나 리본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여전히 함께 하는 마음이라는 거잖아요.

그 마음이 제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줘요. 저는 여러분이 '세월호 세대'라고 생각해요. 6.25세대, 베이비붐 세대 하는 것처럼 어떤 큰 사건이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때 무슨 무슨 세대라고 하는데요, '세월호 세대'인 우리들은 적어도 정치인들이 헛짓거리 하거나 정부에서 이상한 짓을 하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고, 바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으면' 어떤 일 당하는지, 어떤 취급 당하는지 보셨으니까요. 지금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 가방에 리본을 다는 일부터 하면 돼요. 그게 저희들에게는 힘이에요. 그리고 성인이 되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세요. 나는 그렇게 살고 싶고,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응답하라 2014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 '응답하라 2014' 행사 현장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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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행사를 준비하며 세월호 참사 당시부터 지금까지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는 제약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아파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행사를 끝내고 그런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청소년들도 청소년 나름대로 그들의 자리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왔다. 어쩌면 문제는 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기성세대가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된다.

이 날 행사에 자녀와 함께 온 한 어머니가 '우리나라의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1부 토크에 참여한 고 김도언양, 오빠 김태우씨 역시 군대에서 방송 3사 뉴스만 보아왔는데 나와서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나이 어린 친구들이 이렇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랐고 힘이 난다고 했다. 참석한 청소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세월호 세대의 건강한 에너지, 변화의 에너지를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물줄기로 만들어갈 것인가가 이번 토크콘서트가 남긴 숙제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오지숙 시민기자는 4.16연대 공감위원회 공동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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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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