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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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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유독 아껴 쓰는 표현이 있다. 이미 짐작했을지 모른다. '골든타임'(Golden Time) 말이다. 방송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간대인 '프라임(prime) 타임'과 같은 시간대를 가리키지만, 사건·사고에서는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1~2시간의 절체절명의 금쪽같은 시간을 칭한다.

지겹게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유독 '골든타임'이란 용어를 즐겨 '발화'한다는 것을. 신기하게도 그는 경제든 정치든, 전 분야에 걸쳐 이 '골든타임'을 용어를 막 가져다 쓴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지난해 연말, 이른바 '관심법안'의 국회통과가 늦어지자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까지 한 바 있다.

우리는 여전히 기억한다. 여전히 안타까워하는 전국민적 '골든타임'이야말로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의 7시간'과 겹치는 그 시간이었다는 것을. 대통령(과 그 주변 참모들)만 모르(는 척 하)고, 국민들은 잊지 못하는 '골든타임'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러나 같은 말을 다르게 쓴다. 의도적인 무시 혹은 무관심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 '골든타임'에 버금가는 의도적이거나 안하무인격의 말실수를 또 자행했다. 지난 17일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 자리에서다.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는 머리에서 지워버렸나?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를…."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업인, 정부 등 관계자들과 수출 회복 및 투자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듯, '내수활성화와 제조업과 서비스, ICT, 문화 등 융합의 필요성, 신산업 투자를 통한 저성장 극복'에 초점이 맞춰졌다.

문제의 발언은 역시나 '규제 완화'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신산업 투자지원을 위한 규제시스템과 관련 "네거티브 규제 개선 방식을 도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로 의심이 되면 정부 입맛에 맞게 골라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17일 오후, 이 발언이 <연합뉴스>를 통해 보도된 직후 "할 말과 안 할 말의 구분도 못 한다"는 반응이 누리꾼 사이에서 넘쳐났다. 일각에선 "죄책감 없는 사이코패스(혹은 소시오패스) 맞구나"란 탄식까지 일었다. 물론,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표현이 주는 국민적 피로감 때문이리라. 역사학자 전우용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일갈했다. 

"'골든타임'에 이어 '물에 빠뜨린다'까지. 이런 말들이 뭘 상기시킬지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의식 깊은 곳에 그 배가 가라앉아 있기 때문일까요?"

말실수인가, 정면돌파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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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과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둔다"란 표현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나. 몇 가지 가능성을 짚어 보면 이렇다.

첫째, 무의식에서 발현된 말실수. 프로이트는 인간의 말실수가 억압된 무의식 속에 부지불식간에 표출된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니까, 저 박근혜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살려내야 할 규제는 꼭 살리고 싶다"는 것이리라. 그 앞에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란 비유가 바로 그 무의식 속 말실수고.

세월호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단 '7시간' 뿐만이 아니라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자신의 책임이나 사고 후 해결 방식과는 별개로) 더더욱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제대로 해결해야만 하는 일에 비유하는 몰지각한 행동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비극인 건 매한가지지만.

둘째, 정면 돌파. "물에 빠뜨려 놓고"라는 표현이 국민에게, 특히 세월호 유가족들과 단원고 학생들에게 어떤 뜻으로 받아들일지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러니까, 대통령인 자신이 힘을 주어 표현하면 언론이 받아쓰고 평범한 회의 자리일지라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온 언론 플레이. 이를테면, "진실한 사람"이랄지 "통일은 대박" 등의 수사와 동일 선상에 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냥 '개무시'. 일말의 죄책감이나 고인들에 대한 배려는 이미 잊은 지 오래인 자만이 할 수 있는 기억상실증 화법. '골든타임'이란 표현을 그리도 아끼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그리고 세월호 트라우마를 간단히 뛰어넘은 대통령이라면 충분히 이런 무시의 화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피로감과 분노는 물론 온전히 국민들의 것이지만.

이목지신(移木之信)의 자세가 필요한 건 바로 박근혜 대통령  

이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반응은 아마도 한결같을 공산이 크다. 아니, '명약관화'다. '무의미한 앞뒤 자르기'라거나 '음해를 위한 곡해' 수준의 해명 말이다. 대통령이 말실수하거나 의도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딱 저 수준의 '마사지'를 경험해야 했다.

말이 뱉으면 다가 아니라는 건 요즘 초등학생도 아는 진리다. 그 말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왔을 때 받아들여지는 무게감은 남다르고 또 남달라야 한다. 트라우마에 의한 말실수든, 정면 돌파든, '개무시'든, 달라지는 건 없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상처 입을 누군가는 안중에도 없는 이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점 말이다.

사실 이런 해석 자체가 이제는 힘이 빠지는 일이 돼버렸다. 이미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 대통령의 말과 화법은 부차적인 문제다. 국정교과서 문제든, 개성공단 폐쇄든, 일본과의 '위안부' 외교든. 귀 막고 눈 닫고 제 말만 하는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에 의해 나라가 '개미지옥'과도 같은 수렁에 빠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국회 연설에서도 우린 북핵 문제와 개성공단 폐쇄에 관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변함없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국민 살리는 일은 관심에도 없이 '규제나 물에서 건지겠다'는 대통령을 보면서, "복장이 터진다"는 반응들이 넘쳐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논란의 발언을 했던 투자회의 자리에서 "이목지신의 고사처럼 신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와 애로는 반드시 해소해서 정부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목지신(移木之信)',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에도 강조했던 고사성어로, 간단히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이다.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이다.

대선 공약을 필두로 임기 내내 '반드시 국민을 속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대통령, 대표적으로 규제 완화와 같이 '자기 것'만 지켜내려는 박근혜 대통령이 쓸 말은 아니지 싶다.

'이목지신'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부디, 더 이상의 말실수는 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그 입으로 이미 수많은 국민을 건지기는커녕 절망에 빠뜨렸다는 걸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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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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