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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이성계(천호진 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이성계(천호진 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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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속에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나라를 품은 남자. 그런 일에 정신을 쏟기 시작한 남자. 그 남자가 비록 잠깐 동안이나마 자기 얼굴이 동안으로 보이는 데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신경을 썼다는 사실이 역사 기록에 남는 것을 차단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은 <육룡이 나르샤>의 조선 태조 이성계다.

고려 명장 이성계는 1383년에 정도전을 처음 만났다. 자신의 함경도 병영으로 찾아온 낯선 정도전과 그렇게 첫 만남을 가졌다. 이때는 고려 멸망 9년 전이었다. 당시의 정도전은 10년 가까이 재야를 맴돌던 불우한 선비였다.

<태조실록>에 수록된 <정도전 졸기>에 따르면, 초면에 정도전은 이성계의 사병들을 가리키며 "이만한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라며 이성계를 은근히 떠봤다. 그런 식으로 혁명을 제의한 것이다. 그랬는데도 이성계는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 이성계의 마음속에도 정도전과 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농부 두 사람과 조우한 이성계, 그가 들은 말은...

그렇게 정도전을 만난 직후였다. 양력으로 1383년 9월이나 10월께였다. 이성계는 함경도를 떠나 개경 땅으로 향했다. 개경에는 10여 년 전에 결혼한 작은 부인이 살고 있었다. 훗날 신덕왕후가 되는 강씨였다. 이성계보다 스무 살 정도 젊은 여성이었다.

그 해 이성계는 마흔아홉 살로 이미 상당히 유명한 장군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별다른 수행원도 없이 평복 차림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길가의 농부들이 이성계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편하게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그가 수행원 없이 평복 차림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계가 원산 남쪽의 안변 땅까지 내려왔을 때였다. 길가에 밭이 하나 있었다. 밭 가운데는 뽕나무가 있었고, 주변에서 농부 두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이때 농부들이 이성계에게 건넨 말이 있었다. 농부들의 의도와 달리, 이성계는 그 말을 외모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무척 어리게 보인다고 칭찬한 것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성계가 평소 남들로부터 외모 칭찬을 듣고 싶어 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도전으로부터 혁명 제의를 받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치고는 상당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농부들이 이성계에게 건넨 말은 무엇일까? 농부들이 말을 건네기 직전이었다. 이성계는 비둘기 두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뽕나무에 앉는 모습을 봤다. 이성계의 활솜씨는 유명했다. 거의 신궁 수준이었다. 이성계는 비둘기 두 마리가 잡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서 농부들이 일하는데도 활을 꺼내들었다. 일하던 농부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대단하네요! 도령의 활솜씨가!"

 경기도 수원시 수원화성의 활쏘기 터.
 경기도 수원시 수원화성의 활쏘기 터.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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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이성계는 활시위를 당겼다. 비둘기 두 마리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을 농부들은 순간적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들은 이성계한테 활을 참 잘 쏘신다고 칭찬했다. 바로 이 칭찬을 이성계는 외모에 대한 칭찬으로 잘못 받아들였다.

농부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도령의 활솜씨가!" 약간 문제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분명 활솜씨에 대한 칭찬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농부의 말에서 '도령'이란 표현에만 주목했다. "대단하네요! 도령의 활솜씨가!"라는 말을 "○○○○○! 도령의 ○○○○!"로 들었던 것이다.

보통은 미혼 남성을 도령이라고 불렀다. 흔히 10대에 결혼했으므로, 도령이란 말을 듣는 남자는 일반적으로 10대였다. 이성계는 활솜씨에 대한 칭찬보다는 자신이 도령으로 불렸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명장이지만, 그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 그는 순간적으로 우쭐해졌다.

농부들의 말을 듣는 순간, 이성계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태조실록>에서는 이성계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고 기록했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진 이성계는 농부의 말에 동문서답했다. 활솜씨에 대한 칭찬은 못 들은 척 하고 외모에 관한 대답을 한 것이다. 이성계의 답변은 "내가 도령은 진작 지났지"였다. 자신이 동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들었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다.

이성계는 자기를 도령으로 불러준 농부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농부들은 외모를 칭찬할 의도가 없었지만, 이성계는 그들이 자기 외모를 칭찬했다고 생각했다. 이성계는 그런 그들을 그냥 두고 길을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기 부하가 될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농부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두 농부가 몇 년 뒤에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는 한충과 김인찬이다. 특히 김인찬은 개국 일등공신이 돼 왕족급인 익화군이란 작위에 책봉됐다. 김인찬은 양근 김씨의 시조가 됐다.

이성계가 두 농부의 말을 듣고 속으로만 기분이 좋았다면, 그래서 그냥 발걸음을 재촉했다면, 그날 벌어진 이야기가 역사 기록에까지 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말에 이성계가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그걸 계기로 두 농부가 이성계의 부하가 됐기 때문에, <태조실록>에까지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계의 부하가 된 두 농부가 훗날 개경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대화 내용이 실록에까지 기록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뽀얀 피부' 선망했던 조선 사람들

시간이 흘러 1653년에 하멜이라는 네덜란드인이 조선에 표류했다. 위의 에피소드가 있은 지 270년 뒤였다. 하멜은 제주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를 거쳐 한양에까지 갔다. 이때 조선 남자들이 딱 한 가지, 하멜을 부러워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멜의 하얀 피부였다.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하멜의 하얀 피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숙소까지 쳐들어가는 남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평민뿐만 아니라 고위층 남성들도 많았다고 한다. 유교를 공부한 선비 출신 남자들도 이국인의 뽀얀 피부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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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남자들은 안 그랬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도 지금의 우리 이상으로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하멜 시대보다 약 3세기 이전 사람인 이성계의 경우는 특히 그랬다. 전쟁터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는 사람인데도 그는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농부들이 던진 말을 외모 칭찬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정도전을 만난 뒤로 9년 동안 이성계는 험난하고도 위험한 길을 걸었다. 그것은 단순히 대권에 도전하는 수준의 길이 아니었다. 기존 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길이었다.

그런 길을 걷는 중에도 이성계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었다. 활솜씨 칭찬을 외모 칭찬으로 오해하고 농부들을 동지로 만들 정도로, 자기 얼굴이 10대나 20대처럼 보이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혁명의 뜻을 품은 장군으로서 긴박한 삶을 사는 동안에도, 그는 이따금씩 거울을 들고 자기 외모에 흡족해 했을 수도 있다.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에 매료돼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는 나르시스(나르키소소)처럼, 이성계도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이따금씩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건국시조 자리만큼이나 동안 외모도 가치 있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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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