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레드메인이 올해 아카데미 수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대니쉬 걸>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두 번 연달아 수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성전환 연기'라는 어마어마한 연기에 도전한 그는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답게 영화 내내 인물의 육체적·심리적 변화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여러 번 고개를 젓곤 했는데 영화 내용을 부정하고 싶다거나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영화 속 에이나르와 게르다의 사랑 혹은 릴리와 게르다의 사랑이 너무나도 벅찼기 때문이다. 에이나르와 릴리를 사랑하여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게르다의 삶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고 슬펐으며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영화를 감상했던 터라 영화 내내 마음이 닳았다.

올겨울의 끝 문턱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그 셋(에이나르, 게르다 그리고 릴리)의 사랑을 1920년대 코펜하겐과 파리를 배경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미술 작품처럼 연출된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에이나르와 릴리, 게르다에 번갈아 이입하며 그들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아래는 에이나르/릴리의 시각에서 또 게르다의 입장이 되어 1인칭으로 서술해본 그들의 이야기다.

[시선 하나] 에이나르 그리고 릴리

에디 레드메인 <대니쉬 걸> 영화 중에서

에디 레드메인은 탁월한 연기를 선보인다. ⓒ UPI 코리아


난 내가 사랑하는 여자, 게르다와 결혼했다. 우린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같은 화가로서 서로의 작품을 존중하고 존경했다. 게르다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사람도 날 잘 이해해주지 못했다. 게르다는 나의 유일한 사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게르다와 함께 장난으로 시작한 놀이가 내 안에 살고 있던 릴리를 발견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지만, 곧 나는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특별함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에이나르는 나를 감싸고 있는 허물일 뿐이었고 나는 얼른 그 허물을 벗어야 숨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게르다는 내가 릴리로서 계속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게르다는 '남편' 에이나르를 원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한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가슴이 찢어지게 고통스러웠다. 나 또한 게르다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원하는 에이나르의 모습으로 살기 위한 노력도 해보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나를 조금씩 죽여나가고 있었다. 게르다의 남편으로서 있어 줄 수 없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의 무게는 상당한 것이었지만 오랜 시간 외롭게 내 안에 잠들어있던 릴리는 너무나도 간절히 세상밖에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릴리로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 할 때 게르다는 내 옆에 있어주었다. 게르다는 내 아내였고 친구였고 그 모든 것을 넘어 어떤 단어를 붙여야 할지 모를만큼 엄청난 존재로 마지막 순간까지 내 옆에 있어 주었다. 내 삶에 그녀가 있어 난 진정으로 행복한 릴리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시선 둘] 게르다

<대니쉬 걸> <대니쉬 걸> 영화 中

에이나르 혹은 릴리와 게르다의 사랑. 이들의 사랑은 사람들의 시선에 갇히지 않았다. ⓒ UPI 코리아


에이나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별했다. 다른 여느 남자들과는 다른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섬세했고 다정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린 너무 잘 통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신 안의 릴리를 발견했다. 그가 릴리를 발견하도록 내가 도왔다. 내 그림 속 릴리는 완벽한 모델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림 속의 릴리를 보며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내 그림과 내 이름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에이나르는 사라져 갔다. 에이나르가 있어야 할 곳에 릴리가 있었다. 릴리는 에이나르를 닮은 얼굴로 내 옆에 있었지만, 그곳에 내 남편은 없었다. 에이나르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렇기에 릴리도 사랑한다. 릴리 안에 에이나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한동안은 릴리를 보며 에이나르를 떠올렸다. 그렇게 릴리 옆에 있으면서 에이나르가 돌아오길 바랐다. 릴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가 힘들어하는 것은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세상 밖에 나왔을 때 릴리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게 미소 짓는 여인이었고 나로 인해 혹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해 그 아름다운 사람을 가둘 수는 없었다. 모두가 릴리를 반기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에이나르를 사랑했다. 그리고 릴리를 사랑했다. 나의 남편이자 친구이자 소울메이트였던 에이나르, 그리고 그 속에서 그동안 너무도 외롭고 힘들었을 릴리를 위해 그녀의 옆에 있어 줄 것이라고 결심했다. 에이나르와 릴리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대니쉬 걸>의 포스터 대니쉬 걸 포스터

▲ <대니쉬 걸>의 포스터 두 인간의 가슴 벅찬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 UPI 코리아



대니쉬걸 에디 레드메인 알리시아 비칸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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