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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람의 지식도 그 사람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은 없다."(로크)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게 있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나면 관광지나 축제 등 '밝은' 장소로 가게 된다. 다크 투어리즘은 정반대다. 수용소나 참사 현장 같은 '어두운' 장소로 가는 여행을 말한다.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굳이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의 저자 아즈마 히로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공간에서 일어난 슬픔은 그곳에 가야만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을 통해 슬픔은 공유되고 외부에까지 전파된다."

다시는 불행한 사건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다크 투어리즘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다크 투어리즘'의 대표격, 서대문형무소를 가다

대한민국은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이다. 원칙에 어긋나게 운영되는 제도로 인해 발생한 사고들이 일정 주기로 재현된다. 1970년대의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에서 2014년 세월호 침몰에 이르기까지, 디테일만 다를 뿐이었다.

비단 사고뿐만이 아니다. 선임병에 의한 후임병 구타와 가혹행위는 대학교에서 선배와 후배로 명칭만 바뀌어서 반복된다. 각각 훗날의 문제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중시하는,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무슨 일을 해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인식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설파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나타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학습으로 안 된다면 경험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낼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외국에서는 예전부터 다크 투어리즘을 주목해왔다. 1996년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이래로 꾸준히 연구가 계속됐고, 관련 유적지에 대한 정비도 잘 되는 편이다. 유명한 아우슈비츠와 체르노빌의 체험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정부 주도하에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한국은 아직인 듯하다. 과거 숭례문 화재 사건을 계기로 한 동안 이슈가 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관련 유적지가 없는 건 아니다. 제주도 4·3 평화공원이나 거제 포로수용소 등 외국의 유명 유적지 못지 않은 장소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직접 가보기로 했다. 장소는 서대문 형무소.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곳이다.

공작사 서대문 형무소 공작사의 풍경. 모든 건물들이 이처럼 딱딱한 붉은 벽돌식으로 되어있다.
▲ 공작사 서대문 형무소 공작사의 풍경. 모든 건물들이 이처럼 딱딱한 붉은 벽돌식으로 되어있다.
ⓒ 이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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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디자인의 공장과 합숙소 건물들. 서대문 형무소 건물을 처음 봤을 때 받은 인상은 그러했다. 간간히 보이는 감시탑들만이 이곳이 한때 형무소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오래전에 지어진 근대식 건물들이구나' 하고 넘어갔을지도.

다만 삭막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관람객들 대다수는 가족이나 연인들이었다. 신기했다. 설 연휴였기에 제사 준비를 하거나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였다. 그럼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런 '칙칙한' 곳이 왔다면 정말로 다크 투어리즘에 관심을 가지고 왔다고 봐야 하나.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관람에 집중했다.

딱딱한 건 건물의 외형만이 아니었다. 안내문이나 전반적인 설명들이 죄다 건조한 문장들로 이뤄져 있었다. 요즘 시대에는 휴대전화로도 쉽게 찾아볼 법한, 사실만이 나열된 설명들이 얼마나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는지. 실제로도 관람객들 대부분은 설명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나치고 있었다. 어른들도 그럴진대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휴대전화 게임에 열중할 뿐이었다. 다만 모든 관람객들이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니었다. 첫 번째 경우는 부모나 연인의 설명을 들을 때였다. 수용소의 역사와 관련된 뒷이야기를 듣는 아이와 연인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두 번째는 수용소 내에 마련된 체험 시설들을 이용할 때였다.

서대문형무소, 이런 게 아쉽다

설명문 고 김근태 의원에 대한 설명. 사실 전후 서대문 형무소에는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보통 일제시대만 떠오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충분히 흥미가 갈 법한데, 지루한 설명이 아쉬울 뿐이다.
▲ 설명문 고 김근태 의원에 대한 설명. 사실 전후 서대문 형무소에는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보통 일제시대만 떠오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충분히 흥미가 갈 법한데, 지루한 설명이 아쉬울 뿐이다.
ⓒ 이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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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시설들은 아니었다. 옥사 안에는 독방이 재현돼 있어서 잠깐 들어갔다 나올 수 있고, 중앙사에는 재판소에 간수 인형들이 세워져 있는 정도였다. 소싯적 놀이공원에 있던 귀신의 집을 떠올리게 하는 투박한 장소들이었다. 그럼에도 체험이라고, 사람들은 설명을 읽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집중하고 있었다.

현대 기술을 활용한 시설도 있었다. 일례로 '조선 독립으로부터 71년 후의 우리의 모습'이라고 해서, 형무소 내 몇 가지 장소들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마도 관람객들이 그 당시 형무소에 갇혀있던 사람들의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길 의도한 것이리라.

체험관  ‘조선 독립으로부터 71년 후의 우리의 모습.’ 척 봐도 어설픈 화면이 아쉬울 뿐이었다. 조금만 더 자연스러웠다면......
▲ 체험관 ‘조선 독립으로부터 71년 후의 우리의 모습.’ 척 봐도 어설픈 화면이 아쉬울 뿐이었다. 조금만 더 자연스러웠다면......
ⓒ 이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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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시설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음과 같았다. 스크린에는 한 독립운동가의 고난이 묘사된다.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혀 형무소로 끌려온다. 모진 고문을 받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만세를 부르다가 순국하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만세운동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전형적인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달라지는 건 그 독립운동가의 얼굴이다. 관람객 한 사람이 스크린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그의 얼굴이 저장돼 독립운동가의 머리 부분에 뜨게 된다. 이런 식으로 관람객들은 짧으나마 독립운동가의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체험을 통한 자연스러운 경험의 공유라는 점에서, 다크 투어리즘의 취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설이었다.

문제는 기술력이었다. 현대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시대이다. 영화·드라마·게임 등에서 인간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수준의 CG 인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기술에 익숙한 현대인인 나에게, 서대문 형무소의 '현대 기술'을 활용한 시설들의 수준은 처참해 보였다.

앞서 말한 독립운동가의 일생을 체험하는 시설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찍은 얼굴이 검은 네모 박스에 갇혀 독립운동가의 목 위에 올라와 있는데, 억지로 결합해 놓은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그 어색한 모습이 나마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독립운동가의 몸이 스크린 오른쪽에 가 있을 때 얼굴은 왼쪽에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혹시 다른 관람객들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여기에 온 계기가 무엇인지, 조상들의 고초가 느껴지는지의 두 가지였다. 서대문 형무소에 다크 투어리즘의 목적을 가지고 왔는지, 형무소가 그에 걸맞은 체험을 제공해주고 있는지를 묻기 위한 질문이었다.

계기를 묻는 질문에는 'TV에서 봐서 한 번 와봤다' '집에서 가까워서 놀러왔다' 정도의 답이 돌아왔다. 느낌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는 반응 혹은 느껴진다고는 하는데 다른 곳을 보며 말하는 식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서대문 형무소는 제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꼭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을 모르더라도, 그 목적에 부합하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을 법 했으나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답사는 끝을 맺었다.

VR영상,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강의실에서는 곧장 조는 아이라도, 자신이 직접 체험한 지식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체화할 수 있다. 그만큼 체험은 흥미롭다. 실제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본 관람객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체험에 가장 큰 흥미를 보였다.

다만 그들이 '슬픔을 공유하고 외부에까지 전파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 데는 체험의 품질이 떨어지는 이유가 크다. 어떻게 해야 품질을 높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한 가지가 떠올랐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VR(가상현실), 그중에서도 노니 데라페냐 엠블로메틱 그룹 대표가 주창하고 있는 VR저널리즘이다.

2015년 4월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열린 온라인저널리즘 국제심포지엄에서 하나의 영상이 상영됐다. '프로젝트 시리아'라는 이름의 영상으로, 내전 중인 시리아의 모습을 재현한 3D 영상이었다.

체험을 통해 어떠한 기사보다도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VR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은 국내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현재 <조선일보>가 VR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업계에 뛰어든 상태다. 필요한 기기의 가격도 내려가서 이제는 휴대전화에서 간단한 타드보드기를 부탁하는 것으로도 VR 영상을 볼 수 있게 됐다.

VR과 다크 투어리즘이 결합한다면 관람객들에게 더 나은 체험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카드보드기 정도의 비용으로 이용하는 VR 영상의 수준이 과연 그 정도로 생생할까. 그래서 직접 이용해보기로 했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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