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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뻔한 이야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뻔한 이야기다. 그런데 뻔한 이야기는 익히 아는 이야기란 의미이지 마무리된 이야기란 의미는 아니다. 인권과 생태는 이제 누구나 아는 보편이 되었지만, 이와 관련한 문제가 상당수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라 말하며 뒤로 미뤄두고 애써 모른 척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심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곳, 들리지 않는 이야기'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굳이 보려 노력하지 않고 애써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지,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광화문 지하보도에는 3년째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천막이 있고, 밖으로 나와 광화문 광장에 서면 세월호 분향소가 영정을 지키고 섰다.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곳은 가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겠지만, 이곳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곳은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가도록 좁은 길을 넓히는 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너무도 익숙한 일상, 너무도 낯선 노동

숨은 노동 찾기_당신이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 이야기 /  신정임·최규화·정윤영 지음 / 오월의봄
 숨은 노동 찾기_당신이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 이야기 / 신정임·최규화·정윤영 지음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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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을 맞으며 출근하는 이들이야 종종 마주치겠지만, 아침 해가 뜨고서야 바깥으로 나오는 이들은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이, 바로 환경미화원이다. 퇴근 후에 경비실에 들러 택배를 찾고 우편함을 열어 고지서를 확인하면서도 막상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이들, 택배 기사와 우체국 집배원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애초 그러했듯 보이는 일상을 움직이는 주인공이지만, 오히려 일상에서는 실체를 마주하기 어려운 '숨은 노동'이 적지 않다. 오해는 말자. 그들이 숨어서 일하는 건 아니다. 장례지도사처럼 흔히 마주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고, 보조출연자처럼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숨은 노동 찾기>는 이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는 혹은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노동의 모습을 담았다. 기획자 송기역은 "'너무도 익숙한 것에서 너무도 낯선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며, "제대로 안다는 것이 연대의 출발"이라 말한다. 싸우는 이야기가 부담스럽다면, 일하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로 읽어주기 바란다.

섬과 섬을 잇다, 섬과 꿈을 잇다

섬과 섬을 잇다 2_소박한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유승하 외 11명 지음 / 한겨레출판
 섬과 섬을 잇다 2_소박한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유승하 외 11명 지음 / 한겨레출판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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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섬 프로젝트는 "글과 그림으로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기록"한다. 만화가와 르포 작가가 모여 '섬'에서 느껴지는 고립감에 공감하며, 외떨어진 갈등의 현장을 서로 잇고 응원하는 노력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14년 5월 첫 책 <섬과 섬을 잇다>를 펴냈고, 이번에 두 번째 책 <섬과 섬을 잇다 2>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1권에서는 밀양 송전탑, 재능교육, 제주 강정마을, 쌍용자동차 등 '여전히 싸우고 있는 우리 이웃 이야기'를 담았고, 2권에서는 전주 지역 버스 노조, 기륭전자분회, 유성기업지회 등 '소박한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은 어떤 바람을 품었기에 길게는 1000일이 넘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지켜온 걸까. "내가 일하던 자리에 단 하루라도 다시 서보고 싶어요.", "애한테 좋은 운동화 하나 사주고 싶어요." 그렇다. "일상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이상'을 좇을 여유가 없다." 일상에 발 딛고 사는 이들이 어느 곳에 시선을 두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이 시대 '을'이 살아가는 방법

예민해도 괜찮아_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 이은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예민해도 괜찮아_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 이은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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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98사번 이은의 대리는 상사의 성희롱을 고발하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5년 만에 승소했다. 기적이라 부르는 이도 있었고, 쾌거라 칭송하는 이도 있었다. 그는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삼성을 살다>로 풀어낸 후 어떻게 지냈을까. 4년이 훌쩍 지나 돌아온 그는, 그간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었다.

자연스레 자신의 경험과 비슷한 이들의 법정 투쟁에 함께 하며 세상이 여전히 녹록하지 않음을 확인했지만, 그러려니 눈 감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터득한 태도와 방법을 이번 책 <예민해도 괜찮아>에 풀어놓았다.

유사시에 자기를 지키는 방법부터 평상시에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까지, 선배 '을'로서 따뜻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조언을 전하는데, 보지 않으려 하고 듣지 않으려 하는 제삼자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언뜻 보면 세상이 바뀌는 건 용감한 피해자들 덕인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몸 담은 환경과 세상을 조금씩 좋게 바꿔나가는 것은 피해자의 용기나 가해자의 반성이 아니라 수많은 제삼자의 선택이다. 그들이 유리함보다 유익함을 선택하고 피해자를 지지할 때 세상은 좀 더 나아진다."

보이지 않는 곳을 마주했을 때,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깨달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 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숨은 노동 찾기 - 당신이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 이야기

최규화.정윤영.신정임 지음, 송기역 기획, 오월의봄(2015)


태그:#노동, #여성, #강정,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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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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