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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 근대 안에 봉건 잔재가 섞여 있고, 깨어 있는 시민의 시대인 줄 알았는데 독재와 관제 서명운동이 판치는 요즘, 문득 그런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과연 근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봉건체제보다 더 봉건적인 생각을 지니고 더 큰 봉건적 혜택을 누리는 저 기득권층은 과연 우리의 동시대인들일까? 우리는 어떻게 이 근대로 위장한 봉건체제를 넘어서야 하는 것일까?

변호사는 법조인이다. 그들이 다루는 법이란 건, 참 교묘하다. 그 교묘함은 대개 기득권층에 이롭게 작용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분란을 다룰 때 법은 한층 더 교묘해진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라는 족쇄에 유명무실해지는 등 노조활동과 쟁의행위는 거침없이 제한되고 있다. 민주노총에 걸려 있는 손해배상·가압류 금액만 1691억 원에 이른다. 헌법은 교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라고 했건만, 하위법은 그들이 정치적 중립을 어겼다고 '처벌'하려 든다. 이쯤 되면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게 아니다. 사용자는 노동자보다 조금 더, 혹은 아주 많이, 평등한 것 아닌가!

여기 법의 이러한 편향적 교묘함에 낙담한 노동 전문 변호사가 있다. 하지만 그는 낙담 끝에 좌절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혁명을 꿈꾸는 시민들을 모으고 있다. '시민혁명당'이라? 작명 한번 후련하다. 시민혁명당 추진위원장 권영국 변호사를 만나 그의 법 이야기와, 법에서 정치로 넘어가려는 사연에 대해 들었다. 언필칭 근대 민주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다시 왜, 어떤 '시민 혁명'이 필요하다는 걸까?

시민혁명당 추진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시민혁명당 추진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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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변호사들에게 강연할 때 법의 두 가지 측면을 꼭 이야기한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법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건지부터 들려주신다면?
"다른 인터뷰들과는 첫 질문부터 남다르다. (웃음) 법률인으로서 법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이다. 법은 다수 세력의 입장을 반영해,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근대법은 국왕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법에는 이런 두 가지 성격이 다 있을 수 있다. 법은 끊임없이 사회 변화와 온갖 욕구에 따라 거듭나고 있다. 1년이면 수백 개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법은 늘 유동적인 상태에 있다. 기득권 옹호라는 측면만 있다면 나 같은 법률인은 할 일이 없어진다. 법의 어느 측면을 옹호할지, 어떤 것을 대변하는 법으로 자리매김 시킬지, 늘 고민해야 한다.

현 정권은 준법과 법치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섞어버린 걸 수도 있다. 준법은 법을 따라야 하는 이들이 제대로 지켜야 하는 문제지만, 법치는 권력자를 통제하기 위한 취지에서 나온 거다."

-법치는 곧 인치의 반대개념이라는 건가?
"그렇다. '짐이 곧 국가요 법이다'라고 믿던 국왕이 이제는 국민 등 다수 세력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에 의해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게 법치의 골자다. 통치자가 법에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라는 게 법치의 의미인 것이다. 법치주의는 국민을 향해 휘두를 칼이 아니라, 권력자 자신을 통제하는 장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런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하고, 국민이 법을 잘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로 만들고 있다.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세력은 엄정 대응하겠다?' 이런 몰상식한 말을 부끄럼 없이 내뱉다니, 터무니없다. 지배세력이나 권력자가 법을 자신의 통치수단, 통제기술로 이용하는 건 '법치주의'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다.

여느 시민들에게 법은 멀게만 느껴진다. 정작 법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혹은 법에 자신의 생각, 의견을 담으려다 좌절하면, 시민들은 거리로 나선다."

-권 변호사는 '거리의 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는데, 어쩌다 거리의 시민들과 함께하게 되었나?
"일단 출신이 다르다. 난 법대를 나오지 않았다. 어릴 때 꿈은 과학자였으나 가정형편 탓에 제철공고를 나왔고, 금속공학과를 나와 80년대 금속공장을 다니는 회사원이자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해고노동자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민주화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며 살아낸 거다. 거리의 시민들이 독재에 맞서던 그 시대의 경험이 참 소중했다. 그렇게 얻어낸 절차적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된 게 아니었고, 그래서 권력에 대한 견제, 그런 시민의 목소리는 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거리에 나가 참여하고자 했다. 정권이 바뀌어 갑자기 나간 게 아니고. (웃음)

물론 질적인 변화는 있었다.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려던 10여 년이 지나자, 분위기가 확 바뀌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극도로 통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거리에 나갔다면, 보수정부 들어서는 대립과 갈등의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그런 현실을 온몸으로 느낀 산 증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오면서 나는 탄압의 대상을 넘어 표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명색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인데도, 집회 현장에 나갔다 하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수사대상, 소환대상으로 삼으려 들었다. 권력의 속성에 따라 거리에서 변호사가 직면하는 현실에는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었다."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노동자로서의 체험, 갈등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변호사로서의 체험이 자연스레 하나로 버무려졌을 것 같다.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나의 첫 약속은 '지금부터 저는 현장을 중심에 놓고 활동하겠다. 현장을 중시하는 노동위원회로 이끌겠다'였다. 그래서 싸움의 현장으로 노동자를 찾아가는 걸 아주 중시했다. 실제 갈등은 모두 현장에서 발생한다. 법정은 사후적으로 그런 갈등의 위법 여부를 다투는 곳일 뿐이다. 사업장, 거리, 집회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면, 우리가 겪고 있는 권리 침해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런 소신을 지키면서 민주노총 법률원장 4년, 민변 노동위원장 6년, 도합 10년을 노동자의 권리 침해 현장에 계셨다. 기억에 남는 일도 아주 많으실 텐데?
"2002년 연수원 수료하고 민주노총 법률원장이 되면서 처음 맡은 일이 굉장히 벅찬 사건이었다. 그해 2월 철도, 가스, 발전 공기업 3사 노조가 공동파업을 했다. 그 중 발전노조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38일간 파업을 벌였다. 다섯 군데 발전소에서 5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했다. 발전노조는 5~10명 단위의 산개파업을 벌였다. 똘똘 뭉치는 파업이 대부분인데, 산개파업은 최초였다. 정부는 당연히 공권력을 동원해 이들을 발전소로 돌려보내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을 주심 변호사로 일하는데, 아침에 출근하면 어김없이 여수, 수원, 인천, 강릉 등등 정말 전국 곳곳에서 연행 소식이 전해졌다. 전화접견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전화로 담당 계장에게 연행의 부당성을 따지고, 연행된 노동자와도 통화로 피의자의 권리에 대해 일러줘야 했다. 그때 경찰과 엄청나게 싸우며 모든 전화접견을 이뤄냈다. 업무복귀서를 강요하면 경찰의 월권이니 '쫄지 말라'고 노동자들에게도 일렀다. 그때 그런 싸움 덕분에 이제는 집회 현장에서 노조원이 연행되어도 '변호사 올 때까지 묵비권'이라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그 모든 게 민주노총 법률원이 일궈낸 성과이다."

-법률원이 펴낸 <노동자의 변호사들>이라는 책을 보면서 그 활약상에 가슴이 저릿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 최근에는 전교조 판결이나 쌍용차 판결 등 주요 노동 관련 판결들이 사용자의 입장만 옹호하는 쪽으로 내려지고 있어 염려스럽다.
"2014년 11월 13일, 쌍용차 정리해고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고등법원에서는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받고 올라간 사건이었다. 그날 대법원 정문에서부터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대법원이 뒤집었다. 대법원이 회계조작 등을 합리화시켜주는 판결을 한 것이다. 수년 동안 싸워온 노동자들, 스물 다섯 명씩이나 목숨을 버려야 했던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법관 개인의 경향성에 따라 결론을 바꿔버릴 때, 과연 이걸 정의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엄청나게 절망했다. 제도를 통해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사법부는 오히려 그 제도로써 정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망연자실 울음을 터뜨리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보면서, 사법정의에 대해 그래도 가지고 있던 미련을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법은 형식일 뿐, 그 내용을 채우는 건 정치의 영역이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사법정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서 새로운 정치적 모색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셈이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참여하게 할 것인가에 우리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 "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참여하게 할 것인가에 우리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 "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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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절박함을 담아 페이스북에 쓴 글이 널리 회자되었다. 지금 추진 중인 '시민혁명당'이 그런 새로운 정치적 모색의 결과물인 건가?
"2015년 1년 동안 정치에 개입하는 방식을 두고 온갖 고민을 주변과 나눴다. 그리고 12월 20일에 시민혁명당 추진위원회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할 것인가, 또 뜻이 맞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기존 진보정당에 입당하는 식의 정치 입문도 고민하셨을 텐데?
"내 고민은 '변화 가능성'에 있었다. 기존 정당들이 만든 세월호특별법이 유족과 대책위에 의해 세 차례나 거부되는 걸 보면서 기존 정당체계로는 새로운 교체를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보았다. 스스로 판을 주도하고 뒤집을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 보수야당, 워낙 미미한 역할에 머무는 진보정당, 거기서는 이런 절망적 구도를 낳는 현실 정치를 변화시키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정치적 시도가 필요하겠다는 다짐이 점점 강해졌다.

우리의 사회경제 구조 속에서 특정 계급 계층만을 강조하는 정치운동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영업자, 농민, 붕괴된 중산층 등 '을' 혹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이제 '시민'의 범주로 보아야 한다 싶었다. 그때 시민들 스스로 고립된 노동자들의 손을 잡으러 달려간 '희망버스' 형태의 사회연대를 떠올렸다. 고립이 아닌 연대, 누구 중심이 아닌 사회연대 전략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게 '더 큰 우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 아닌가.

선거철마다 나타나 '저를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정치인은 시민을 대상화한다. 안철수신당이 평범한 사람, 일반시민들이나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집단인가? 시민들은 아닌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비판적 지지를 하고 또 후회하고, 결국 '배반의 정치'에 치를 떤다. 이런 악순환은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의 권한을 직접참여를 통해 행사하지 못하는 데서 빚어진 결과다. 이제는 시민 스스로가 참여하고 의견을 얘기하고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이런 '배반의 정치'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우리의 지향을 '시민혁명당'이라는 이름에 담았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민혁명으로 나아갈 정치플랫폼 '움직여'를 온라인에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거기서 벌어질 새로운 정치소통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때, 누군가 당을 만들고 그걸 지지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는 특정인, 특정 조직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현상을 바꿀 수 없다. 진보정당도 조직된 노동자라는 전체 노동자의 10%만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엇비슷하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경우는 조직되지 않은 시민이 온라인을 통한 의사수렴과정에 폭발적으로 참여해 일궈낸 정치적 성과를 보여준다.

우리 정치야말로 그렇게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시도가 절실한 영역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조직된 이해관계는 소수다. 그래서 무관심한 상태의 다수가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오히려 정반대되는 정치적 선택을 하곤 하는데, 그런 불상사는 이제 그쳐야 한다. 참여하지 못하는,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참여하게 할 것인가에 우리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시민혁명당이 창당되었습니다
 시민혁명당이 창당되었습니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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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소리가 도무지 정치에 반영되지 않아 정치에 무관심한가? 희망버스가 보여준 시민의 자발성은 굳게 믿지만, 정치에는 그런 자발성이 통할 리 없다고 절망하고 있나? 여기 '거리의 변호사'가 정치와 사회운동의 결합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그가 모으려는 건 명망가나 저명인사가 아니다. 권 변호사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의 살아 있는 의견을 모으려 한다. 그게 진보정치의 첫 발자국, 시민참여의 첫 발자국이어야만 한다는 거다.

"재미있고 활력 넘치는 과정으로 만들겠다"는 권 변호사의 포부대로, 온라인 플랫폼이 펄펄 살아 움직임으로써 희망버스가 보여준 자발적 사회연대의 힘이 정치판으로도 콸콸 흘러들기를 희망해본다. 그래서 저들만의 리그(그게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간에!), 딴 동네 이야기로만 여겨지던 저 보수정치판의 심장부를 강타하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면?! 근대로 위장한 봉건 체제를 깨는 이 땅의 시민혁명은 그렇게 시작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유안님은 번역가이며, '알트' 출판사에서 일합니다.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태그:#권영국, #시민혁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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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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